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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동희 북노마드 May 28. 2021

철학의 태도


아즈마 히로키는 현대사상, 서브컬처, 정보환경 변화 등 포스트모던 현상이 두드러진 영역에 주의를 기울여왔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후 그는 ‘가치 전도’가 아니라 ‘가치 설정’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애니메이션, 게임, 인터넷이 만연한 일본 사회에서 ‘새로운’ 가치관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맞추기로 했다.


아즈마는 출판사 ‘겐론’의 편집장이다. 2013년까지는 와세다 대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러나 지금 아즈마는 대학을 버리고 출판사를 거점 삼아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아즈마의 선택은 시의적절하다. 실제로 대학은 서서히 붕괴하고 있다. 철학은 ‘대학이라는 제도에서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절실하다. 철학은 본래 직선적으로 발전하는 지식이 아니다. 플라톤을 데카르트가 극복하고, 데카르트를 칸트가 극복하고, 칸트를 하이데거가 극복하며 지금의 철학이 존재한 게 아니다. 


아즈마의 해답은 ‘고전’이다. 한 사람의 아마추어로 되돌아가기, 철학의 원리는 고전을 읽을 때 분명해진다. 아즈마가 경제 논리 ‘바깥’에 ‘스스로’ ‘공간’을 차린 이유다. 아즈마에게 출판사 겐론과 겐론 카페는 철학의 ‘원점’에 가까워지는 길이다.


아즈마는 2013년 ‘겐론 카페’를 만들었다. 겐론 카페를 하면서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실천했다. 소크라테스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 철학의 기원이다. 그래서일까. 겐론 카페는 시간제한이 없다. 시간이 여유 있게 주어질 때, 기왕이면 알코올이 있을 때, 준비해온 이야기가 바닥이 났을 때 대화가 시작된다는 아즈마의 신념 때문이다.


아즈마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관광’이라는 개념이 필수다. 『일반의지 2.0』 이후 아즈마는 『약한 연결』과 『관광객의 철학』에서 ‘관광’을 키워드로 대두시켰다. 일반적으로 관광은 중요하지 않은 행위다. 관광하는 사람은 자기가 가는 곳, 곧 관광지를 알고 있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러 가지만, 실제로는 그곳에서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 그런 오차가 반드시 섞여 있다. 정보의 세계에서는 닫혀 있어서 안심하고 관광을 떠나지만, 떠나보면 관광지는 현실계여서 뜻밖의 일이 일어난다. 그런 ‘어긋남’이 있다. 아즈마는 ‘관광’이라는 화두를 어긋남, 즉 ‘오배(誤配)’와 연결시킨다.


아즈마에게 ‘오배’란 이용자가 평소에는 접할 일이 없는 정보와 접촉하는 것이다. 아즈마는 『존재론적, 우편적』에서 ‘오배’는 ‘네트워크 효과’의 측면이 강해서 인간이 수동적으로 수신한다고 보았다. 반면 『약한 연결』에서는 ‘오배’로서의 ‘관광’을 논함으로써 인간의 행위로서의 ‘오배=관광’ 측면을 부각시켰다. ‘관광’을 오배의 능동적 실천으로 해석한 것이다. 


생각의 변화는 인터넷 때문이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인간은 한 번만 클릭하면 원하는 정보를 얻고 다 아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원하는 지식을 얻으려고 시행착오를 거치고 뜻밖의 일을 겪을 가능성이 줄어들었다. 오배가 일어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 속에서 아즈마는 ‘능동적 오배’를 주장한다. ‘오배가 일어나는 영역’에 철학의 본질이 있다고 믿는다. 아즈마는 ‘목적 없이’ 떠나는 관광을 제안한다. 현지에서 비어 있는 시간 갖기, 우연히 만난 사람의 안내 받기, 우발적 요소를 도입하기. 아즈마는 이 ‘어긋남’을 ‘관광객적’이라고 부른다. 아즈마가 비판을 무릅쓰고 후쿠시마에 ‘관광’을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겐론과 겐론 카페를 통한 아즈마의 ‘쓸모없어 보이는’ 실천, 플랫폼과 메커니즘으로 바라보는 미래의 인문학,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지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실천하는 철학자의 의무. 그는 자신의 변화를 『철학의 태도』라는 책에 소상히 고백했다. 그는 이 책에서 지금 우리는 ‘사상의 패배’ 시대를 살고 있다고 적었다. 그럼에도 자기와 같은 철학자는 여전히 철학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를 묻고 답했다. 


그 새로운 철학의 출발은 중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가 설정한 새로운 위치는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지점’이다. 좌우 양극 어디도 아닌 지점, 아군도 적군도 아닌 지점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지금의 철학이라는 것이다. 찾아가기! 이 말은 참으로 중요해서 그는 실천하지 않고 말로만 주장하는 철학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그는 해커들의 커뮤니티, 인터넷의 크라우드 펀딩, 오타쿠 커뮤니티 같은 하위문화의 실천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대학이나 권위 있는 지면에서 ‘말’로만 철학하는 자들을 끌어내릴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내가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을 ‘철학의 태도’로 정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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