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에 태어나 1995년에 생을 마감한 질 들뢰즈는 우리에게 ‘감각의 논리’를 선물로 주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감각 또는 지각을 ‘아이스테시스(aisthesis)’로 불렀다. 아이스테시스의 신분은 그리 안온하지 않았다. 고대에는 이데아에 밀렸고, 중세에는 그 자체가 쾌락, 즉 죄로 여겨졌다. 근대에 와서도 이성의 하부 단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들뢰즈는 아이스테시스란 이성의 바탕에서 그것을 가능케 해주는 근원적인 능력으로 보았다. 일명 감각의 논리다. 물론 들뢰즈에 앞서 감각의 가치를 살피던 움직임은 존재했다. 바움가르텐(1714~1762)이 대표적이다. 논리학에서 감성학(aesthetica)으로, 그리고 오늘날의 미학이 되는 바탕을 제공한 그는 감각을 ‘인식론적’으로 구원한 사상가였다. 들뢰즈는 한 발 더 나아갔다. 그는 감각을 ‘존재론적’으로 구원했다.
들뢰즈는 감각(sensation)과 지각(perception)을 엄격히 구별했다. 그에게 지각이란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를 정신으로 퍼 올린 인식론적 현상이다. 감각은 감각기관에서 직접 몸으로 내려가는 존재론적 현상이다. 감각은 몸과 외부 환경을 연결시켜준다. 그 연결의 순간, 감각은 세계(사상)가 주어지는 근원적 사건이 된다.
그때까지 우리는 지각을 행동 속에서 체험한다고 여겼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생각이다. 퐁티는 사진이나 원근법에 따른 그림처럼 일목요연하지 않고, 그림 속 부분이 서로 맞지 않는 세잔의 그림에서 그 이치를 찾았다. 체험된 원근법, 즉 고정된 정신의 눈이 아니라 움직이는 육체의 눈으로 보는 것이 실제의 지각이라는 퐁티의 생각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다. 그러나 인식론적 현상을 넘어서지 못했다. 감각을 지각으로 바라보는 근대적 시각이었다.
들뢰즈는 달랐다. 그는 감각은 인식(정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이전에 욕망(몸)을 위해 존재한다고 정의했다. 현대의 시작이었다. 모두가 지각되는 ‘대상’과 지각하는 ‘주체’를 분리시켜서 바라보았을 때 들뢰즈는 감각에는 대상과 주체의 구별이 없다고 보았다. 당연하다. 들뢰즈에게 감각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영역에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세계가 인간에게 주어지는 방식이고, 그 이전에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었다.
퐁티에게 세잔의 그림이 있었다면 들뢰즈에겐 베이컨의 그림이 있었다. ‘두뇌를 통과하는’ 추상이 아닌, 정형도 비정형도 아닌 기괴한 형상을 창조하는 베이컨의 그림은 감각의 논리 그 자체였다. 두뇌를 통과하지 않고 우리의 신경 시스템에 직접 작용하는 그림의 발견이었다.
들뢰즈에게 현대 미술의 기준은 재현의 유무에 있었다. 재현이란 대상과 이미지 사이의 관계(닮음), 한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들과 맺는 관계에 머무는 그림과 그것을 끊는 그림. 근대와 현대의 분기점은 재현성에 달려 있었다. 들뢰즈는 닮지 않은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는 재현을 피할 수 없다고 보고,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서사적 연관(이야기)을 끊는 데 생을 바쳤던 베이컨의 그림에서 그 서막을 보았다. 그 시작은 ‘격리’였다. 재현과 단절하고 서사성을 파괴하기 위해 베이컨은 형상이 그림 속 요소들과 서사적 연관을 맺지 못하게 방해하는데 주력했다. 고독한 형상에 몰두한 베이컨의 그림은 재현이 아닌 감각을 그리는 것이었다.
베이컨은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감각을 보이게 그릴 수 있었을까. 세 가지 키워드가 눈에 들어온다. 신체, 촉각, 충격. 그는 재현하지 않았다. 이야기(서사)로 돌아가는 그림이 아니라 감각으로 직접 작용하는 그림을 그렸다. 그는 주체가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성의 원리를 벗어났다. 현실의 잔인함이 아니라 회화(색채, 형태)의 잔인함을 강조했다. 시각적 관조가 아니라 촉각적 체험으로서의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 미술은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었다. 대신 그는 충격적으로 다가가는 데 몰입했다. 베이컨의 그림은 결국 그리는 자와 보는 자의 ‘몸’이었다.
몸! 베이컨에게 그리는 일이란 ‘동물-되기’였다. 오해하지 마라. 동물-되기란 동물의 수준으로 돌아가는 퇴행이 아니라 하나의 정체성에 한정시키지 않고, 다른 것과의 접속을 통해 존재의 지평을 창조적으로 넓히는 것이었다. 베이컨은 감각으로 더 나아갔다. 얼굴 지우기. 얼굴은 동물과 인간을 구별하는 이성의 기준이다. 베이컨은 초상화로 상징되는 얼굴을 그리는 재영토화를 거부했다. 얼굴을 그리지 않음으로써 그는 단번에 이성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구별하던 인간이라는 주체를 해체시켰다. 얼굴 없는 머리는 감각이 발생하는 공간이었다. 베이컨은 또 한 번 나아갔다. 아니 끝에 이르렀다. 고독한 형상에서 얼굴을 지우고 급기야 몸을 지웠다. 기관 없는 신체. 몸이 지워진 인간은 무의미하다. 그렇다고 존재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베이컨의 지워진 몸은 그리는 자에게, 바라보는 자에게 모든 의미를 생성시키는 무한정의 영토가 되었다.
베이컨의 그림에서 들뢰즈는 무엇을 보았을까, 아니 무엇을 감각했을까. 그는 ‘리듬’이라고 적었다. 시각, 청각보다 더 깊은 원초적 감각으로서의 리듬을 찾아냈다. 개별감각으로 분화되지 않은 리듬,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신경 흥분적인 존재론적 소통에 그는 몸을 떨었다. 20세기가 될 때까지 화가들은 철저히 지각과 머리로 그림을 그렸다. 이미 많은 감각을 알아버린 화가가 그리는 그림에서 그는 착란의 그림을 원했다. 하나의 자극을 둘 이상의 감각으로 느끼는 공감각의 그림을 찾아 헤맸다. 그 해답은 베이컨의 그림이었다.
들뢰즈가 찾아낸 현대성의 감각 아래 미술은 이제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일로 접어들었다. 회화란 장식이 아니라 리듬 감각을 묘사하는 것이라는 말레비치의 절대추상을 떠올려보라. 그림의 빈 곳을 채우는 물질적 구조(단색 배경), 형상을 고립시키는 트랙, 동그라미, 유리 상자, 그 안에 세워지는 이미지(기괴한 형상), 그리고 이 각각의 요소들의 힘의 균형 또는 충돌. 격리의 힘으로, 변형의 힘으로, 흩뜨리는 힘으로 현대성을 열어젖힌 베이컨의 그림을 보라. 말레비치처럼, 베이컨처럼 이 보이지 않는 힘을 그리는 것. 그것이 현대회화였다. 들뢰즈는 현대회화 속 움직임들의 공존에서 리듬이라는 우리 시대의 감각을 찾아냈다.
이제 눈은 보는 게 아니다. 오늘의 눈은 ‘만지는’ 것이다. 베이컨이 데생 없이 바로 그리고, 손으로 물감을 뿌리거나 문질러 ‘우연’의 효과를 도입한 이유다. 그는 무턱대고 그리지 않았다. 그리지 않음으로써 그리는 경지. 베이컨은 ‘무위(無爲)는 인위(人爲)’의 경지를 깨우친 자였다. ‘무위’란 무엇인가. 자연에 따라 행하고 인위를 가하지 않는 것이다. 무위는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고도의 절제된 인위를 발휘해 얻는 것이다. 베이컨은 그림이 그려지는 순백의 종이라는 바탕을 극도로 경계했다. 세인의 눈에 텅 빈 것처럼 보이는 종이의 표면은 온갖 종류의 고정적인 이미지로 덮여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비어 있는 캔버스, 초기 화면의 스크린은 각종 영상 이미지로 덮여 있지 않는가. 몸으로 육박해 들어오는 감각을 제대로 그리는 방법은 그리는 자를 간섭하는 이미지에 장악된 현실을 빠져 나오는 것이다. 오늘날 그리는 자는 사진, 영상, 애니메이션, 게임, 대중문화, 스마트폰 등 이미 하나의 존재가 되어버려 시각을 강요하는 현실을 혐오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카메라로 찍을 수 없는, 영상이 담을 수 없는, 게임적 세계관이 표현할 수 없는 사실. 들뢰즈는 그것을 가리켜 ‘회화만이 보여주는 회화적 사실’이라고 명명했다. 사진적 사실이 정신의 눈을 통해 의식에 주어진 리얼리티라면, 회화적 사실은 감각의 몸을 통해 주어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리얼리티다. 그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그림.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는 이렇게 끝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