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나는 책을 읽지 않는다. 책을 만들지만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신체의 변화 탓이다. 우선 눈이 침침해졌다. 또래에 비해 시력은 좋은 편이지만 노안을 피할 수 없는 법. 소중한 두 눈을 오래오래 사용하려면 지키고 보호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안경을 맞췄다. 노트북으로 일하거나 밤에 운전할 때 블루라이트 안경을 착용한다. 하루를 마치고 거실 소파에 앉아 늦게까지 책을 읽는 리추얼도 포기했다. 간혹 너무 읽고 싶은 책이 나타나도 책의 얼개를 훑어내려가는 정도로 만족한다. 이제 나는 햇볕 아래 책을 읽는다. 노트북을 펴지 않아도 되는 느슨한 오후, 단골 카페를 찾아 커피 한 잔을 두고 한 챕터 혹은 한두 꼭지를 읽는다. 커피가 비워지면 책 읽기를 파한다.
이제 나는 책을 가급적 만들지 않을 것이다. 출판사를 운영하지만 책을 잘 만들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한다. 1년에 두어 권, 내가 읽고 싶은, 그러면서도 만드는 데 애를 먹지 않는 해외 도서를 번역 출판하는 것으로 노선을 바꾸었다. 국내 도서는 가급적 패스. 도대체 왜 책을 쓰려고 하는지 모르는 책들이 넘쳐나는 시대를 거역하기로 했다. 세상의 모든 화면에 뿌려지는 것을 목표로 삼는, 그러나 아무리 생각하고 재단하고 적용해도 나의 실존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 상품들이 으스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비슷한 세대, 비슷한 가치관, 비슷한 계급, 비슷한 라이프스타일, 비슷한 취향의 '만들고 쓰고 소비하는' 사람들의 비슷한 문화가 늙어가는 나에게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나와는 다른 삶의 영토에서 나보다 앞서 늙어간, 혹은 나와 함께 늙어가는 자의 필적을 눈으로 훑고 싶다. 생각해보니 젊은 날부터 나의 독서는 그래왔다. 최소한의, 미니멀한, 드라이한. 그 기준과 원칙이 더 또렷해졌을 뿐.
알고 있다. 시대에 역행하고, 시대의 행렬에 뒤처지고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임을. 그런데 같이 늙어가는, 동시에 같이 책을 만들어가는 또래 디자이너의 짧은 대답을 믿기로 했다.
- 변화를 못 따라가면 어떡하죠?
- 꼭 변화해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