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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련 Dec 23. 2022

조용했지만, 가장 행복했던 나의 생일.

행복이 뭐 별건가요.

한 해의 마무리를 하는 12월.

추위를 많이 타는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계절이지만, 흰 눈이 내리면 세상이 온통 하얘져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계절에 난 태어났다.




이번 해인 2022년이 시작됐을 때, 나는 카톡에 생일인 친구를 보여주는 알림을 의도적으로 껐다. 그 대신, 내가 꼭 챙겨야 하는 소중한 사람들의 생일은 다이어리에 직접 정리했는데, 생각보다 생일을 꼭 챙겨야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걸 느꼈다. 매번 막연하게 ‘아 이 사람 생일이네? 카톡에 뜬 걸 봤는데 그래도 챙겨야 하지 않을까? ’라고 느끼며 한참을 고민하게 만드는 관계를 완벽할 순 없지만 어느 정도 정리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정말 내가 꼭 챙겨야 할 사람들 외엔 다른 사람들의 생일은 이번 해엔 거의 챙기지 않았다.

처음엔 ‘좀 너무 한 건가. 그래도 생일을 챙겨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나한테 실망하면 어쩌지..’

라는 약간의 고민은 있었지만, 이번 해엔 상황에 끌려 억지로 해야 할 것만 같은 건 하지 않기로 내 스스로 굳게 마음먹었다. 그렇게 한 지 벌써 1년이 다되어가는데, 정말 내가 그렇게 카톡 생일 알람을 꺼놓은지 인지도 못한 채 1년이란 시간을 보낸 거 보면 나름 사람을 챙겨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자유로워진 거 같다.

나는 그동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생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꼬박꼬박 챙기며 마음을 표현하곤 했다.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관계 속에서 소외될까 두려운 마음도 있었던 거 같다. 정말 상대방을 축하하는 마음보다는 해야 하니깐 할 수밖에 없었던 의무감이 드는 마음이 더 컸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의 생일을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챙겼기에, 마음을 썼던 사람들이 내 생일에 축하를 해주지 않으면 ‘겉으로는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쿨하게 반응했지만, 속으로는 많이 서운해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관계 속에서 그렇게까지 애쓰지 않아도 됐는데, 뭘 그렇게 애쓰며 살았는지.

그 당시에 나는 나의 존재감을 관계 속에서 느끼고 싶은 마음이 컸던 거 같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아야 가치 있는 삶이라고 여기며.


관계 속에 묻혀서 내가 나로서 나답게 온전히 존재하지 못한 시간들이 나의 삶에서 꽤 긴 시간을 차지했다. 그러다 보니 그 속에서 체득했던 삶의 방식과 패턴들이 원래 그게 나였던 것인 양 내 몸에 깊이 배어 있었다. 어울리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옷을 입고 행복한 것처럼 살았던 지난 시간들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자꾸 맴돌 때쯤 코로나가 왔고, 내가 억지로 힘을 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많은 관계들이 정리가 됐다.


많은 관계들이 자연스럽게 정리되면서 내 삶은 굉장히 심플해졌다.

이젠 더 이상 내 마음이 원하지 않는데 상황상 억지로 하는 일은 많이 줄었다. 내 마음이 하고 싶으면 진심을 담아 표현하고 그렇지 않은 관계라고 생각되면 마음의 부담을 많이 내려놓았다. 내 마음에 솔직해지니 표현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며 눈치를 보진 않았다. 그래서 관계의 범위는 그전에 비하면 많이 줄었지만, 내가 유지하고 있는 관계의 깊이는 훨씬 더 깊어졌다.


이런 일련의 이유들로 이번 해의 나의 생일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내가 사람들을 많이 챙기지 못했기에 바라는 것도 없었고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수록 점점 생일이 나에게 어린아이 때처럼 설레어하며 기다리던 특별한 날로 다가오진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번 해에 나의 생일은 자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행복한 생일이었다.

화려하지도 요란스럽지도 않았지만, 평안하고 감사했던 생일.

항상 표현에 인색하고 무뚝뚝했던 우리 부모님과 웃으며 식사를 할 수 있었고, 같은 자매인데도 성향이 너무 달라 만나기만 하면 서로 언성을 높여 싸우기를 반복하는 동생들 그리고 예쁜 조카들과 깜짝 생일파티를 했고, 이번 년도에 회사일로 정말 바빠서 몇 일 전까지도 잠을 많이 못 자며 일했던 내 남편이 나를 위해 끓여준 미역국을 생일 당일날 아침에 먹으며 감사했다.

그리고 각자의 삶이 있으니 자주 연락하며 보진 못하지만, 가끔씩 안부를 물어도 언제나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몇 안 되는 지인들의 생일 축하 카톡만으로도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게 느껴졌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거 아닐까?




비록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으며, 화려한 생일날을 보낸 건 아니지만, 내가 느끼기에 지금까지 살아온 중에 가장 행복하고 감사한 생일날을 보냈다. 뭔지 모를 기분 좋은 설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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