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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련 Jan 20. 2023

첫째 딸, 그리고 첫째 며느리인 나.

괜찮다 말하지만 괜찮지 않을 때도 있다.

결혼을 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또 나에게 주어지는 역할들이 있는 거 같다. 누가 나에게 억지로 맡긴 게 아니지만 사람은 살다 보면 환경이 바뀌기도 하고 그에 따라 역할이 바뀌고 더해지기도 하니깐.



나는 나의 선택권 없이 우리 집의 딸 넷 중에 첫째 딸로 태어났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나는 내 환경상 열심히 살아야 했고, 주변을 챙기며 강한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보통의 흔한 첫째 딸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열심히 사셨지만, 가정환경이 그렇게 풍족하지 못했기에 어린 시절의 나는 물질도 부모님 사랑도 둘 중 어느 하나 온전히 채워진다고 느꼈던 적은 없었다. 내 안에 채워지지 못한 어떤 결핍들이 나와 함께 컸고,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라 생각하며 내려놓고 할 수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돌이켜 보면 그 결핍들이 내 삶에 긍정적인 원동력으로 작용할 때가 많았지만, 때때로 그 결핍들이 순간순간 나를 너무 힘들게 하기도 했다.



내 동생들을 보면 나는 첫째 언니로서 짠한 마음이 있다. 자매로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우리 딸들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갖고 있는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 딸 넷이 모두 기질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지만, 씩씩하고 열심히 사는 건 비슷하다. 나는 첫째 딸이어서 그런지 유독 내 동생들에게 연민의 마음을 느낄 때가 많다. 지금은 다들 너무 잘 살고 있지만, 우리 딸들 모두 종종 어린 시절 결핍으로 힘들어하는 게 보일 때면 언니로서 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 언니이지만, 동생들이 자기 것만 챙기는 거 같을 땐 그냥 그러려니 하다가도 어떤 때는 얄밉기도 하다. 보통의 가족들에게 있을 수 있는 흔한 일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뭔가를 해야 할 때, 몸과 마음에서 부대끼는 것 같은 느낌이 때때로 든다. 내 마음의 그릇은 첫째의 역할을 담기에 크지 못한 거 같다.



결혼을 하면서, 어린 시절의 결핍들은 꽤 많이 사라졌다. 내 말을 진심을 다해 들어주고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지지해 주는 남편을 만나서 내면이 많이 건강해졌고 유연해졌다. 너무 감사하게도.



우리 집에 문제가 생기면 부모님은 첫째 딸인 나에게 먼저 전화를 하신다. 그러면 나는 일을 하다가도 부모님 일을 해결해 드려야 할 때도 많고,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다. 어떤 때는 그냥 별생각 없이 해드릴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참 버겁고 부담될 때가 많은데 나와 반대로 남편은 그런 거 전혀 없이 “우리가 도와드리면 되지 “,”우리가 해드리면 되지 “라고 흔쾌히 말해주었다. 내가 혼자 엄청 고민하며 끙끙대는 문제를 남편한테 얘기하면 별일이 별일 아닌 게 됐다.

내가 연애할 때, 남편의 그런 모습이 참 좋고 든든했다. 내가 정말 애쓰고 노력해도 잘 안 되는 부분을 거리낌 없이 해결해 주고 채워주는 남편이 정말 멋있다고 느껴졌으니깐.



연애할 때는 멋있다고 느껴졌던 부분이 결혼하니 부딪히는 부분이 되기도 했다. 신혼 초에 양가 일에 나는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될 거 같은데 남편은 해드리자라고 말하면서 의견충돌이 있었고 많이 다투기도 했지만 지금은 서로가 대화를 통해 양보를 하며 적정선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나이가 들면서 부모님들의 몸과 마음은 더 약해지시는 거 같다. 자식들에게 의지하게 되시고, 자식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더 많이 드신다는 것을 다 헤아리진 못해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좋은 마음을 가지려 하지만 때로는 그런 마음들이 부담이 되기도 한다.



결혼을 하고 매년 명절 전 양가에 드릴 선물과 용돈을 준비하는 것도 이젠 익숙하게 미리 준비를 한다. 이번 설엔 남편의 제안으로 양가 부모님 뿐만 아니라, 동생들과 양가 친척들까지 크진 않지만, 작은 선물을 보내드렸다.

처음에 남편의 제안을 들었을 땐, ‘굳이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생각해 보니 ‘설날이란 큰 명절에 좋은 마음으로 작은 선물이라도 가족들과 나누면 모두가 기분 좋은 명절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이 선물을 다 알아봐 줘서 보내드렸다. 사실 남편이 한 거나 마찬가지다.



선물을 받으신 친척분이 어머님께 “너는 아들도 며느리도 어쩌면 그렇게 잘 뒀냐”라고 칭찬을 많이 하셨다고 나한테도 “우리 며느리 고맙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우리 부모님도 ”첫째 딸과 사위가 첫째노릇 했구나 고맙다 “라고 말씀해 주셨다. 가족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 또한 너무 감사했고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얘기를 남편과 나누는데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여보, 이렇게 하니깐 가족들도 좋아하시고 여보도 칭찬받고 좋지?” 나는 “그러게, 여보 덕분에 내가 칭찬받았네~ 고마워~“라고 웃으며 답했다. 맞는 말이다. 남편은 내가 칭찬받으니 너무 좋아서 한 말일 것이다. 남편에게 고맙고 가족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뿌듯했던 것도 맞다.



그런데 사실 나는 칭찬 안 들어도 된다. 칭찬 말고 응원, 격려가 받고 싶다.

“넌 참 잘한다”가 아니라 “잘하려고 뭘 더 안 해도 돼. 지금도 충분해”라는 말이 듣고 싶다.



좋은 생각을 하며 좋은 마음으로 매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역할들에 최선을 다하며 씩씩하게 살아가지만, 때때로 내게 주어진 역할과 환경이 버겁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괜찮다 말하지만, 나도 내가 첫째 딸, 첫째 며느리의 역할이 괜찮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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