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차
한국에서 오후 5시 45분에 바르셀로나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스페인으로 향했다. 스페인 도착시간은 아침 9시가 좀 넘는 시간.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오랜만에 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들뜨기도 했다. 비행기에서 주는 기내식은 또 어찌나 맛있게 잘 먹었는지. 사실 예전엔 비행시간이 길 때, 먹은 기내식들이 소화도 안되고 입에도 맞지 않아 힘들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야무지게 잘 챙겨 먹는 나를 보며 ‘그동안 참 많이 무던해지기도 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여행 가기 전에, 어떻게든 하루라도 아껴서 더 많이 여행을 해보겠노라고 욕심을 부려 도착시간을 아침으로 맞췄다. 긴 비행시간 후 아침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해서 공항버스를 타고 바르셀로나 시내까지 25분 정도 걸렸던 거 같다.
숙소는 남편이 바르셀로나 시내 중심에 잡았기에 어디를 가든 편하게 관광할 수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에 숙소는 얼리체크인이 되지 않았기에 숙소에 연락해서 짐만 맡길 수 있냐고 물었고 다행히 가능하다고 하기에 가서 짐을 맡기고 바로 움직였다. 짐을 맡기기 전까지는 내가 스페인에 왔다는 설렘보다는 낯섦이 더 많이 느껴졌고 긴장상태였던 거 같다. 한국에서 스페인을 상상할 때는 따뜻한 날씨를 기대했는데, 그렇게 따뜻한 거 같지도 않았다. 막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음.. 여기가 스페인이구나!’ 정도였던 거 같다. 하지만 스페인과 낯가림을 하기엔 스페인 여행을 계획하면서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일정을 짜놓은 게 있기 때문에 남편과 바로 움직였다.
우리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해서 처음 관광하러 가는 곳은 바르셀로나 FC구단이 있는 캄프 누 경기장이었다. 캄프 누 경기장 내에 있는 박물관 투어 및 경기장 관람을 신청해 놨기 때문이다. 스페인이 축구로 유명하기도 하고, 나는 이번 카타르 월드컵 때 축구를 정말 재밌게 보게 돼서 남편과 함께 고른 곳이다.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교통권을 끊어서 버스든 지하철이든 함께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버스를 타고 캄프 누 경기장으로 향했다. 나는 지도를 잘 못 보는 길치지만, 남편은 지도를 잘 보고 길도 잘 찾았기에 남편만 졸졸 따라다녔다. 우리 숙소에서 한 20분 정도 버스를 타고 캄프 누 경기장 역에서 내려서 조금 걸어가니 바르셀로나 FC구장이 있었다.
이때쯤부터인가.. 내가 급격히 몸이 피곤해지고, 힘들어지기 시작했던 거 같다. 긴 비행시간 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움직이는 게 몸에서 얼마나 부대끼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열심히 구경해야지.’ 경기장 내부 관람을 위해 안으로 들어갔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위해 줄을 서 있었다. 와.. 스페인 사람들이 얼마나 축구를 사랑하는지 그 짧은 시간에 느낄 수 있었다. 경기장 관람 티켓은 미리 예매를 해놨었기에 줄만 서서 바로 바코드를 인식해서 들어갔고, 경기장 내부를 관람하는데 도움을 주는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했다. 나와 피부색도 머리색도 다른 사람들이 내 사방으로 서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먼저 구단 내에 박물관은 FC바르셀로나 구단의 역사에 대해 알려주고 그동안 구단이 받아왔던 상에 대해서 쭉 전시를 해놨는데 정말 엄청 많았던 거 같다. 그중에 당연 제일 인기는 메시였고, 메시사진이 있는 곳은 언제나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긴긴 줄을 따라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면 캄푸누 경기장 내부를 관람할 수 있게 동선이 잘 짜여있었다. 경기장을 보러 밖으로 나가니, 탁 트인 엄청 큰 규모의 경기장이 파란 하늘과 한눈에 들어왔다. 피곤하기도 하고 힘들었던 몸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선수들이 직접 경기를 하는 곳. 뭔지 모를 웅장함 같은 것도 느껴졌고, 나는 빈 경기장의 투어를 온 거였지만 실제 경기를 할 때, 어떤 모습일지 조금은 상상이 돼서 가슴이 두근대기도 했다.
클럽 그 이상
FC바르셀로나 구장 내에 새겨진 문구의 뜻이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되어 온 구단이기에 자부심이 느껴졌다.
때마침 내가 경기장을 구경할 때 날씨가 너무 좋아서 경기장의 초록색 잔디와 파란 하늘이 내 두 눈에 펼쳐졌다. 긴 여행으로 인한 피로감도 한순간에 날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경기장 관람석 한 곳에 자리를 잡고 멍하니 한동안 구경을 했다. 경기장을 관람 온 많은 사람들도 구경하고 실제 경기를 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고, 잠시동안 앉아서 쉼을 가졌다.
실제 경기를 하는 선수들이 사용하는 곳을 정말 관광지로 만들어서 잘 활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경기장 곳곳 선수들이 경기를 하러 내려가는 곳, 실제로 대기를 하는 곳, 피로를 푸는 곳, 기자회견을 하는 곳 등등 다 구경을 하고 나면 마지막 동선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곳은 역시나 굿즈를 파는 곳이었다. 그 규모도 얼마나 큰지. 새삼 다시 놀랐고, 가게 규모도 규모지만, 가게 규모를 꽉 채우고 있는 관람객들에 다시 한번 더 놀랐던 거 같다. 남편도 나도 둘 다 사고 싶은 거 하나씩 사고 축구를 좋아하는 가족들 물건을 사서 나왔다. 깨알지게 택스프리도 받아서 참 뿌듯했던 거 같다. 경기장 앞에서 남편과 내가 번갈아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다른 외국인 관광객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을 했다. 바르셀로나는 소매치기가 많으니 항상 조심하라고 했기에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고 있었는데, 우리한테 찍어달라고 하니 흔쾌히 찍어주었고 우리도 찍어준다고 해서 걱정은 됐지만, 진짜 관광객 같았기에 찍어달라고 부탁하고 사진을 찍었다. 남편과 내가 스페인을 관광하면서 사진 찍어줄 수 있겠냐는 부탁을 정말 많이 받았는데 아마도 우리가 핸드폰을 들고 도망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외국인들에게 있었던 거 같다. 내가 이번에 스페인을 관광하면서 새롭게 느낀 점이 하나 있는데, 몇 년 전엔 내가 외국에서 관광을 하면 일본인이냐고 물을 때가 많았는데 이번에 스페인을 관광할 땐, 모두가 처음에 한국인이냐고 묻고 친절하게 웃으며 먼저 한국말을 건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대한 인상이 좋다는 걸 정말 많이 느꼈다. 경기장 앞에서 사진까지 찍고 나니 긴장이 모두 풀리고 긴 여정의 피로가 몰려왔다. 남편에게 조금 쉬는 게 좋겠다고 말을 하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침대에 쓰러지듯이 누웠는데 바로 잠들었다. 그렇게 2시간 여쯤 지나서 눈을 떴고 좀 자고 나니 컨디션이 훨씬 좋았다. 생각해 보니, 외국에 와서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잤다. 신기하다. 예전엔 잠자리만 바뀌어도 잠을 못 잤었고, 조그마한 냄새에도 예민해서 음식도 잘 먹지 못했는데 잘 적응하고 있는 나를 보며 감사했다. 잠으로 체력도 충전했으니 이제 맛있는 걸 먹으러 가야지. 바르셀로나에서 맛집은 이미 검색해 뒀기 때문에 저녁 먹을 시간에 이동했다.
우리가 간 곳은 타파스 맛집. 나는 한국에서도 빠에야, 감바스등 스페인 음식을 좋아했는데 현지에서 직접 먹을 생각을 하니 기대가 되었다. 내가 맛집을 찾으면 남편은 지도를 보고 데려가줬다.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르지만, 대충 영어를 할 줄 아니 걱정 없이 여행을 갔는데 막상 스페인에 도착해서 영어로 대화를 하려고 하니 스페인 사람들의 영어 발음을 잘 못 알아듣겠어서 조금 멘붕이 오긴 했었다. 그래도 손짓, 발짓하면 의사소통이 되긴 했기에 대화가 안 된다는 막막함에서는 벗어나 적응을 금방 했던 거 같다.
한국도 그렇지만, 스페인도 인기맛집은 언제나 사람이 많다. 음식점 앞에 기다리는 현지인들도 많았지만 회전율이 좋아 금방 가게에 들어갔고 음식을 주문하기 전에 스페인은 항상 음료를 먼저 주문을 받는다. 남편과 나는 음식과 어울릴 만한 음료를 주문하고 타파스를 골랐다.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여러 종류의 타파스를 보니 신기했다. 모양으로 봐서는 재료가 뭔지 모르는 것 같은 건 점원에게 물어보기도 했는데 역시나 못 알아듣겠는데도 알아듣는 척 우리는 웃으며 주문을 했다. 샹그리아에 타파스를 맛있게 먹고 여행 첫날을 마감하기 위해 몬주익 언덕의 분수쇼를 보기 위해 갔다.
여행 전부터 몬주익 분수쇼는 저녁엔 꼭 가봐야 한다고 해서 목, 금, 토 저녁 8시부터 9시까지 한다고 했기에 우리가 도착한 토요일에 꼭 가서 봐야 하는 스케줄이었다. 스페인에 여행 온 낭만을 제대로 즐기러 가야지. 분수쇼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하긴 했지만, 사람이 곳곳에 아직도 분수대를 바라보며 앉아있었기에 우리도 주변에서 막 사진을 찍다가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기대함을 갖고 다려도 분수쇼는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늦은 건가. 괜한 아쉬움에 자리를 못 뜨고 있다가 남편과 함께 자리를 정리하며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다음 날 가우디 투어 가이드님이랑 얘기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지금 바르셀로나가 비가 많이 오지 않아 물이 부족해서 분수쇼는 한동안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아쉬웠지만, 그곳에 가본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기에 괜찮았다.)
그렇게 밤 10시쯤 숙소로 돌아와서 따뜻한 물에 씻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물가가 비싸고 숙박비도 비싼 편이었다. 예전에 유럽여행 갔을 때, 유럽은 건물들이 오래돼서 우리나라처럼 신식은 아니라는 것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고, 유럽여행 가서 관광하러 다니느라 숙소에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기에 잠만 푹 잘 잘 수 있다면 오케이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스페인 여행에서의 첫 숙소는 아주 편하게 푹 잘 잘 수 있는 곳이었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이 깊게 들었다. 우리나라와 시차가 8시간이라 혹여나 잠을 뒤척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아주 푹 잘 잤고 다음 날 아침 개운한 몸으로 일어났다. 스페인에서의 둘째 날이 밝아왔다. 오늘 하루는 또 어떤 일이 있을까 기대된다.
생각보다 날씨가 따뜻하진 않았지만,
스페인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생각보다 몸이 힘들어서 여행의 낭만을 오롯이 느낄 수는 없었지만,
스페인의 거리 자체로 낭만적이었던
낯설었지만 따뜻했던 이곳.
반가워 스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