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3일 차_2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내부를 알차게 구경하고 남편과 나는 바로 전철을 타고 고딕지구로 이동했다.
고딕지구는 바르셀로나의 구시가지에 위치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오늘이 바르셀로나에서 관광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걸 보기 위해 남편과 나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7박 9일의 전체 스페인 여행 일정 중에서 3일을 꽉 채워 바르셀로나에서 보낼 만큼 비중을 뒀다고 생각했는데 여행을 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아쉬웠지만, 아쉬워만 하기엔 내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귀하고 소중했기에 그대로 시간을 흘려보낼 순 없었다.
오후 3시엔 와인 투어가 예약되어 있었다. 와인 투어까지 잠깐 중간에 비는 시간이 약 1시간 30분 정도인데, 조금이라도 더 구경하고자 고딕지구의 보케리아 시장으로 이동했다. 그냥 들렀다 오더라도 그곳의 분위기라도 느끼고 싶었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것은 스페인은 관광지들이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이동하는 데에 크게 부담이 느껴지진 않았다. 남편과 나는 빠르게 결정한 후, 전철을 타고 이동했다. 15분 정도 걸려서 도착한 고딕지구에 있는 보케리아 시장은 우리가 간 시간이 평일 낮시간인데도 정말 사람들이 많았다. 인산인해를 이룬 관광객들보다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보케리아 시장의 깔끔하고 현대적인 느낌이 나는 분위기와 정말 아기자기하게 포장해 놓은 여러 상품들이었다. 시장 내부를 구경하니 또 다른 신세계를 보는 느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여서 정신은 없지만,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이 주는 활기찬 에너지가 더 크게 느껴졌다. 한국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식재료들과 상품들이 참 신기했다. 이런 게 여행이 주는 묘미이겠지.
남편은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음식점에 갈 때마다 하몽을 먹었는데, 제일 맛있었던 하몽을 꼽아봤는데 바로 보케리아 시장에서 팔았던 소량의 하몽이 맛있었다고 했다. 스페인에서 여러 하몽을 먹어본 후 남편과 나는 이론이 아닌 오감으로 맛있는 하몽을 찾는 방법을 배웠다. 눈으로 보기에 윤기가 나고 색이 선명한 붉은색을 띤 하몽이 확실히 맛도 있다. 남편의 하몽사랑에 나 또한 함께 있어주긴 했지만, 난 한 번 맛보고 더 이상 먹지 않았다. 원래도 냄새에 민감한데 특히 돼지냄새는 작은 냄새에도 조금 더 많이 느껴졌다. 하몽은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인 것으로, 나는 그냥 한 입 맛보더라도 냄새가 많이 느껴졌다. 반대로 남편은 하몽의 매력에 빠졌다. 스페인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공항에서 조차 하몽을 사 왔으니깐. 비록 나는 하몽을 좋아하진 않지만, 남편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웠다. 부부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건지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 거 같았다. 이렇게 점점 더 겉모습만이 아닌 내면도 어른이 되는 거겠지.
보케리아 시장을 빠르게 구경하고 바로 와인투어 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스페인 여행을 계획하면서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와이너리 투어였다. 전문소믈리에와 바르셀로나 근교 와이너리 생산지로 기차를 타고 가서 포도를 재배하는 것부터 생산 과정을 보고 와인을 맛보는 시간을 너무 갖고 싶었다.
나는 원래 술이 몸에 받지도 않을뿐더러 술을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남편과 연애하고 결혼하면서 술 한두 잔 정도 마시는 재미를 알았다. 특히 다른 술들보다 와인이 좋았다. 좋아지면 더 알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순리인 거 같다. 와인에 대해 조금 배울 수 있다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스페인이 와인 생산지로 유명하기에 와인을 배워볼 시간을 계획하면서 엄청 기대를 했었다. 한참을 알아봤는데 우리가 가는 여행일정에는 와이너리 투어 일정이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여러 다른 와인 투어를 검색하다 와이너리 생산지로 가지 못하는 대신 바르셀로나 시내 안에서 스페인 와인에 대해 설명해 주고 맛볼 수 있는 투어가 있길래 신청했다. 스페인에 사시는 한국인 소믈리에분이 하시는 거였고 나는 비록 와인 생산지로 는 못 갔으나 내가 흥미를 느끼는 와인투어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많은 기대를 하고 갔다.
약속장소에 도착해서 내부로 들어가니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한눈에 들어왔다. 집주인이시면서 소믈리에이신 분의 센스가 공간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나는 그런 감각이나 센스가 부족하기에 요즘엔 그런 사람들을 만나거나 공간에 가면 유심히 많이 살피기도 한다. 배우고 싶어서. 우리가 도착하니 반갑게 인사해 주셨는데 준비해 두신 와인 안주인 타파스를 모두 직접 만드신 거라고 했다. 맛도 맛이거니와 너무 정갈하고 예쁘게 담아놓으셔서 이걸 직접 만드셨냐고 몇 번을 물어봤던 거 같다. 간단하게 소개를 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스페인 와인에 대한 소개를 듣고 지역에 따라 나는 포도의 품종과 와인의 등급 그리고 남편과 나의 개인적 취향을 파악해 주시면서 준비해 두신 와인을 테이스팅 했다. 와인의 색도 보며 음미하는 법을 하나씩 배우며 맛을 보니 맛이 더 깊게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그냥 그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소믈리에분도 우리를 가르친다는 느낌보다는 함께 맛보며 대화하는 느낌으로 해주시니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화이트와인부터 레드와인까지 한 잔씩 총 5잔은 마신 것 같다. 너무 즐겁고 재밌어서 술이 술술 들어갔는데, 나는 욕심이 많아서 주신 와인을 다 마셨고 남편은 적절히 조절해서 먹었다. 끝날즈음에는 내 얼굴이 터질 듯 빨개졌던 거 같다. 취한 것 같았지만 정신은 아직 있다고 말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사실 많이 취했던 거 같다. 그렇게 원래 약속되어 있던 3시간이 훌쩍 넘은 시간을 소믈리에분과 즐겁게 보내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한 곳은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밤을 장식하기 위해 야경이 아름다운 벙커로 이동했다.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를 이동했던 거 같다. 이미 나는 많이 취한 상태여서 버스에서 살짝 잠을 잤다. 남편이 옆에 있어서 그래도 다행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후 벙커에 가기 전에 올라가서 먹을 간단한 간식을 사서 벙커로 향했다. 역시나 많은 젊은이들이 있었고 분위기도 정말 자유롭게 느껴졌다. 우리는 주변을 살피며 바르셀로나 시내가 잘 보이는 자리를 찾아 냉큼 앉았다. 나는 어디를 여행가든 높은 곳에 올라가 야경을 보는 걸 참 좋아하는데 벙커에서 내려다본 바르셀로나 야경은 너무 멋있었다. 조명이 켜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도 바르셀로나 중심에서 존재감을 뽐내며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남편도 나도 한동안 말없이 야경을 봤다. 서로 아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을. 그렇게 우리는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밤과 아름다운 작별인사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