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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쏟아지는 계절의 모닝 카페

11월 10일 월요일 아침

by 상구

가을 날씨는 주어지는 대로 모조리 누려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특히 오늘과 같이 하늘에 구름 따위 없는 날이라면 그 생각은 더 강해져 이불을 뿌리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면 맛있는 빵과 커피를 파는 공간이 우리 집에서 나와 4분 거리에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다. 언젠가는 아무도 없는 숲 속에 사는 상상도 하지만, 집 앞 베이커리 카페의 존재만으로도 꽤 큰 안정감을 느끼는 나를 보면 그 상상을 실현시킬 자신이 없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아니, 그 때라면 스스로 빵을 구울 줄 아려나. 어찌 됐던지 간에 당장은 남이 타준 커피와 남이 구운 빵을 먹고 싶은 아침이다. 날씨를 누리자. 함께 나갈 것을 눈치채고 발발대는 강아지의 몸에 줄을 채운다. 가을 노래를 귀에 꽂는다. 산뜻하구나!


어젯밤에는 닫혀있는 창문 밖에서 '솨- 솨-'히는 큰 소리가 났다. 이 밤에 소나기가 내리다니, 참 알 수 없는 날씨다 했다. 창을 열어봤다. 젖은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 소리는 물줄기의 것이 아니라, 바삭한 잎들이 서로의 몸을 부딪히며 떨어져 내리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우수수수' '차라라락' '솨아아아'. 여름 속에서 가을 냄새를 맡은 날처럼, 여름과 가을의 햇빛이 다르다는 걸 눈치챈 날처럼, '높은 가을 하늘'이라는 말을 이해했듯이, 언젠가는 소나기 소리와 낙엽의 소리를 구분해 낼 수 있을까?


글쎄. 아직도 나는 어제 잠깐의 비바람이 불지 않았던가, 믿고 있다. 그 시각 운전을 하고 있다는 사람에게 굳이 빗길 안전 운전하라는 메세지를 했기 때문이다. 시야를 방해할 것만 같은 세찬 비의 소리가 그저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에 불과했다면, 그 메세지는 사고가 아닌가. 꽤 큰 마음을, 그 유난함을 들켜버리는 순간이었다. 뭐, 알아서 받아들이라지? 쓸모없는 걱정은 아무에게나 주는 게 아니라고.


어제 정말 비가 내렸다면, 오늘의 날씨는 기적이다. 아주 맑고 선명하다. 카페 창 밖의 잎, 제각각의 색이 눈길을 끈다. 버드나무 잎은 회색과 노란색이 섞였다. 은행잎은 당연히 노랗다. 플라타너스 잎은 군데군데 잘 익은 빵의 색이 드러난다. 어떤 나무들의 잎은 빨갛고, 어떤 건 노랗거나 갈색이다. 모두 가을볕을 받아서 그 빛깔이 선명하다. 이 잎들이 가지에서 모두 떨어질 때쯤이면 같은 자리에는 흰 눈꽃이 피겠다. 그치만 아무래도 가지에는 원래 붙어있어야 하는 것들이 붙어 있을 때 가장 아름답지 않은가? 그러니까 이맘때쯤에 나는 제발, 제발 조금만 더 늦게 낙엽이 되어라, 하며 나뭇잎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내 시선에는 아무런 힘이 없으니, 시간이 흐르듯 잎은 떨어진다.


결국 바람을 원망하게 된다. 가을의 바람은 춥다. 바람의 정도에 따라 온도가 다르게 느껴진다. 바람만 불지 않는다면 해가 드는 땅은 따뜻하고 그늘이 진 곳은 시원하다. 그저께는 가을바람을 느끼며 뛰다 감기 기운이 들었다. 어제는 거센 바람 때문에 가지에 좀 더 오래 붙어 있을 수 있던 잎들도 속수무책으로 떨어져 버렸다. 제 힘이 다 했을 때, 제 의지대로 떨어졌던 잎은 그러니 얼마나 큰 행운인가.

어떻게 떨어졌건 낙엽은 어차피 버려지고 말 텐데 뭐 그리 다른 삶이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내 옆에 놓인 책 속에는 우연히 떨어져 꽂혔고, 그래서 그 채로 박제되어 버린 나뭇잎이 있다. 내 방에는 외할머니가 고르고 골라 내게 건넨 예쁜 단풍잎이 있다. 3년째 같은 자리에, 같은 케이스에 담겨 있다.


차분한 분위기의 카페에 앉아, 주문해 둔 빵과는 내외하며 가을의 문장을 쓴다.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아침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우수수 떠나가고, 잠깐의 고요함이 흐르다, 내가 각기 다른 낙엽의 삶을 상상할 때에 점심 식사를 끝낸 무리들이 들어왔다. 시간이 흐른 것이다. 나도 잠시 후에는 이 카페를 떠나게 되겠지. 빵은 봉투에 담아 가야겠다. 바로 집으로 가기보다는 산책을 해야겠다. 날씨가 허락하는 한, 바람이 그리 거세지 않다면, 더 오래 가을의 나무를 눈에 담아야겠다.


아무튼, 좋은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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