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 수요일 낮
지난주에 면접을 본 회사에서 운영하는 공간에 앉아있다. 오늘은 면접 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면접 결과가 어떠하든 그 결과는 꼭 밖에서 봐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집 안에서 확인했다간 침대에 엎어져버릴 것이 뻔하니까. 다음 면접을 앞두게 된다면 긴장감이 온 몸을 휘감아 누울테고, 다음 일정이라곤 없는 상태가 된다면 긴장이 풀리고 서운함이 밀려와 이불 위로 넘어질테지. 어쨌든 누워버린다면 하루는 끝이다. 그렇게 오늘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대낮이지만 맥주를 마셔본다. 제법 오래 이곳에 머무르겠단 작정이다.
언젠가의 나는 탈락한 회사와 관련된 것들은 모두 차단을 해야만 했었다. 그게 제품이 되었든, 콘텐츠나 장소가 되었든 동일하게 적용됐다. 왜, 전 애인이 본인의 소셜 계정을 차단했다면 그건 굳이 차단을 해야만 할만큼 마음이 파동이 크다는 근거라는 말이 있지 않나. 그와 비슷하다. 미련이 남고 아쉬워서가 됐든, 밉고 서운해서 그렇든, 눈에 마음에 담고 싶지가 않아진다. 그렇게 눈을 선택적으로 가린채 다니다보면 상처가 쉽게 잊혀지느냐? 묻는다면.. 마음에 파도가 칠 일은 없으니 비교적 잔잔하긴 하나 그렇다고 개운하게 낫지도 않는다. 감정을 마구 쏟아내어 슬퍼하거나 원망한다면 좀 더 빨리 깨끗하게 나으려나.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그럼 왜 지금은 "직면"하느냐. 이유라면 명확하게 떠오르지는 않지만, 글쎄. 내 나름대로의 '앞으로'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떨어진다면 아쉽겠지. 납득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후회는 아주 없다. 그리고 내게는 오늘의 당락만큼이나 중요한 것들이 많다. 특히 요즘은 1년치 운을 미리 끌어다 쓴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좋은 인연과 기회가 몰려왔다. 이렇게까지 잘 풀려온 일들이 많다면 탈락 하나쯤은. 삼켜낼 수 있다. 다음 기회를 기다려볼 수 있다.
흠. 결국 무언가(누군가)를 최우선순위로 두냐 두지 않느냐의 문제일까.
무조건 맞는 방향도, 선택도 없겠다 싶은 요즘이다. 난 아주 가까운 최근까지도, 보릿고개에 허덕일지언정 무력한 근로소득자가 되지는 않겠다 생각했다. 그치만 와중에 욕심나는 기회는 있었고, 홀린 듯 하루 시간을 통째로 써가며 지원서를 썼더랬다. 서류 탈락이 되더라도, 어떠한 자리에 나를 끼워맞추는 작업은 가끔씩 필요하다는 생각도 했다. 겸사 겸사 이력서도 정리하고, 생각도 정리하고, 앞으로 내게 어떤 배움과 경험이 더 채워져야하는지를 확인할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보통 일이 되려면 아주 생각지도 못한 구석에서 된다. 이걸 꽤 지각하고 사는데도 막상 그런 일이 생기면 놀란다. 이게 이렇게 된다고? 이리 이어진다고? 한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정장을 입고 가야하는 면접 자리에 참석했다. 면접비를 주는 회사를 만났다. 절로 합격 욕심이 나는 대우였다. 돈의 맛.
이러나 저러나 한다. 이러나 저러나의 시기. 너무 열린 결말로 산다. 이동진 평론가가 인생에 관해서는 꽤 적확한 통찰이 있길 빈다. '하루 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아무튼,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