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1일 금요일 아침
아침부터 기차를 탔다. 기차에서 마시는 커피와 주전부리는 왠지 평소보다 5% 정도는 더 맛있다. 아무래도. 창밖의 풍경 덕분이려나. 기차에 타면 꼭 창가에 앉고 싶다. 경치를 구경하기에 기차만 한 교통수단이 없다.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아서 시선을 요리조리 옮기기가 참 좋다. 오래 보아서 결국 아름답지 못한 감상이 되거나, 짧게 지나쳐서 알듯 말듯한 미제로 남는 건 싫으니까.
사실 꼭 기차가 아니어도 난 창가 자리를 좋아한다. 경기도에 살게 됐던 어느 해에는 광역버스 안에서 한강을 볼 일이 많았다. 한강은 맑은 날에도 비 오는 날에도 밤에도 낮에도 그저 그런 날에도 멋졌다. 벅차지 않은 날이 없었다. 하지만 버스 안에서 울먹거릴 것처럼 풍경을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커튼을 쳐두고 자거나 핸드폰을 봤다. 나는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바깥 풍경을 감상하며 다짐했다.
‘아무리 삶에 지친 어른이 되어도,
혹시 서울 살이가 너무 익숙해졌어도,
한강 다리 위에선 꼭 한강을 바라보겠다.
지금의 감흥을 잃지 않아야겠다.‘
지금 생각하면 묘한 선민의식이 섞여도 있지만, 살랑거리는 옷을 입고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면 한강이 참 예쁘기도 했겠지 싶지만. 당시의 다짐은 지금의 나를 만들기도 했다. 굳이 싶은 나만의 법칙을 만들고, 그걸 지켜가다 보면 억지로라도 자주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렇게 살아갈 이유를 찾고.
팔자 좋았다, 세상살이 힘들어서 그럴 여유 없다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바쁠수록 제 팔자 더 잘 챙겨야 하지 않을까? 하루에 두 번, 아니 한 번이라도 하늘을 올려다본다면. 어제와 오늘의 노을을 다르게 본다면. 매일 지나치는 동네의 감나무가 계절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한다면. 그렇게 보낸 현재가 쌓여서 만들어 내는 미래는, 많은 걸 장담할 순 없겠지만, 최소한 무척 선명할 것 같다.
사소한 것들을 잊지 않는다면 삶의 해상도는 높아진다. 더 밝고 명료한 세상을 산다. 적어도 난 그렇게 믿고 산다.
아무튼, 좋은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