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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미영 Jan 14. 2020

20년간 해 온 나의 업에 대한 생각

영업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고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가? 

2020년! 영업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지 만 20년이 되는 해이다. 운 좋게 적성에 맞는 일을 선택한 덕에 지금껏 잘 살아왔지만 과연 나는 이 업에 대해 얼마나 전문성을 갖춘 사람인지, 그래서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새해 아침이다. 영업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고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하는가?


‘The Wolf of Wall Street’에서 벨포트역으로 나오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영업사원으로 막 채용한 직원들(친구들)에게 펜을 주면서 자신에게 팔아보라고 한다. 잠시 생각하던 한 직원이 냅킨을 주면서 그의 이름을 써 달라고 한다. 그러자 디카프리오는 ‘펜이 없네’라고 대답한다.


세일즈 교육에 자주 활용되는 영상이다. ‘고객의 니즈와 영업활동’이라는 영업의 기본에 관한 얘기이다. 영업 현장에서 일을 하다보면 의외로 이 기본이 간과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값싸고 좋은 물건을 만든다고 저절로 비즈니스가 되는 것이 아니다. 좋은 물건이 값싸기도 쉽지 않거니와 우리가 값싸게 만들 수 있으면 같은 값에 더 좋은 물건을 만들거나 동등한 품질수준의 물건을 더 싼 가격에 내 놓는 경쟁자가 나오게 마련이다. 그래서 영업활동이 필요한 것이고 영업이라는 직군이 생겨나는 것이다. 영업을 잘 한다는 것은 값싼 물건을 잘 팔 거나, 같은 값에 엄청 좋은 물건을 잘 판다는 것은 아니다. 영업은 이윤이 나고 지속적인 거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좋은 딜을 성사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산다는 것은 고객의 입장에서 ‘변화’를 의미한다. 즉, 고객은 돈으로 저장되어 있는 가치를 사용성을 가진 제품이나 서비스로 교환하여 자신의 효용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막 태어난 아기가 있는 가장이 생명보험을 산다면 ‘내가 죽으면 우리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가나’하는 고민을 더는 것이고, 막 전기 기능사를 따 수리업을 시작한 사람이 다마스를 한 대 산다는 것은 출장 서비스를 통해 더 넓은 지역에서 일감을 딸 수 있는 이동수단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고객들은 자신의 니즈를 만족시키는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한다. 이러한 고객의 니즈와 이에 상응한 지불의사와 능력을 포착하고 그 니즈를 충족시켜 줄 때 저장가치와 사용가치의 교환에 의한 거래, 즉 구매와 동시에 판매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럼 이렇게 고객의 니즈를 포착하고 고객의 지갑을 열게 하게 하기 위해는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우선은 공감 능력이다. 고객의 입장에 빙의되지 않고는 고객의 처지나 고객에게 의미있는 니즈를 읽어내기 어렵다. 그리고 고객의 입장에 빙의되려면 고객의 상황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한다. 고객을 만나 좋은 질문을 하는 영업사원들의 실적이 높은 이유는 고객의 상황을 섬세히 파악하여 고객의 니즈를 정확하게 포착해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업사원이 고객사 방문을 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은 질문 리스트를 만드는 일이다. 고객의 처지와 생각을 더 많이 이해할 수록 내가 파는 물건이나 서비스가 고객의 니즈에 어떻게 부합하는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영업팀의 매니저가 되어 팀원을 코칭할 때의 일이다. 고객사 방문전 질문 리스트를 함께 작성하고 고객을 방문했는데 대화를 이어가던 중 팀원이 수첩을 뒤적이는 것이었다. 대화를 하던 중에 다음 질문을 잊어버린 것이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런 훈련을 반복하며서 그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는 법을 배우고 제한된 시간에 고객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게 되었고 당연히 실적도 높아졌다. 질문을 잘 하고 이를 통해 고객의 니즈를 정확하게 포착하는 기법을 몸에 체득하게 될 때 수주 확율도 자연스럽게 높아지게 된다.  


두번째는 내가 판매하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IT 제품들이 기존 시스템과 연계되어 복잡하게 얽혀 연동될 수 있도록  여러가지 특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다양한 기능들이 장착되어 고객의 복잡한 요구에 대응할 수 있도록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제품과 서비스의 고도화와 복잡화로 인해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IT 업계에서도 ‘형님 영업’들이 점차 시장에서 퇴출되어 가고 있는 추세가 가속화 되고 있다.  40시간 근무제가 정착되고 워라밸(워크&라이프 밸런스)이 중요해 지면서 고객들도 한가하게 영업들과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다. 직접 검색해보면 쉽게 찾아지는 정보를 얻기 위해 영업 사원을 만나 자기 얘기를 해 주고 싶은 사람이 줄어드는 것이다. 라이선스 판매에서 클라우드 서비스로 비즈니스의 전환을 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어카운트 영업’ 직원의 수를 늘이기 보다 ‘솔루션 전문 영업’ 직원의 숫자를 늘여가면서, 영업 직원들에게 기술 자격증을 따도록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영업에서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내가 파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고객의 니즈를 제대로 이해하고 내가 판매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잘 알게 되면 영업에 필요한 나머지 것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연스럽게 체득될 수 있게 된다. 고객과의 약속을 잡는 것이 부담스러운가? 고객들은 자신의 일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한다. 내가 그들의 문제를 이해하고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소위’ 나를 만나는 일이 영양가 있는 일’이라면  고객들은 기꺼이 시간을 내어 준다. 프리젠테이션을 멋지게 하고 싶은가? 그것도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프리젠테이션은 내가 정해진 시간의 발표를 끝냈을 때 고객의 마음에 변화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아 저 회사와 일을 해 보고 싶다’, ‘저 솔루션을 사서 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인데 내가 그들이 어려움을 겪고있어 개선하고자 갈망하고 있는 니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내 제품이나 서비스가 그 니즈를 해결하는데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면 영업의 50% 쯤은 끝낸 셈이 되는 것이다. 20년 전 내가 ‘엔터프라이즈 자바 빈’이라는 번역서를 출간하면서 기술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난 뒤부터 고객들이 나를 찾고 친구들에게 소개해 준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그리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 분야에서건 영업 전문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경청하고 공감하고 질문하는 기술을 연마하고 판매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전문가가 되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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