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이야기
《서울:서울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는 강홍구의 서울》,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2024.5.2~8.4)
오늘 소개할 전시는 《서울:서울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는 강홍구의 서울》입니다. 전시도 글도 시작한 지 꽤 되었는데, 요즘 물리적으로 포스팅하는 게 쉽지 않다 보니 많이 늦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몇 주 남아있으니 못 보신 분은 꼭 보길 바라겠습니다. 도슨트 해설도 있으니 참고하시고요.
《서울:서울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는 강홍구의 서울》은,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에 소장된 강홍구(1956~) 작가의 기증 작품 2만여 점을 기반으로 한 기획전입니다. 서울시내 곳곳에서 다양한 전시들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지만, 다녀보면 투자 비용과 시간 대비 80% 이상 만족할 만큼의 내실을 갖춘 전시는 그리 많지 않더라고요. 유명 작가나 대형 기획사의 전시라고 해도요.
하지만 이 전시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표본 삼아, 대한민국, 나아가 전 세계의 도시 변화와 그에 따른 지라·인문학적 변화들을 탐구하게 합니다. 전시가 주는 메시지와 적절한 작품 구성, 고물가 시대에 전시 관람이 비용이 없다는 것도, 전시를 보고 난 후에 라운지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도, 도보거리에 있는 평창동 소재 다른 미술관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도 이곳을 찾는 큰 장점이죠.
전시는 '강홍구의 서울 아카이브'와 '기록에서 기억으로' 두 개의 섹션으로 나눠집니다. 1층 1,2 전시실과 1,2층 아카이브 라운지에서 선보이는 214여 점(미발표 초기작 88점 포함)의 사진, 회화, 영상, 오브제는 "서울"이라는 키워드로 연결되는 작품들입니다. 작가가 제시하는 서울의 이미지를 참고 삼아 궁극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이란 도시, 전국, 전 세계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게 하죠.
전시장엔 초기작부터 최근작 순서로 작품이 배치되어 작업 방식의 변화를 보기에도 좋습니다. 다만 기증작을 바탕으로 전시가 구성되다 보니 주요 시리즈 위주로 구성되었다는 게 조금 아쉽긴 해요. 강홍구 작가의 작품 중엔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사진들이 많거든요.
작가 강홍구는 전남 신안군 지도읍 어의리에 있는 작은 섬 출신입니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약 7시간을 이동해야 할 만큼 도시와 많이 떨어진 섬이죠. 그는 1976년 목포교육대학교 졸업 후 6년 동안 섬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고, 1984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에 진학하면서 서울 생활을 시작합니다. 예술가라는 직업이 있는지 몰랐을 정도로 처음부터 예술에 뜻을 뒀던 건 아니지만, 또 다른 선택의 기회가 왔을 때 그가 선택한 건 예술이었죠.
1 전시실 '강홍구의 서울 아카이브' 입구에 걸린 <서울 1985>(2024)는 그가 대학교 2학년 때 만든 작품입니다. 분실되었던 것을 이번 전시를 위해 다시 제작했어요.
작가는 본격적으로 서울 살이를 시작한 1984년까지 서울에 딱 세 번 옵니다. 1976년과 1979년엔 미술 전시회를 보러 당일치기로 서울에 들렀고 1983년엔 홍대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 서울에 왔죠.
섬 출신 작가에게 크고 복잡한 도시 서울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상이 되었고,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한 작품이 바로 이 <서울 1985>입니다. 서울에 땅을 소유한 대기업과 브랜드 로고를 잡지에서 오려 서울 지도에 붙여 만든 콜라주 작업으로, 1985년의 원작에 2024년의 현실이 반영된 작품입니다.
작가는 1990년 홍익대 대학원 졸업 후 1992년에 첫 개인전을 엽니다. 그리고 이후 회화 작업에서 디지털로 작업 매체를 바꿉니다. 하지만 사진 작업을 바로 시작하진 않고 컴퓨터와 스캐너, 초창기 그래픽 프로그램을 활용해 도시 풍경이나 작가 자신을 찍은 사진, 대중매체에서 빌려 온 이미지들을 합성한 가상의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사진이 가지고 있는 기록성, 객관성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었어요. 사진 속 이미지는 무조건 믿을 대상이 아니라 가짜일 수 있고 왜곡될 수 있다는 사고를 전제로요. 그가 영화 장르를 좋아했다는 것도 영향 관계가 있겠지만, 어쨌든 그는 ‘사진도 얼마든지 가짜일 수 있다’, ‘이미지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등의 말들로 그 당시 작업 의도를 설명했죠.
1996년 발표한 <도망자> 역시 이미지를 합성해 만든 작품입니다. 작품 속엔 도망가는 남성이 왜곡되어 표현되는데, 바로 작가입니다. 그는 역사로부터, 감옥으로부터, 일종의 권력으로부터, 상업적인 광고로부터 도망가지 못하는 현시대를 <도망자> 시리즈를 통해 보여줍니다.
<도망자> 시리즈는 원래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시작됩니다. 1980년 5월 18일 당일 작가는 ‘섬’에 있었고, 며칠 후 광주에 도착하면서 끔찍한 현장을 목도했죠. 도망치고 싶었지만 기억의 잔상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그날의 기억’은 작가에게 부채감으로 남아 초기 작업의 주제어가 됩니다.
1999년에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한 작가는 서울을 돌아다니며 본격적으로 디지털 사진 작업을 진행합니다. 영상 매체 속 이미지와 자신의 인물 사진을 합성해 엉뚱하고 부조리한 이미지를 만들었던 작가는, 조금 더 현실화된 배경의 또 다른 가짜 이미지를 만들어 냈죠. 회화로 시작해 바로 사진 작업을 진행하지 않고 디지털 매체를 활용한 합성 작업을 거쳤던 이유는 사진보다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였다고 해요. 궁극적으로는 위대하고 독창적인 미술을 기준으로 내세우는 기존 미술 체계에 대한 저항으로 합성 사진을 시도한 거지만요.
당시 작가가 사용한 디지털카메라 최대 화소는 300만이었어요. 갤럭시 S24가 5000만, 아이폰 15가 4800만 화소이니 당시 작업용 카메라 사양이 꽤 떨어졌다는 건 알 수 있죠. 300만 화소 디지털카메라로는 큰 이미지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어, 대상을 부분적으로 확대 촬영한 후 여러 장을 이어 붙이고 그 위에 매트 바니시로 마감을 했죠. 그 작업 과정이 잘 드러난 작품이 <골목>입니다. 이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었고, 자세히 보면 세로로 이어 붙인 흔적이 보여요. 이때의 ‘이어 붙이기’ 기법은 이후에도 그의 고유한 작업 기법으로 자리해 사진 속 풍경과 현실 풍경과의 간극, 괴리 등을 표현합니다. 참고로 2000년대 초반 충무로에선 작업을 위한 대형 디지털 컬러 프린트도 가능했고, 이 컬러 프린트를 활용해 160cm 이상의 대형 사진 작품도 만들 수 있었다고 해요.
<물고기가 있는 풍경>도 홍대 골목에 물고기를 배치해 만든 디지털 합성 이미지 작품입니다. 학교 앞을 지나가던 어느 날 ‘여기에 생뚱맞은 물건이 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작품으로, 서로 무관해 보이는 장소와 사물을 조합해 특별할 것 없는 일상 풍경을 낯설게 만들었죠. 사실과 허구,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해 관람자에게 이미지의 본질이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은, 사실 어떤 특별한 의미를 의도하기보다 사회 현실과 정치적인 이야기에 염증이 있었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무의미한’ 작업을 하고 싶어서 했다고 해요. 뜬금없는 위치에 엉뚱한 물건을 놓음으로써 그 주위 환경 전체가 다시 환기되는 걸 바랐던 거죠.
강홍구 작가는 2018년에 불광동 작업 5,087점과 2023년에 은평 뉴타운 작업 15,600여 점의 디지털 원본을 서울시에 기증합니다. 10여 년간 불광동 재개발 지역을, 20여 년간 은평 뉴타운 재개발 지역을 촬영했고, 이 사진들이 서울 일대의 변화를 주제로 작업한 기록물이라 서울시에 보존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는 이유에서 기증했다고 해요.
〈미키네 집〉과 〈수련자〉는 불광동 재개발로 주민들이 떠난 자리에서 발견한 오브제를 적당한 장소를 찾은 후 연출하여 촬영한 시리즈입니다. '사람들은 이사를 가면 무엇을 버리고 갈까'에 대한 궁금증으로 빈 집들을 돌아다니며 발견한 오브제로 찍은 연작으로, 강홍구 작가를 대변하는 시리즈입니다. 서양 주택의 형태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인형집 '미키네 집'과 남코라는 일본 게임회사가 95년에 발매한 테이켄(鐵拳)이라는 게임 등장인물 캐릭터 인형인 '카주야 미시마(kazuya mishima)'는 그렇게 불광동 지역의 재개발 현장을 누비며 이곳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집중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되죠. 정말로 보여주고 싶은 건 재개발 현장과 그에 따른 인문지리학적 변화이지만, 감상자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맥거핀(Macguffin)처럼 이 두 대상을 이해하게 됩니다.
사진은 그래서 어렵죠. 영화나 문학 작품은 그 서사를 풀어낼 수 있지만, 사진은 한 장면에 서술적인 요소와 시각적 은유, 맥거핀 장치 그 너머에 있는 것들을 보여줘야 하잖아요. 결정적 장면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제 생각엔 한 장으로 모든 걸 담기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작가도 말했듯 사진이란 건 시각적인 장면 하나로 모든 것을 압축해야 하는데, 그 압축은 반드시 사진 찍는 사람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고, 너무나 많은 우연들,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이 있으니까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사진 작품을 보고 이해하는 방식도 앞으로는 좀 달라져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사라지다 – 은평 뉴타운에 대한 어떤 기록, 흰 개>는 재개발로 이미 철거된 지역을 찾을 때면 종종 마주쳤던 주인 잃은 개들과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는 개발 현장을 함께 담은 작품입니다. 뉴타운 시범지구로 선정된 후 마을 철거와 이주가 본격화되면서 그 일대에는 미처 데리고 가지 못했거나 버려진 개들이 무리를 지어 살았다고 해요. 재개발을 위한 철거와 이주, 그 과정에서 초래된 생활공간의 황망한 소멸에 대한 관찰이 주를 이룬 불광동 시리즈와 달리, 은평 뉴타운 시리즈는 오랜 생활 터전이 정말 새로운 공간으로 변모되는 일련의 과정을 보다 긴 호흡으로 다룬 연작입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작가의 글 중 일부를 발췌한 것으로 대체합니다.
“내가 해온 서울에 대한 작업이란 결국 개인적인 서울에 대한 해석이고 아카이브이다. 그리고 그 아카이브는 서울에 대한 작업을 한다는 의식 없이 만들어졌다. 의식 적으로 작업을 한 것은 은평 뉴타운부터이다. 어떻게 서울 시내에 지방 면 소재지 같은 풍경이 가능하고, 그것이 한순간에 철거되고 아파트 단지로 변모하는가에 대한 놀라움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 이후의 서울에 대한 작업들은 모두 공간, 장소와 시간의 결합, 그것을 생성해 낸 권력과 자본, 욕망에 대한 것이었다.” - 작가 인터뷰 중 발췌
"내가 은평 뉴타운에 대한 사진을 찍고 관심을 가진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혹은 걸어서 은평 지역을 둘러보러 다닌 것은 불광 1동으로 이사를 한 해인 2001년 여름. 작업실에서 북한산을 오르는 길이 먼저 흥미를 끌었다. 그 길은 북한산 수리봉 뒤편 산자락에 나있었다. 물론 정규 등산로가 아닌 길들이었다. 심심할 때면 샌들이나 슬리퍼를 신고도 웬만한 높이까지는 오를 수 있었고, 오르다 힘들면 바위 비탈에 주저앉아 산 아래 더러운 책처럼 펼쳐진 집들과 한강 너머 뿌연 먼지로 흐려진 도시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지금은 정규 등산로를 제외한 모든 길들이 철책으로 막혀 그런 재미도 사라져 버렸다. 다음으로는 지하철 6호선 독바위역을 지나 폭포동으로 가는 길이었다. 역시 북한산 산자락이고 등산 코스가 있지만 그 길보다는 개울을 따라 지어진 집들과 마을, 들판과 주말농장을 살피는 것이 좋았다. 주위엔 꽃 농장이 많아 여름이면 백일홍 나무가 연자주색 꽃을 무더기로 피우곤 했다.
폭포동 길을 따라 은평 웹 미디어 고등학교와 신도초등학교를 지나 구파발역에 이르는 길도 흥미 만점이었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은 읍, 면 단위 소도시의 분위기가 있었고 시간도 느릿하게 흐르는 듯했다. 구파발이나 기자촌 앞에서 진관사로 가는 길과, 거기서 오르는 북한산에 등산로도 좋았다. 그 밖에도 한양주택, 기자촌 앞의 마을들도 둘러볼 만했다. 동네와 길들을 바라보며 농촌 분위기와 도시 변두리의 분위기 사이에 있는 이 기묘한 공간을 느긋하게 탐색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때가 2002년 무렵, 실제로 틈틈이 사진을 찍으러 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갑자기 뉴타운 계획이 발표되었다. 뉴타운이 발표되자 여러 가지가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의 하나는 뉴타운 계획이 발표되기 이전에 찍은 모든 사진들의 맥락이 완전히 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사진에는 정체성이 없다는 존 택의 말이 옳다.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그저 일단 찍어 두자 내지는 농촌과 도시 사이의 접점과 변이를 추적해 보려는 의도가 있었다. 때문에 지금처럼 사라진 뉴타운 지역에 대한 기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라진 것들에 대한 의도하지 않은 기록이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설사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은 먼 훗날이 되리라고 생각했었다.
한 마디로 현실의 변화가 사진의 맥락을 바꾸고 사진을 다시 편집하고 위치를 전환시켜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개발적 상상력, 시골스러운 변두리 동네를 쓸어버리고 아파트를 짓는다는 토목공사적 상상력이 사진적 상상력을 훨씬 앞질러버린 것이다. 때문에 뉴타운 이후의 사진은 결국 뉴타운에 대한 우연한, 의도하지 않은 기록 사진의 성격을 띠고 말았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든 간에. 뉴타운 개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 지구와 2 지구의 아파트 건축은 한참 진행 중이고, 3 지구의 일부는 이제 기반 공사가 끝나가고, 나중에 편입된 기자촌은 아직 주민들의 이주도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 사진과 기타 작업 결과물들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그럴 의도도 없었고 계획도 없었다. 하지만 결국 이 의도하지 않은 사진들이 은평 뉴타운에 대한 어떤 기록이 된 것이다." - 강홍구, 「은평 뉴타운에 관한 어떤 메모」 중 발췌
1 전시실에서 2 전시실로 가는 길엔 라운지 공간이 있습니다. 통창 아래 책상이 놓여 흡사 도서관 자료실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로비이자 라운지 공간이에요. 그렇다 보니 전시도 이곳에서 연결되는데, 1층 기둥과 좌대, 2층 벽면에도 작품이 있으니 꼭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이곳에 있는 네 권의 컬렉션 북은 이 전시를 위해 제작된 작품집으로, 강홍구 작가가 기증한 2만 1000여 점의 사진 중 불광동과 은평 재개발 관련 사진 600여 점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보다 보면 작가가 남긴 손글씨 기록도 있으니 꼭 놓치지 마세요. 보는데 시간이 그렇게 많이 들지 않더라고요.
천고가 높은 2 전시실에선 서울의 서로 다른 공간을 주제로 한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사진 기준으로 왼쪽은 재개발로 사라진 집을 기념하여 제작된 <그 집>(2010) 연작, 오른쪽은 아직 재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도심 공터에 우거진 무성한 초목을 포착한 <녹색 연구-서울-공터>(2019) 연작입니다. 재개발로 사라진 집과 아직 재개발의 손이 닿지 않은 빈터가 갖는 공통의 운명, 도시의 모든 공간은 잠재적으로 재개발 지역이고 권력과 자본의 사회적 욕망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작가의 비판적 시각을 환기해 주는 공간이에요.
연작 <그 집> 은 사라진 집과 그 집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사람들에 대한 존경의 뜻을 담아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작가는 건축가가 설계하지도 않고 제대로 지어지지도 않은, 바위 가득한 산언덕에 지어진 불광 3 구역의 집들을 ‘생존의 건축’이라 불렀죠. 그리고 그는 바위 사이에 자리한 집들을 촬영해 흑백으로 변환해 프린트한 후 기억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색감들을 물감으로 채색해 재구성합니다.
“사진은 뭔가 뻔뻔하고 공식적인 성격이 강하다. 사진은 사실이 아닌 것도 사실인 듯 보이게 하고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만든다. 사라진 집들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 오마주 등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사진에 색칠을 해 보기로 한다. 흑백 프린트를 하고 그 위에 색을 칠해 사진과 그림 사이에 있는, 사진도 그림도 아닌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강홍구, 「그 집 」 기록 중 발췌
<녹색 연구-서울-공터> 속 대상지들은 여러 이유들로 개발 지연이 일어난 곳들입니다. 하지만 아직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이 장소들 역시 언젠가는 개발되어 사라질 운명을 피할 수 없죠. 작가는 도시 공간 중 가장 무심해 보이는 녹색으로 덮인 이 공터들이 사실은 자본과 권력, 욕망이 가장 첨예하게 부딪히는 장소라는 역설을 지닌 공간이라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시장을 나올 때 보게 되는 <서울 과거 혹은 미래>는 작가의 질문이 담긴 작품입니다. <서울 과거 혹은 미래>는 인류가 존재하지 않았던 오랜 과거의 서울의 모습이기도 하고, 여러 사회 문화적 조건들로 인류의 문명이 사라진 후의 서울의 모습이기도 하죠. 이 작품은 우리가 기억하는 서울의 모습은 어떤 곳인지, 어떤 곳이길 바라는지에 대한 질문을 품고 있어요.
'서울은 하나의 도시이면서 여러 개의 도시이고 여러 개의 도시이면서 하나의 도시'라는 전시 글 소개 글처럼, 이 전시는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지, 그 사이 파괴되는 자연과 일상은 또 얼마나 많은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합니다.
모든 사람의 생각은 다 다르겠지만, 저는 뭔가를 인위적으로 계속 만들고 채운 도시보다는 최소한의 개입으로 자연을 유지하며 서로 공존하는 도시에서 살고 싶습니다. 저는 이번 삶이 끝이겠지만, 앞으로 태어날 미래세대에게도 그들이 뭔가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은 남겨둬야 하잖아요.
2층 아카이브 라운지에도 전시는 계속됩니다. 주목할 작품은 <순이> 시리즈로, 순이는 철거 지역에서 주운 숟가락 든 인형에 작가가 붙인 이름입니다. 7장의 컷으로 소개되는 순이의 서사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울로 떠났지만 절망을 안고 돌아온 순이를 통해, 경제 발전을 향한 맹목적인 믿음 아래 급속도로 전개되어 온 도시 개발의 이면을 보여줍니다.
2층 라운지 공간에는 서울시 지도를 본뜬 가구가 놓여있습니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공간이지만, 프로그램이 없는 날엔 관람객 의자로 사용됩니다. 전시 보다가 힘들면 앉아서 쉬어도 괜찮으니 꼭 앉아보세요.
내일부터 다시 장마입니다.
찌는 듯한 더위도 싫고, 퍼붓듯 내리는 비도 싫고. 꿉꿉한 것도 눅눅한 것도 싫지만, 다가오는 장마를 막을 수는 없네요. 언젠가부터 날씨가 점점 극단적으로 변해가는데, 자연재해는 불가항력이겠지만, 부디 올해 장마엔 인재 소식 없이 지나가길 바라봅니다. 이미 저번 비로 남부 지방 피해가 크니 더 이상의 피해가 없길 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