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이야기
못 봤다면 & 놓친다면 아쉬워해야 할 전시, 《프랑스현대사진》, 《베르나르 뷔페-천재의 빛 : 광대의 그림자》
비를 무섭게 내리꽂던 장마 후 찾아온 후텁지근한 여름입니다. 앞으로 지구는 계속 뜨거워질 테고 이미 멈출 수 없는 기후 변화도 치명적인 자연재해로 이어질 텐데, 한쪽에선 전쟁도 심화되고 있으니 참... 현실과 이상은 언제나 반대네요.
안 그래도 열대야에 시달리는 요즘 위메프·티몬 사태는 관계된 여러분들을 잠 못 들게 하고 있죠. 저도 자주 애용하던 사이트인 데다 티켓도 구매해 둔 게 있는데, 뭐... 기다리고 있습니다. 잘 해결되기를.
그래서 오늘은, 작품 사진 보며 마음의 평안을 좀 찾아보려고요 ㅎ 좋은 전시를 많이 봤는데, 하나하나 꼼꼼하게 소개 리뷰를 쓸 여유는 없어, '왜 봐야 하는지'에 중점을 두고 소개합니다. 실내 전시관이라 시원하고 내 돈 내산 후기인 데다, 무엇보다 작품이 좋으니 한번 믿고 가보세요.
근데 빨리 가보셔야 해요, 곧 끝나거든요 ^ ^::
첫 번째 전시는 성곡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 프랑스현대사진 》(2024.05.30~08.18)입니다.
알려진 대로 인류 최초의 사진은 조제프 니세포르 니에프스(Joseph Nicéphore Niépce, 1765-1833)가 찍은 풍경 사진입니다. 그 뒤를 노출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한 실용적 카메라로 인물을 최초로 촬영한 루이 쟈크 망데 다게르(Louis Jacques Mandé Daguerre, 1787-1851), 최초의 설정 셀피인 '익사한 사내의 초상'을 찍은 이폴리트 바야르(Hippolyte Bayard, 1801-1887) 등이 이었죠. 그 후로 조지 이스타먼(George Eastman)이 1892년에 코닥(Eastman KODAK Company)을 설립했고, 1913년 세계 첫 35mm 휴대용 필름 카메라를 선보인 라이카(Leica), 캐논, 니콘 등 우리에게 익숙한 카메라 브랜드들이 카메라 대중화에 기여하면서, 카메라와 사진 기술은 더 발전합니다.
기술의 발전은 그 매체를 작업의 도구로 사용하는 사진 예술가의 작업 방식에도 영향을 줬는데, 사진의 기술적· 미학적 변화를 보여주는 전시가 바로 《프랑스현대사진》입니다. 앞서 언급한 니에프스와 다게르가 프랑스인이니, 사진 종주국의 미학적· 기술적 수준을 볼 수 있는 전시이기도 하고요.
이 전시는 성곡미술관과 엠마뉘엘 드 레코테(Emmanuelle de l’Ecotais)의 공동 기획 전시입니다. 엠마뉘엘 드 레코테는 2020년부터 매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사진 아트페어 ‘포토 데이즈 Photo Days’의 설립자이자 디렉터로, 파리시립미술관에서 사진 전문 큐레이터로 재직했어요. '마담 포토그라피'라는 애칭으로 불릴 만큼 사진계에선 존재감이 큰 기획자라고 합니다.
전시에 소개된 22명의 프랑스 중견 작가들은 영상 작품을 제외하고 모두 1점 이상 출품했는데, 주제, 소재, 촬영기법, 인화 기법 등 그 면면이 새롭고 좋습니다. 사진이란 시각 예술에 대한 편견이 있었거나, 확장 가능성에 대한 궁금증이 있던 분이라면 이 전시를 본 후 새로운 관점으로 사진 예술을 바라보게 될 거라 확신합니다.
자연, 문화, 사회, 인간이라는 섹션 키워드로 전시를 구성했지만, 이 키워드 아래 작품이 종속되지 않고 서로 상호작용하도록 배치한 게 인상적이었고, 전통적인 촬영 방식으로 창작된 사진부터 인공지능을 비롯한 현대 기술이 체화된 작품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게다가 매 작품마다 다양한 인화 방식으로 작품화되어, 평면 사진이지만 꽤 입체적인 오늘날의 사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진전에서 관람에 불편을 끼친 반사 유리 액자도 이 전시에는 거의 없고, '사진이 이런 표현이 가능하구나', '다양한 인쇄 방식이 있구나'하며 사진 예술에 대한 상식도 쌓을 수 있어서 저는 꽤 재밌게 보고 왔습니다.
전시된 사진 작품도 다 너무 좋지만 영상 작품들도 비범합니다. 로랑 그라소의 <인공>(2020)은 27분인 상영 시간 끝까지 꼭 보길 바라고, 양주 레치아의 <바다>(1991) 섹션에서는 설치된 의자에 앉아 쉬었다 오길 권해드립니다. 45분간 동일 영상 반복이라 멍 때리기 딱 좋거든요. 그리고 분위기가 좋아요, 가보면 아시겠지만.
이 전시는 도슨트 해설도 제공합니다.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후 2시, 토요일엔 4시에 한 번 더 진행하니 꼭 들어보시고요. 설명은 30여 분 정도로 1,2관에 전시 중인 모든 작가를 한 번씩 훑어줍니다. 도슨트 해설을 듣고 작품을 보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거예요.
이 전시에 출품된 모든 작품이 다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쥘리에트 아녤, 로랑 그라소, 노에미 구달, 레티지아 르 퓌르, 장- 미셸 포케, 니콜라 플로크, 플로르, 라파엘르 페리아, 발레리 블랭의 작품이 제겐 좀 더 와닿았습니다. 원픽은 장-미셸 포케요. 여러분은 어떤 작가의 작품이 마음에 들었는지, 나중에 의견 나눠주세요.
두 번째 전시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베르나르 뷔페-천재의 빛 : 광대의 그림자》(2024.04.26~09.10)입니다. 이 전시는, 6,7월 본 전시 중 가장 유익했고 가성비 및 가심비 둘 다 만족시킨 전시입니다. 요즘 전시 관람 비용이 싸지 않음에도 이 전시만은 꼭 보라고 추천하고 입소문 내고 다니는 유일한 전시이고요.
사실 포스터만 봤을 땐 그냥 그랬어요. 게다가 사진 촬영이 불가라 어떤 작품들이 왔는지도 정보가 부족했는데, 어떤 분이 사진을 왕창 찍어 올렸더라고요. 후에 저도 전시를 봤는데, 출품작들도 전시 구성도 좋아서 꽤 오래 머물다 나왔습니다. 어쩌다 보니 예술의전당에서 진행 중인 전시를 모두 봤는데, 그래도 원픽은 베르나르 뷔페입니다.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 1928-1999)는, ‘천재 화가’, ‘위대한 화가’로 인류에게 공인된 피카소의 질투와 ‘현대미술의 거장’ 앤디 워홀의 찬사를 한 몸에 받은 화가입니다. 국내에는 2019년 첫 대규모 회화전 이후 이번이 두 번째 회고전으로, 매일 하루 12시간씩 평생 그려 남긴 8,000여 점의 작품 중 유화, 수채화, 드로잉, 판화 작품 총 120여 점이 이 전시에 출품되었습니다. 4m가 넘는 대형 유화 작품이 여럿이고, 그가 그린 문학 작품 앨범, 다양한 매체가 혼합된 작품이 국내 최초 공개된다는 점, 베르나르 뷔페의 작품은 현지에 가도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어 볼 수 없다는 점이 이 전시를 봐야 할 가장 큰 이유죠.
전시는 베르나르 뷔페가 평생 다룬 광범위한 주제의 작품들을 ‘매일의 삶을 그리다’, '천재의 빛', ‘광대의 그림자’, ‘내 바깥세상을 보다’, ‘나의 사랑 아나벨’ 등 7개의 소주제로 구분해 보여줍니다. 120여 점의 많은 작품을 선보이지만 섹션 구분이 확실하고, 매 섹션마다 작품과 어울리는 전시 보조 기법을 활용해 관람객의 집중도가 분산되지 않고 집중력이 유지됩니다.
베르나르 뷔페의 작품을 이렇게 많이 본 건 저도 처음인데, 초기작부터 말년 작까지 구성이 좋고 작품 셀렉에 꽤 공들였단 게 그대로 전해진 전시였어요. 작품을 보다 보면 작가의 인생이 그려지고, 그가 사랑한 장소, 사람, 사물, 그가 대상을 바라본 여러 시선들, 스스로에 대한 숙고 등 예술가이자 한 인간으로서의 인생 역경이 느껴져 애잔했고요. 이 전시는 젊은 관람객들에게도 좋지만 어느 정도 인생을 산 40대 이상의 관람객들에게 더 감동을 주는 전시입니다.
전시는 그가 맞이한 죽음의 순간으로 끝을 맺어요. 그동안의 서사를 통해 그가 놓을 수밖에 없었던 생명의 끝을 대신 붙잡아주고 싶을 만큼, 울컥하게 하는 작품들도 여럿 있습니다. 예술가이기에 앞서 한 인간인 그의 희로애락이 그의 개성 있는 필체에 얹혀 더 강렬하게 남고요.
이 전시도 11시 14시 16시 하루 3회 도슨트를 진행합니다. 전시와 해설 캡션을 꼼꼼하게 보고, 오디오 가이드를 듣는다면 현장 도슨트까진 안 들어도 되겠지만, 정우철, 최예림 도슨트의 입을 통해 듣는 이야기는 또 다른 재미를 주긴 해요. 제가 간 날엔 100명 이상의 관람객이 최예림 도슨트의 말에 1시간 내내 집중하며 해설을 들었는데, 처음엔 사람이 너무 많아 멀리 떨어져 있던 저도 어느새 듣게 되더라고요, 말을 참 잘해서. 현장은 '피리 부는 소년'의 실사판이 되겠지만, 그래도 권해드립니다. 같은 돈 들여서 더 많이 보고 듣고 오면 이득이니까요.
남은 하루 마무리 잘하시고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고요.
열대야에 지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