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수술하죠."
"언제요?"
"오늘 입원하고 내일 하죠."
"네? 네."
수술은 참 간단하게 결정됩니다. 말은 간단했지만 부기를 빼고 기타 등등의 상황을 봐야 하는 시간만 한 달이었고, 시원하게 긁은 약 60만 원 MRI 판독 두 시간을 기다려 얻은 결론이니, 따지고 보면 상황이 무르익은 후의 결정이긴 하죠. 그 사이 외래도 수차례, 상태 사진 촬영도 여러 번, 무엇보다 이미 한 달을 누워 천장만 봐왔던 터라 그 답답함과 무기력을 끊어내고자 저 역시 빠른 수술은 원했지만, 당일 입원에 대한 고려 없이 갔던 터라 살짝 당황스럽긴 했어요.
입원 당일엔 할 게 참 많습니다. 주치의 이름이 들어간 수술 동의서에 서명 후 장소를 옮겨 수술 비용 관련 상담이 이어지는데, 이때 대략적인 수술 비용을 알려주고 비급여 사용 동의서를 받아요. 비급여 사용 동의서엔 기본 수술 관련 비용과 의료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추가 항목에 대한 내용이 간략하게 적혀 있습니다. 예전에 관절경 시술을 받은 적이 있어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에 대한 어느 정도 이해가 있긴 했는데, 그때와 현재의 상황이 많이 다르다 보니 마음을 혹하게 하는 비급여 치료가 많더라고요. 수술 경험이 있는 분들은 비급여 항목의 무통주사를 무조건 추가하는데, 이번 경우엔 무통주사로도 해결 안 되는 통증이 있었어요. 그래서 결국 일반 진통제를 추가했는데, 무통주사라는 이름 때문에 '플라세보' 효과를 누리는 건 아닌가란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진통제보다 조금 더 센 진통제인데, 무통이라고 하니 정말 통증이 없을 것만 같잖아요.
병실 선택과 같은 일반적인 수속과 수술 전 받아야 하는 여러 검사를 해야 하는 당일 입원 수속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침 일찍 병원에 도착해 MRI 찍고 판독까지 이미 오전 시간을 다 써버린 후라 내내 공복 상태였고, 밥 먹으면 수치가 달라질 수 있어 먼저 영상의학과에 가서 엑스레이 찍고, 골다공증 검사 후 혈액검사, 소변검사까지 마친 후에야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었으니까요. 입원과 동시에 바로 금식이라 일단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챙겨 먹고, 심전도 검사까지 끝낸 오후 5,6시쯤 병실에 들어가 환자복 갈아입고 수시로 체크 및 검사를 받다 보니, 긴긴 하루 끝 새벽에야 겨우 잠들었죠.
그렇게 몇 시간 잤나? 이른 새벽부터 피 뽑기 혈압 체크 등 검사 후, 계속 수술 대기 상태로 있었습니다. 다른 병원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있던 종합병원은 수술 환자가 너무 많아서 수술이 꼬꼬무였어요. 그러다 보니 정확한 수술 시간을 알지 못한 채 계속 대기였고, 이런저런 이유로 오후로 예상했던 수술은 급 오전으로 당겨져 보호자가 도착하기도 전에 수술 침대로 옮겨졌습니다. 다행히 수술실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보호자와 조우했지만요. 수술실 문이 닫힐 때 보호자가 "겁내지 마"라고 외쳐줬는데, 이 나이 되도록 거의 들어본 적 없던 그 말이 그땐 웃기더라고요. ㅎ 근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가장 고맙고 도움이 된 말이었어요. 수술 전엔 겁이 많이 나서, 그동안 들었던 긍정적인 모든 말들을 끌어안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게 되거든요. 주변의 누군가가 수술을 하게 된다면, 여러분들도 꼭 외쳐주세요! 긍정의 기운이 가득한 말!
수술 후 의식이 돌아왔을 땐 온몸을 감싼 한기 때문에 의지와 상관없이 이를 계속 딱딱 부딪히게 됩니다. 마취가 완전히 깨는데 몇 시간이 더 필요했고, 척추 주사를 맞은 터라 지정된 시간 전에 일어나면 척수가 흐른다나 뭐라나 해서 수술 후 7시간 정도 더 누워있었고요. 그래도 그 시간이 지난 후엔 죽을 먹을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이게 뭐라고 ㅎㅎ 사람이 참, 단순해요!
수술 당일과 다음날은 거동이 불편해 보호자나 간병인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제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질 않거든요. 수술 후 삼 일간은 손과 팔목 등에 꽂힌 주삿바늘을 통해 각종 수액과 약을 투여받으니 손쓰기도 불편하고요. 저는 3인실을 썼는데, 병실 내 화장실이 없어 애를 좀 먹었어요. 병실 내 호출 벨도 따로 없어 필요한 사항은 간호사 데스크로 직업 가야 했고요. 걸을 수 없어 휠체어를 타야 했던 제겐 휠체어 화장실이 없는 병실층에 묵는 것도, 필요한 걸 그때마다 말하러 가야 하는 것도, 다 먹은 식판을 지정장소에 가져다 두는 것도, 물을 떠 오는 것도, 옷을 갈아입는 것도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다행히 보호자가 대부분의 불편함을 해결해 줬고, 병실을 공유하는 분들의 도움도 받아 병원 생활을 이어갔지만, 어떤 땐 제가 걸스카우트 훈련을 받으러 온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말로는 다 풀어내지 못할 병원 시설 및 서비스에 대한 불편이 많았습니다.
입원을 앞둔 환자 대부분은 요즘 병원이라면 환자를 위한 기본 시설이 어느 정도는 되어 있을 거라 생각할 텐데, 그게 아니란 걸 이번에 제대로 알았어요. 다음에 제가 입원을 하거나 누군가 입원을 한다고 하면, 저는 꼭 먼저 병실 환경 및 화장실, 샤워실 상태를 확인한 후에 수속을 밟을 거예요. 그리고 이 병원만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대부분 간병인이 있다는 전제로 일을 처리하는듯했어요. 그게 아니라면 이해되지 않는 상황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그러니, 만약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에 도와줄 분이 없다면, 병원에서 유료로 제공하는 공동 간병인을 신청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특히 수술 전후로는요.
입원 일상도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제 경우엔. 한 달 전처럼 다리를 올리고 있어야 했고, 얼음찜질도 수시로, 거기에 주삿바늘을 통해 들어오는 수액을 주렁주렁 달고 있으니 뭘 하기가 어렵더군요. 600페이지가 넘는 책 한 권을 챙겼는데, 진짜 의미 없는 행동이었고요. 병원 옥상에서 휠체어 타는 연습을 한 일이 그래도 제일 유의미한 일이었달까. 목발을 짚기 어려운 상태에선 유일한 이동 수단이 휠체어인데, 생각보다 휠체어 타는 게 녹록지 않거든요. 그나마 오전 오후로 꾸준히 연습한 결과 퇴원 전엔 휠체어 타고 제자리 360도 회전이 가능해졌고, 어떤 코스에서도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해졌습니다. 화장실도, 수술 후 검사도 휠체어를 타고 혼자 이동이 가능했고요. 이때의 연습은 이후 외래를 갈 때도 유용했고, 조금씩 걷기 시작한 요즘 더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다친 후 세 달을 훨씬 넘긴 지금도 여전히 이전처럼 생활은 어렵습니다. 수술 2주 후 실밥을 제거했고, 그동안 쓰지 않았던 다리에 감각을 찾아주는 과정을 거쳐, 딛고 일어서고 지금처럼 걷는데도 꽤 더딘 과정이 수반되고요. 현재 평지와 계단을 걷긴 걷지만, 30분이면 여유롭게 왕복했던 거리를 정말 느리고 부자연스러운 걸음으로 두 시간 넘게 걷는 게 현실이고, 기력도 빨리 소진되어 중간중간 에너지 보충도 필요하고요. 느릿느릿 걸어도 고르지 않은 길과 경사로는 난코스라 목발을 짚는데, 산악지대에 사는 저로서는 동네를 벗어나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인 셈이죠. 길을 걷다 몸의 균형이 잘 맞지 않아 어이없이 밀리거나 넘어가 크게 다칠뻔한 순간도 여전히 생기고요.
무엇보다 정형외과약을 먹으면서 오는 부작용도 제 경우엔 너무 심해서, 이 세 달 통틀어 '이렇게 앓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최악의 삼일도 퇴원 후에 겪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 상태가 몸 상태와 동기화되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들이 오히려 더 늘더라고요. 수술 이전보다 누워 있는 시간이 오히려 늘어나니, 책보다는 다큐나 영화, 중국 드라마 시리즈로 긴 시간을 버티게 되었고요. 참 많이 봤는데, 그중에서도 이 두 편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A man who heals the city)(2023)
이미 본 분들이 많겠지만, 이 영화를 통해 동시대에 정말 좋은 어른이 계셨단 걸 알았습니다. 김장하 님은 경남 진주에서 남성당 한약방을 60년간 운영하며 얻은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인물이죠. 도움을 청하러 온 이들에게 대가 없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며 더 살기 좋은 세상을 위해 애쓴 분임에도, 자신의 선행을 알리는 인터뷰 한번 없이 근검절약하며 묵묵하게 남을 돕고 빛내는 일에 앞장서셨고요. 다큐에도 그의 정식 인터뷰는 나오지 않지만, 오히려 그의 주변인들의 목소리를 담아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더 잘 보여주고 있어요. 누구를 조건 없이 돕는다는 게 말이 쉽지 정말 어려운 건데, 한평생 헌신하셨으니, 흔히 얘기하는 '사회의 빛과 소금'의 현신으로 보기에 부족함이 없죠.
사실 이 영화를 봤을 땐 제가 지불하는 치료비의 적절성에 대해 의구심이 가득했던 때라, 이 영화에서 김장하 님이 했던 이 말이 정말 크게 다가왔어요.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겠기에 나 자신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병원 치료를 받다 보면 '처음이라, 사전 고지되지 않아, 관행적으로' 발생되는 불필요한 소비가 정말 많거든요.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 당시엔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도 지나고 나면 필요 없던 거였단 걸 알게 되고, 처방받은 약 역시 사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 어쩔 수 없이 상황에 밀려 구조적으로 '자발적 호구'가 될 수밖에 없단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죠.
많은 분들이 김장하 님에게 도움을 받았는데, 그중에서도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과의 인연은 많이 알려져 있죠. 선한 영향력은 이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빛을 발합니다. 보통의 한 사람이 어떻게 이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존경심이 솟구치는 지점들이 많아요. 인간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될 만큼 그의 선행은 범접 불가하지만, 확실한 건 보고 나면,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아직 보지 못하셨다면, 권해드려요. 다큐 내용을 담은 책도 있으니 참고하시고요.
영화 《원더(Wonder)》(2017)
저는 이 영화를 전 연령대 관객에게 추천합니다. 예전부터 좋은 영화라는 말을 듣긴 했는데, 다치고 한 달간 방 천장만 보던 시기에 우연히 이 영화를 봤어요. 안면기형으로 태어난 어기(제이콥 트렘블레이)는 재능 있고 호기심 많은 아이입니다. 긍정을 불어넣는 가족 안에서 사랑도 많이 받았고요. 하지만 가족을 벗어난 사회에서 주는 외모에 대한 편견과 불편한 시선을 극복하긴 어려웠기에 헬멧 속으로 스스로를 감추게 되는 일들이 종종 생겼죠.
이 영화는 10살이 된 아들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부모가 어기를 학교에 보내면서 겪게 되는 사회, 가정, 가족, 친구,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가족 모두가 그의 앞날을 응원하며 그의 도전을 지지했지만, 세상과 친구들의 차가운 시선에 어기는 좌절을 겪게 되고, 결국 그걸 극복하며 자신이 속한 사회에 어우러지는 과정이 중심축입니다.
영화는 어기를 포함한 주변인들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R. J. Palacio의 소설 원작에선 8개의 챕터로 구성이 나눠지는데, 영화도 여러 챕터로 구분되어 서로 다른 관점으로 어기에 대한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해요. 한 인물을 중심에 두고 겪게 되는 주변인의 다양한 입장을 보여주는 거죠. 관계라는 게 결국은 여러 요소들이 얽히고설켜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하지만 각자의 정리된 입장만 최종 전달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 결론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주진 않아 오해가 생기거나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운 경우들이 많죠. 예를 들어, 극 중에서 어기의 누나 비아는 동생을 정말 사랑하지만, 동생에게 집중된 가족의 관심에 심한 소외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내색할 수 없죠, 장애를 가진 동생을 둔 누나이기 때문에. 그 역시 그가 겪는 관계에서의 어려움이 있어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위로받고 싶지만, 이미 동생 문제로 힘든 부모에게 그 역할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느껴요. 사실 부모 마음은 그런 게 아니었음에도 말이죠. 그렇게 잘 알지 못했던 서로의 입장을 보여주기에, "그렇구나, 그랬겠다, 힘들었겠다" 하는 공감과 위로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이 영화는,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참 좋아요. 그 관점은 좋은 대사로 나타나죠. 학교에서 어기에게 폭력적 행동으로 혐오를 표현한 아이와 부모를 앉혀두고 하는 학교장의 대사가 대표적입니다. "어기는 얼굴을 바꿀 수 없습니다, 바꿔야 하는 건 어기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죠. " 또, 마지막 장면에서 나온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두에게 친절해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그저 바라보면 된다"라는 브라운 선생님의 격언도 참 멋졌어요. 이외에도 좋은 말들이 많습니다.
아프면, 괜히 서러워지는 날들이 많아집니다.
그럼에도, 일상으로 빨리 돌아가려면 긍정의 힘을 더 장착해야겠죠.
오늘도, 내일도, 건강한 날들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