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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Nov 02. 2022

친구가 암에 걸렸다

다정한 위로의 말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오랜만에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잘 사냐는 의례적인 인사였는데, 목소리나 듣자 싶어 전화를 해 보았다. 전화를 받은 친구는 한숨부터 쉬었다.      

“나, 좀 안 좋은 일이 있어.”

“무슨 일?”

목소리가 심상치 않아 나도 긴장이 되었다.

 “나, 유방에 문제가 생겼대.”

암이라고 했다. 수술 날짜를 잡아두었고, 경과에 따라 항암치료를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친구의 두 아이, 부모님, 남편의 얼굴이 차례로 스쳐 지나갔다. '암'이라는 무서운 단어 앞에 머리와 가슴이 딱딱하게 굳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때도 몰랐지만, 지금도 모르겠다. 

 

유방암.  지인 중에 걸린 사람을 꽤 봤다. 대부분 수술을 하고 완치가 되는 흔한 병 같지만, 각자가 겪는 고통은 제삼자가 상상도 못 할 고통스러운 일이 분명하다. 주변에 많이 걸린 거 많이 봤는데, 다들 멀쩡하게 나았다고 말해 주면 용기를 얻을까? 큰일 났다고, 너 이제 어떡하냐고 울어주면 위로를 받을까?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친구는 억울하다고 했다. 맞다. 억울할 만하다. 친구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오랜 시간 직장을 다녔고, 직장을 그만두고 얼마 되지 않아 병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 좀 편히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가 했더니 무서운 병이 찾아왔다. 


위로의 사전적 의미는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줌’이다. 무슨 말과 어떤 행동을 해야 다른 사람의 괴로움을 덜어줄 수 있을지도 나와 있으면 좋을 텐데. 위로말 사전은 왜 없는지 모르겠다.


나는 친구의 상황에 공감을 못하는지도 모른다. 친구의 상황을 어떻게 똑같이 느낄 수 있을까. 나는 친구가 아닌데, 내가 유방암에 걸린 것도 아닌데 그녀의 감정을 똑같이 느끼고 공감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너무 오만한 일이 아닐까. 누구도 당사자가 아니면 모르는 일을 우리는 너무 쉽게 ‘공감한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을까?    

  

어쩌면 내가 공감력이 심하게 떨어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남의 일을 안타까워하며 울어 본 적이 있는지 아무리 떠올려봐도 없다. 드라마나 책을 보면서는 잘 우는데, 뉴스의 안타까운 사건 사고를 보면서 운 적은 없다. 소설이나 영화 같은 허구는 ‘나의 일’이라고 감정 이입이 잘 되는데, 실제로 일어난 뉴스의 사건에는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는다. 어딘가 분명히 존재했을 각자의 삶이라는 것을 너무나 또렷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각자의 사정을 대충 머리로 이해는 하지만, 그들의 상황에 내 마음을 똑같이 포개는 일은 나로서는 불가능하다.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슬퍼하고 기뻐하고 분노하는 감정이 잘 생기지는 않는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나를 위로 못해준다고 섭섭해하는 일도 없다. 상대가 어설픈 위로를 건넬 때도 ‘당신도 나처럼 위로를 참 못하는 사람이구나.’한다. 


친구가 암에 걸렸을 때 공감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무슨 말을 멋들어지게 해 줄까? 친구가 아이들과 부모님 걱정에 한숨을 쉬자, 내가 한 말이라고는 “니 생각만 해.”였다. 내가 말해 놓고도 너무 건조하고 무심한 것 같아, 지금도 마음이 불편하다. 아이 걱정, 부모님 걱정을 함께 해 줬어야 했나 싶은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만, 나는 그런 걱정이 환자한테 무슨 도움이 되나 싶었다. 친구 입장에서는 당연한 걱정인데, 내가 친구 애들을 돌봐줄 상황도 못되면서 걱정에 동조하는 게 입에 발린 말처럼 느껴졌다. 


그다음으로 내가 친구에게 한 말은 ‘무슨 병원에서 수술해? 거기 의사 잘하는 사람이야?’였다. 이 말도 괜히 했다 싶다. 내가 유명한 의사를 소개해 줄 것도 아니고, 유방암 명의를 알지도 못하면서, 유방암 걸린 친구가 어련히 잘 알아보고 수술 날짜를 잡았을 텐데 말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변에 위로해야 할 일이 점점 많아진다. 나처럼 마음이 푸석한 사람에게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암에 걸린 친구에게 니 생각만 하라고 한다고 자기 생각만 할 수도 없을 텐데, 현실성 없는 말을 해 버린 것 같다. 무슨 말을 해 주면 좋았을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친구가 그저 수술이 잘 되고, 얼른 일상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부대끼며 함께 살기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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