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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Nov 05. 2022

남은 두 달은 나를 챙기겠다는 다짐

우선 치과검진부터




올해도 이제 두 장의 달력밖에 남지 않았다. 남은 두 장의 달력에 줄줄이 있을 경조사를 체크하면서, 머릿속으로 지출해야 할 금액을 생각했다. 부모님의 생신, 남편 생일 등 양가 가족의 생일이 두 달의 달력 안에 다섯 명이 모여 있다.  예수님 생신에 우리의 결혼기념일과 돌잔치에 결혼식까지 잡혀 있다. 다른 사람의 기쁜 일, 슬픈 일을 챙기다가 올해가 다 가버리는 것 같다. 나를 위해, 올해가 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것은 내 건강이다. 생각해 보니 올해 건강검진을 아직 안 했고, 치과 검진도 안 했다. 짝수 연도 출생자의 국가검진이 있는데 이제 두 장 남은 달력을 보니 조급해졌다. 국가가 공짜로 주는 것도 받아먹지 못하면서 떼어가는 세금을 욕할 자격은 없다. 병원을 검색하고 최대한 빨리 할 수 있는 날로 건강검진 예약을 했다. 


공짜라도 치과는 가기 싫은 마음이 더 컸지만, 생각난 김에 해 치우자 싶어 동네 치과를 바로 방문했다. 친절한 간호사는 예약을 하지 않은 나에게, 조금 기다리면 해 주겠노라고 했다. 치과는 산부인과만큼이나 가기 싫은 병원이어서 1년에 한 번 스케일링을 보험 적용받을 수 있는데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두 아이들 검진은 꼬박꼬박 데리고 다니면서 내 치아는 어떤지 한 번도 살펴보지 않은 것이다.  특별히 불편한 곳은 없었지만 올해가 가기 전에 없어질 스케일링 혜택을 받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이이잉’

대기실에 있으니 진료실 안에서 요란한 기계음이 들렸다. 언제 들어도 소름 끼치는 소리에 집에 가고 싶었다. 갈까 말까를 망설였지만, 금방 지나갈 거라며 나 자신을 다독였다. 드디어 이름이 불리고 기다란 의자에 눕듯이 앉았다. 곧 선생님이 왔고, 스케일링이 시작되었다. 능숙한 솜씨였다. 내 입속에서 기계를 능수능란하게 움직이며 내 치아에 붙은 때를 벗겨내는 선생님의 손길에 치과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하면서 10개월을 보내 버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매일 해가 뜨면 얼마 안 있다가 해가 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쫓기듯 하루를 보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위해 특별히 바빴던 일 같은 건 없다. 그렇다고 여유롭지도 않았다. 가족들의 끼니를 챙기고, 부모님 지인들의 생일을 챙기고, 친구 부모님의 장례를 챙기고, 내 아이의 입시를 챙겼다. 누군가를 챙기는 일을 물적 심적으로 하는 건 살아가면서 당연히 해야 할 인간노릇이지만, 그런 일들을 하느라 나를 찬찬히 돌아볼 시간은 부족했던 것 같다. 아직 두 달이 남아있다. 날짜로 계산하면 58일이니 적은 날 수가 아니다. 올해가 더 이상 허무해지지 않도록 남은 날들을 아껴 써야 한다. 


나는 올해 남은 날을 나 자신을 챙기는데 최대한 쓰려고 한다. 건강 검진을 하고, 운동을 하고, 글을 좀 더 부지런히 쓰려고 한다. 나에게 좋은 경치를 구경시켜 주고,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좋은 책도 부지런히 나에게 읽혀 주겠다. 스케일링을 하기 위해 치과에 간 내가 기특하다. 남은 58일 동안 나에게 기특한 일들을 많이 쌓아가고 싶다. 2022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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