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 걸렸다
언제가 한 번은 걸릴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런 날이 언젠가는 올 거라 생각했다.
누구보다도 건강했던 친구가 1년 전 유방암에 걸리는 걸 보면서 다음은 내 차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 차례가 올 거라 어렴풋이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닥쳐올 줄은 몰랐던지, 나는 의사가 암일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하자 몇 날을 울었다. 암확정이 난 것도 아닌데, 말기암에 걸린 것 마냥 수시로 울었다. 친구를 보면서 나도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 진짜 속마음은 나는 절대 걸릴 리 없을 거라 굳게 믿었던 것 같다. 암에 걸렸다는 친구의 이야기에 놀라서 울고, 맛있는 음식을 사 주고, 꽃을 보내주고, 다 끝나간다고 힘내라고 이야기해 주던 내 마음에는 얼마의 진심이 있었을까? 슬픈 영화를 보며 울면서 열심히 팝콘을 입에 넣는 관객의 마음은 아니었을까? 내 마음에 진심이 있기는 있었을까 되짚어보게 되는 요즘이다.
갑상선암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된 지 1주일이 지났다. 알고보니 갑상선암은 '착한 암'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고, 암의 세계에서는 암취급도 안 해주는 암이었다. 예후가 좋고, 죽는 사람은 거의 없는 암이라 '착한 암'이라는, '선한 전과자', '순한 호랑이' , '안 매운 불닭'처럼 앞뒤가 안 맞는 별명을 갖고 있다. 실제로 나를 위로한 사람 중에는 느리고 착한 암에 걸려서 다행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다른 무시무시한 암에 비하면 다행은 다행이다. 하지만,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에 눌린 당사자에게는 와닿지 않는 말이다. 착한 암이라고는 해도 전신마취를 하고 내 목을 갈라 그 속에 있는 기관 하나를 떼 내고 평생 약에 의지해 내 몸의 호르몬을 조절해야 하는 병이다. 맹장 수술이 아니다. 갑상선암은 대부분 예후가 좋지만, 재발률이 높고 전이도 잘 된다는 사실을 나도 이제야 알았다.
다른 사람 팔다리 잘린 것보다 내 손톱밑에 가시가 제일 아프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도 친구가 암에 걸렸을 때 내 일인 양, 슬픈 척 떠들어댔지만 친구에게 상처 주는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워낙 마음이 넉넉하고 단단한 친구라 나를 너그러이 용서했을 수도 있다. 내 일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내 일이 된다는 것에는 하늘과 땅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나도 앞으로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은 생기지만,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 세상엔 무수히 많으니까.
'인생'이라는 책에서 '암'이라는 페이지를 만났다. 이건 바꿀 수가 없다. 바꿀 수는 없지만 이 페이지를 어떻게 메워갈 것인지는 나에게 달려있다. 뭘 모르는 사람의 말 한마디에 속상해하면 내 암세포만 좋은 일 시키는 꼴이 된다. 스트레스받으면 좋아서 날뛸 암세포를 재미없게 만들어야 한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많이 웃어야 한다.
이대로 조용히 머물다 빨리 사라져 주렴. 착하지 나의 갑상선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