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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의사오동춘 Jun 15. 2022

개똥을 밟았다.

나는 9살짜리 푸들과 함께 산다. 푸들이란 녀석을 키워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녀석이 난리법석을 피울때는 왜 이녀석이 3대 지랄견 안에 들어가지 않았을지 궁금할 정도로, 사람 속을 벅벅 긁는다. 무엇보다 심한 것은 분리불안이오, 덩치에 비해서 목소리가 어찌나 큰 지 모른다. 


우리집 녀석은 타일을 애정한다. 잠시 화장실 문을 열어뒀다가는 화장실 타일에는 이녀석의 똥과 오줌 범벅이 되기 일수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무심결에 문을 닫지만 가끔 정줄을 놓아버렸을때 타일의 줄눈을 타고 흘러가고 있는 이녀석의 질소노폐물액과 마주한다. 거기다가 응아까지 젖어있다면 속에서는 열불이 끓어오르기 마련이다. 


여느때처럼 평온한 날이었다. 빨래를 꺼내서 건조기에 넣는다. 그리고 한 발자국 옆으로 옮기는 순간 물컹. 분명히 똥이 없는 걸 확인했는데 이게 똥일까. 똥은 아니곘지. 똥이 아니면 이런 텍스쳐를 줄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한참을 생각을 한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게 똥임을. 내가 개똥을 밟았음을. 하지만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똥이 아니길. 똥은 아닐거야. 과일이겠지. 그런데 과일이 여기 왜 있겠어? 


조심스럽게 발을 든다. 그리고 아니길 바라면서 발을 보지만 이놈의 개똥 녀석은 완변 찌부러진 채로 나를 보고 배시시 웃는 것 같다. "응, 똥이야" 그랬다. 똥이었다. 








요즘은 그래도 똥에 대해서 관대해졌다. 예전에 조카를 혼자 돌볼 때 조카의 기저귀를 갈다가 마주한 조카 똥을 보고 식겁을 한 적이 있다. 그때와 다르게 내가 자식을 낳고 매일 똥을 손으로 만지는 수준으로 매일 지내다 보니 똥이 그렇게 더럽지만 더럽지만은 않다고 느껴진다. 우리집 댕댕이가 건강한 똥을 봤구나! 다행이다! 칭찬해줘야지! 이런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음. 똥 밝았네? 젝일. 똥 밟으면 복권인데. 복권이나 사러갈까? 현금이 어딨었지? 그런데 배가 고프네. 발이 왜 축축하지? 아 똥 밟았엇지?


그렇다. 이제는 똥을 밟은 것도 나의 잘못. 내가 문을 잘 안 닫아뒀으니 이런 일이 생긴거니 하며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게 된다. 해탈한 것인지 성숙한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개똥철학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개똥철학

자나깨나 개똥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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