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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ngineer Sep 30. 2021

나에게 글쓰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

내가 내다 버린 나의 가능성

처음 브런치에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나 역시 추상적인 목표가 있었다. 


내가 쓴 나의 글을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어 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것보다 그나마 글쓰기에 자신이 있어 글을 써 발행하고 싶었다. 잘한다고 착각해서 당장 그러고 싶었다. 내친김에 1주일에 걸쳐 글 한 타래를 쓰고 다듬어 브런치 심사를 받았고 운 좋게 한 번에 통과해 브런치 작가라는 나름 명예로운 타이틀을 얻었다. 심사 통과 메일을 캡처해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할 만큼 기분 좋았던 날 이후 어느덧 5개월이 지났고 브런치에 내가 작성한 글은 겨우 10편뿐이다. 1주일에 한편씩만 올렸어도 20편은 올라갔어야 했다. 난 내가 알고 있는 분야의 글은 하루에 30분 정도만 투자하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5개월에 걸쳐 천천히 깨달았다.


이 메일을 받았을 때의 자신감은 상당했다. 하지만 지금은..




왜 글쓰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을까? 일반적으로 글쓰기를 떠올릴 때 사람들은 수려한 문장을 떠올린다. 좋은 글은 높은 수준의 문장 기교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문장을 써야만 좋은 글이 된다는 대전제가 있다면 문장력을 키우면 된다. 언어의 정수를 다룬다는 시인이나 순수 문학 작가가 되고 싶지 않은 바에야 문장력은 시간과 반복이 해결해 줄 수 있다. 글쓰기를 다룬 수많은 책이 그 근거다. '복문은 지양하고 단문 위주로 문장을 써라', '비문을 피하기 위해 퇴고를 거쳐라', '수식어는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피하라', '주어와 서술어는 가까이 배치하라'처럼 내가 읽었던 글쓰기 책들은 거의 공통적으로 문장 작성 노하우를 독자와 공유했다. 한 마디로 좋은 문장을 쓰려면 몇 가지 규칙을 따르면 된다고 말한다. 규칙에 맞춰 글을 쓰고 반복과 피드백을 거치면 높은 수준의 문장력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적어도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수려하고 예술적인 문장이 아닌 간결하고 정돈된 문장에 독자는 공감하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에서 문장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문장력은 내가 글을 많이 쓰지 못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게다가 글쓰기는 준비가 가볍다. 문맹만 아니라면 컴퓨터와 키보드만 있어도 글을 쓸 수 있다. 컴퓨터가 없다면 펜과 종이로 글을 쓸 수 있다. 극히 간단한 준비물만 필요하다. 준비와 시작의 간편함도 작가 지망생 숫자에 어느 정도 기여했을지도 모른다. 문장력이 키울 수 있는 능력이고 글쓰기에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 않는데 왜 글쓰기는 이리도 어려울까?

글쓰기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나에게 글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글은 작가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다. 여러 가지가 소재가 될 수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글로 옮길 수 있는 소재는 많지 않았다. 나는 게임을 좋아한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결심했을 때도 주요 소재는 자연스럽게 게임이 됐다. 10년 정도 게임 업계에서 일해 왔기에 게임과 게임 개발에 대한 글만 써도 글감은 넘쳐날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새로운 신작 게임 리뷰는 글보다 유튜브 영상에서 빛난다. 실제로 고퀄리티의 수많은 게임 리뷰 영상이 유튜브에 넘쳐난다. 높은 수준의 리뷰 기사도 존재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만한 시간을 투자하기 어려웠다. 회사 생활에서 겪은 어려움과 해프닝을 글로 쓰고 싶었지만 이미 수많은 회사원이 글을 쓰고 있었다. 나의 회사 생활도 독특한 면이 있지만 그들의 글에 괜스레 주눅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은 왜 그리 빛나 보이는지 모르겠다. 결국 지금의 나는 브런치 개설 초반의 의욕과 큰 목표를 돌아보며 부끄러움만 느끼고 있다. 사실 특별할 것 없는 회사원이자 게이머의 생활을 해온 것처럼 보이지만 난 나만의 개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이런저런 핑계와 비교로 자신감을 잃었다. 잃어버린 자신감과 함께 글감도 내다 버린 모양새가 됐다.


주변과 비교하다 보니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몰개성 한 존재가 되었다




굳이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작가가 되고 싶다며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말 뿐인 얼치기가 된 기분을 배설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배설을 통해 다시 의욕을 되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난 누군가에게 우리는 이래야 한다며 설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하지만 나처럼 글쓰기에서 자신감을 잃고 의욕이 꺾인 분이 있다면 이 글로 다시 동기부여가 되었으면 한다. 글감의 부족함이 글쓰기의 어려움이라고 했지만 어떤 글이든 써보고 마무리하는 경험이 나에겐 필요하다. 비록 내가 쓴 글이 개성 없는 무매력의 글처럼 보여도 언젠가는 나만의 색채가 묻어나는 흥미롭고 독특한 글을 쓸 수 있길 바란다. 이제 겨우 5개월이 지났다. 난 지금 누구나 겪는 시행착오를 겪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분 중에도 그런 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여러분과 나, 우리가 모두 계속해서 써 내려가길 간절히 바란다. 그렇게 저마다의 목표에 이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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