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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ngineer Jun 17. 2021

게임 기획자 취업기 Ep.03 : 10년 후

신입 기획자 지망생의 포트폴리오를 검토하며(마지막)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입 기획자 지망생들의 역량은 저 같은 10년 전 신입 기획자 지망생의 역량보다 높아졌습니다. 단편적으로는 포트폴리오의 구성과 정리 방식이 좋아졌고 게임 개발 경험도 풍부해진 느낌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첫 번째 이유는 스마트폰의 보편화이고 두 번째 이유는 게임 개발 환경의 변화입니다.


유니티의 등장과 확산


온라인 게임, 그중에서도 MMORPG는 2000년대 한국 게임 시장의 대세였습니다. 2004년 와우(WoW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World of Warcraft의 줄임말)가 전 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MMORPG는 대중적인 게임 장르로 급부상했습니다. 당시 온라인 게임 최강국이었던 우리나라에서도 와우의 인기는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많은 게임 개발사들이 제2의 와우를 개발하고자 MMORPG 제작에 뛰어들었고 게임 개발자 지망생 역시 이런 흐름에 동참했습니다. MMORPG의 인스턴스 던전이나 인벤토리 시스템은 2010년대 초반까지 게임 기획자 지망생의 단골 역기획 소재였습니다.

많은 온라인 게임이 그랬던 것처럼 MMORPG 역시 게임 엔진(게임 개발을 목적으로 제작된 프로그램 또는 소프트웨어) 사용이 거의 필수적이었습니다. 기술력이 받쳐주는 개발사는 자체 엔진을 개발해 사용하기도 했지만 상당 수의 개발사는 상용 게임 엔진을 사용했습니다. 당시 NC 소프트가 와우의 대항마로 출시했던 아이온은 크라이텍이 보급하던 크라이 엔진(Cry Engine)을 기반으로 개발했습니다. 게임 엔진은 게임 개발에 최적화되어 있는 만큼 놀라운 퍼포먼스와 당시 기준 수준 높은 개발환경을 자랑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게임 엔진의 라이선스 비용이었습니다. 일반 개인은 생김새를 구경하는 것조차 어려울 만큼 비쌌기에 게임엔진은 그림의 떡 같은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2010년대 초반부터 유니티(Unity) 엔진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상황이 달라집니다. 유니티 엔진은 당시 덴마크에 위치하던 유니티 테크놀로지(Unity Technology)가 출시한 게임 개발 엔진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개발의 민주화'를 캐치프레이즈로 삼고 있습니다. 특히, 


1) 엔진 사용 설치와 사용 비용이 무료(수익이 나면 로열티를 받습니다)

2) 직관적이고 편리한 사용법


'개발의 민주화'를 가능하게 하는 유니티 엔진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무료 유니티 엔진의 등장으로 많은 게임 개발자 지망생이 다운로드 클릭 한 번으로 게임 엔진을 다뤄볼 수 있게 됐습니다. 기존의 게임 엔진과 비교할 때 굉장히 쉬운 수준의 사용법은 프로그래머가 아니더라도 게임을 개발할 수 있다는 희망도 심어줬습니다. 유니티의 대중적인 인기 덕분에 인터넷에서 높은 수준의 유니티 강의를 무료 또는 저렴한 가격에 구입해 독학할 수 있게 됐고 학습 중 막히는 부분은 구글이나 유튜브에 검색해 답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복잡한 게임이 아니라면 코딩 없이도 게임 개발이 가능합니다. 유니티의 직관성은 다른 게임 엔진에도 영향을 주면서 많은 게임 엔진이 사용자 친화적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유니티 엔진의 또 다른 장점은 다양한 플랫폼 지원입니다. PC, 콘솔, 웹브라우저에 맞춰 개발할 수 있지만 유니티의 위력은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 게임 개발에서 가장 두드러집니다. 누구나 한대쯤 보유하고 있는 스마트폰에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유니티 엔진의 조합은 모바일 게임 중흥 시대를 이끌어 냅니다.

게임 개발자라면 너무나 친숙한 유니티 로고


이제는 구태의연한 표현 '바야흐로 모바일 게임 시대'


제가 신입 기획자로 첫 발을 내딛던 2011년은 피처폰 게임 세대를 훌쩍 지나 높은 수준의 모바일 게임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던 시기였습니다. 많은 스타트업이 모바일 게임 개발과 성공을 위해 뛰어들었습니다. 덕분에 모바일 게임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고 스마트폰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게임 퀄리티도 높아졌습니다. 모바일 게임 산업의 미래는 한 없이 밝아 보였고 실제로 지금은 10년 전과 비교 불가할 정도로 시장이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성장 중에는 성장통을 겪듯이 당시에는 모바일 게임 성공을 목표로 하던 많은 기업이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습니다. 넥슨, NC 소프트, 네오위즈 같은 당시의 공룡 기업들조차 모바일 게임을 출시하기는 했지만 많은 실패를 맛봐야 했고 여전히 PC 온라인 게임 매출 비중이 압도적이었습니다.

10년이 지난 2021년, 시장은 철저하게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대한민국에 온라인 게임만 개발하는 게임 개발사는 거의 없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한 때 잘 나가던 온라인 게임조차 모바일 게임으로 출시되는 상황입니다. 리니지M의 등장으로 NC 소프트는 새로운 중흥기를 맞았습니다. 심지어 바로 얼마 전 트릭스터까지 타이틀 끝에 M자를 붙여 출시했습니다. 몇 년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던 배틀 그라운드도 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바일 배틀 그라운드를 출시하며 엄청난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모바일 배틀 그라운드의 후속작도 곧 출시 예정입니다.


이력서의 한 줄을 차지한 경험 : 창업


모바일 게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습니다. 당연히 게임 개발자 지망생들 중 상당수가 모바일 게임 성공 신화를 보며 PC 기반 MMORPG가 아닌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고 싶어 합니다. 개발과 출시까지 거쳐야 할 문턱이 낮아진 만큼 창업을 선택하는 학생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앞서 언급한 유니티 엔진의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가속화되었습니다. 창업에 도전했다 실패하더라도 온라인 게임을 개발하던 시절보다 비용과 시간에서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현저히 줄었고 실패하더라도 실패를 경험 삼아 취업 시장에 뛰어들면 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신입 지원자 중에서 창업을 경험하고 입사지원을 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습니다. 2018년 출시되어 아직도 인기를 끌고 있는 'Life is a game : 인생게임'의 개발자들은 사회의 문턱을 밟아보지도 않은 학생들이었습니다(관련기사 : 디스 이즈 게임). 온라인 게임 개발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에도 학생 창업은 있었지만 투자 없는 무자본 개발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이제는 집에 있는 컴퓨터로 유니티 엔진을 다운로드하여 게임 개발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관련 인프라도 발전해 개발에 필요한 아트 리소스와 모듈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게임 개발에는 수십 명이 필요했지만 혼자 또는 소수가 모여 개발해 모바일 게임을 출시하는 사례는 흔해졌습니다.

학생들이 모여 개발해 상업적 성공까지 거둔 'Life is a game : 인생게임'


경력은 없지만 게임은 출시해 봤습니다.


창업만큼 최근 입사 지원을 하는 신입 게임 기획 지원자의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게임 출시 경험입니다. 게임 프로그래밍을 공부한 적이 없는 사람도 비교적 쉽게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학생과 게임 기획자 지망생에게도 매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검토한 지원자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유니티 엔진으로 개발한 프로토타입을 포트폴리오 삼아 제출한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나아가 직접 게임을 개발해 구글 플레이 스토어나 애플 앱스토어로 게임을 출시한 경험을 보유한 지원자도 자주 보입니다. 채용 담당자 입장에서는 직접 게임 개발을 통해 재미를 검증해 본 지원자의 포트폴리오는 눈길이 두 번 갈 수밖에 없습니다. 게임의 규모에 상관없이 게임을 출시한 경험은 '게임을 개발하고 싶습니다'라는 자기소개서의 한 줄을 가장 확실하게 뒷받침하는 근거가 됩니다.


여러모로 남다른 젊은 기획자들이 주는 긴장감


하지만 여전히 신입 지원자의 포트폴리오 핵심은 참여한 프로젝트나 작성한 기획서를 잘 정돈한 문서입니다. PDF 파일이나 파워포인트로 이력서, 자기소개서를 포트폴리오와 묶어 채용 담당자에게 전달하는 경우가 가장 전형적입니다. 작성한 기획 문서들을 압축해 통으로 전달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파일 하나가 지원자의 센스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포트폴리오 구성과 전달 방식도 다양해졌습니다. 지원자가 작성한 웹페이지나 블로그에 포트폴리오를 정리해서 링크만 전달하는 경우도 많고 작업물을 영상으로 편집해 유튜브에 업로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구체적인 통계를 내본 적은 없지만 젊은 지원자일수록 문서 파일 외의 방식을 잘 활용하는 듯합니다. 압축을 풀 필요도 없고 문서를 일일이 클릭할 필요도 없어 채용 담당자를 배려한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클릭 한 번이면 지원자의 면면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10년 전 제가 제출했던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는 이제 볼품없고 낡은 서류 쪼가리처럼 보입니다. 그만큼 젊은 기획자의 수준은 올라갔습니다.

어느덧 게임 업계에 10년이나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겸손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단순히 젊은 게임 기획자의 역량이 올라갔기 때문은 아닙니다. 지금부터 10년 후 지금의 젊은 기획자는 지금보다 훨씬 뛰어난 신입 지원자의 포트폴리오를 검토하게 될 것입니다. 강산이 한 번 더 변하면 기획자 지망생은 어떤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게 될까요? 상상력을 동원해도 그 모습을 그려보기 어렵지만 지금과는 다른 수준의 경험과 역량을 보여줄 것이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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