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종방한 ‘크리미널 마인드’라는 미드를 좋아한다. 시즌을 거듭하면서 팀원들은 점점 더 하드한 사건 현장과 내용을 접하고, 자신들이 범죄의 타깃이 되기도 한다. 프로파일러면서 범인도 추적검거하고 피해자를 돌보기도 하는 만능 FBI들이 PTSD를 겪는 것으로 보이는 장면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년 동안(드라마이긴 하지만) 그들은 어째서 지치지 않을까.
범죄의 디테일에 반복해서 노출되다 보면 어딘가 고장 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내게는 그다지 끔찍하지 않고, 화나지 않는 범죄의 세부 내용에 다른 사람은 분노하고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을 볼 때라든가, 언제부턴가 피해자의 이야기에 마음은 아파도 눈물이 나지는 않을 때라든가.
무감각해지기만 하면 차라리 괜찮은데 피해자에게 화가 나는 때도 있다. 무기력해진 피해자가 면담 약속을 펑크낼 때, 이것저것 물어보기 위해 하루에 두세 번씩 전화를 해올 때, 지원 범위를 넘어서는 지원을 요청할 때 등.
뭐 생각해 보면 화날 건 하나도 없다. 내가 개인적인 피해를 입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머리로는 피해자의 절망과 절박함을 알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나의 기분은 심하게 요동치고 마치 내가 손해 본 것 같은 분노에 휩싸인다.
이런 시기가 1년에 한 번씩은 꼭 온다. 1년 동안 꾸준히 지치고 조금씩 삐그덕거린 것들이 쌓여 고장 나는 시기가.
피해자에게 ‘기분상해죄’를 붙이고 싶어지면 나는 상담을 예약한다.
분노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적당한 공격성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절하지 않은 분노는 외려 나를 공격하고 좀 먹는다. 하지만 내가 무슨 성인도 대현자도 아닌데 항상 어떻게 적절하고 아름다운 분노만 한단 말인가. 써놓고도 웃긴 말이다. 적절하고 아름다운 분노.
나는 때로 좀스럽고, 치졸하고, 베베 꼬인다.
그런 나를 혼자 어르고 달래는 데 한계를 느끼면 상담선생님을 찾는 것이다.
나는 미드 주인공이 아니라서 지치지 않거나 내내 정의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오래 더 많이 피해자를 만나야 하기에 오늘도 조금 느슨해진 나사가 있는지 기름칠은 안 필요한지 스스로를 살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