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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발 Jan 18. 2024

스마트워치

워치가 울리면 신고가 열립니다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시계를 많이 차고 다니는 시대인 거 같다. 전통적인 손목시계와 애플워치, 갤럭시워치, 샤오미워치 등등등. 다들 시계를 차고 시간을 보고, 알림을 받고, 운동을 기록한다.


내가 처음 스마트워치를 구입하게 된 건 업무 연락을 빨리 받기 위해서였다. 열정 넘치는 사회초년생의 패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울리는 카톡과 메일 등의 진동을 느끼며 이게 스스로 채운 족쇄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땐 너무 늦었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처럼 업무연락을 신속히 받아야 하거나, 운동량을 기록하거나, 그냥 워치를 찬다.


하지만 안전을 이유로 워치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이전에 고백한 바와 같이 나는 강제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 그때 무슨 용기였는지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는 범인의 옷을 붙잡고 핸드폰으로 신고를 했는데, 핸드폰 잠금은 왜 이렇게 빨리 안 풀리고, 한 손으로 112는 유난히 누르기 힘들게 느껴지던지. 그 찰나에 범인이 날 뿌리치고 도망가거나 차로로 밀어버리는 건 아닐까 별 생각을 다 했던 기억이 난다.


경찰에서 시행하고 있는 범죄피해자 안전조치는 여러 세부적인 조치사항들로 구성되어 있다. 피해자의 환경과 위험성에 따라서 조치사항들을 선택하는데, 굳이 비유하자면 명절종합선물세트 같은 거다. 스팸은 넣고 식용유는 빼고, 뭐 그렇게.


스마트워치는 이러한 조치사항 중 하나다.


간단히 말하자면 스마트워치는 ‘신고 보조 기구’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경찰에 신고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핸드폰을 들고, 잠금 화면을 열고, 통화버튼, 112 누르고. 이 과정을 거쳐서 연결된 경찰관에게 지금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경찰관이 출동한다.


스마트워치는 저 과정을 축약할 수 있도록 하는 기구인데, 손목에 차고 있는 스마트워치에서 sos 기능을 활성화시키면 112로 전화가 걸리게 된다. 잠금화면을 열고, 112를 누르기까지의 절차가 줄어드는 것이다. 스마트워치를 지급할 때에는 지급받는 대상자의 정보를 112 시스템에 미리 등록해 두기 때문에, 스마트워치로 신고를 하면 신고자가 누구인지 경찰에서 바로 인지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또한 혹시 가해자가 바로 앞에 있거나 납치된 상황일 때 몰래 신고할 수 있도록 스마트워치는 기본적으로 무음 상태로 설정되어 있다.


그래서 스마트워치를 사용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게 가해자가 피해자가 착용하고 있는 게 경찰의 스마트워치임을 모르게 하는 것이다! 본인과 다른 피해자들의 안전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스마트워치를 노출하지 않겠다는 건 중요한 약속이다. 그러니까 언론에 이거이 스마트워치요~ 하는 게 얼마나 위험하고 어찌 보면 무책임한 행동인지.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고자 하는 대상자들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아쉬운 것은 스마트워치가 우리의 기대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점이다.


수많은 스파이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그러하듯이 스마트워치 하나만 작동시키면 내가 무슨 건물에 몇 층에 어느 방에 있고, 대충 내 상태가 어떻고 이런 게 싹 확인되면 좋으련만 현실은 아직 30년이 다 되어가는 <미션임파서블> 만큼도 쉽지 않다. 위치 정보는 많이 정확해졌으나, 2차원 수준에 머물러 있어 높이와 방향 정보는 피해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또 sos 기능을 활성화시킨다고 해서 바로 경찰이 퐈라락!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sos기능은 112 신고 전화를 걸기까지의 시간을 단축해 주는 것이다. 하기사 빨리 신고하면 빨리 출동하는 것은 맞지만.


스마트워치를 실제로 경찰에서 제공받아 착용하는 피해자들에게 정말 쓸모가 있느냐고 물어보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는 ‘차고 있으면 안심이 돼요’이다.


범죄를 경험하면 갑자기 매트릭스 속 빨간 약을 먹은 것처럼 이때까지 알던 세상과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된다. 안전감이 무너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영화 속 ‘네오’가 그랬듯 알고 보니 진짜 세상은 아름답지 않고, 평화롭지 않고, 안전하지 않음을 알아버렸기에 피해자들에게 안전은 매우 중요해진다.


그래 뭐, 어쩌면 그들에게 안전감을 제공한다는 것만으로 스마트워치의 역할은 충분한 게 아닐까.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3101816590004342

그런 의미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기사인지!


스마트워치 85%가 보복범죄면 아휴, 그거 너무 힘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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