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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오리즈 Jun 23. 2020

3-2. 로컬 문화의 수호자, 넷플릭스(상)

실리콘밸리의 할리우드



<오늘의 글 미리보기>

1. 넷플릭스는 왜 굳이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을까

2. 넷플릭스는 왜 굳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을까




세계 최대의 미디어 기업


필자가 할리우드 영화, 혹은 미국 영화라 알고 있는 콘텐츠 중 (과장 좀 보태서) 절반 정도가 디즈니 산하 스튜디오에서 제작되지 않았을까?


    1923년 설립된 디즈니는 100여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방대한 콘텐츠를 쌓아 온 업체이다. 백설공주와 엘사로 대표되는 전통 디즈니에서부터 아이언맨의 마블, 버즈와 우디의 픽사, 루크 스카이워커의 루카스필름 등 수많은 콘텐츠가 디즈니의 자산임을 모르는 사람은, 오늘날 많지 않다. 심지어 가장 최근에는 심슨과 아바타, 엑스맨을 보유한 21세기폭스도 디즈니의 소유가 되었다. 디즈니가 이 스튜디오들을 통해 소유하고 있는 작품 하나하나를 나열하면 끝도 없을 것이 분명하다. 2019년 박스오피스 상위 10개 영화 중 7개 영화가 디즈니의 영화이니 디즈니라는 한 회사가 영화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고 할 수 있겠다. 


    (2020년 5월 기준의 내용임을 밝혀둔다) 좌우간 하단의 그래프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런 디즈니의 가치보다도 넷플릭스의 가치가 높다고 시장은 평가한다. 최근 들어서는 코로나19 사태에 기인한 언택트 이코노미의 활성화가 넷플릭스의 가치 상승을 이끌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디즈니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 비단 코로나 사태에 기인한 일은 아니다. (물론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 아마존에 비하면야 1/10 수준이기는 하나,) 놀랍게도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은 ‘그' 테슬라보다도 높은 수준이다(테슬라는 신진 테크 기업 중에서도 첨단을 달리는 느낌이 있지 않은가? 필자는 ‘테슬라’ 하면 다가올 미래의 대표주자처럼 느껴진다.). 디즈니를 추월하면서 넷플릭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시장 가치를 지닌 미디어/엔터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넷플릭스의 가치는 어디에 기인하는 것일까.


디즈니와 넷플릭스의 시가총액 추이(2020년 4월 기준)

    넷플릭스가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은 두 번 정도의 중요한 분기점(DVD 대여 업체 -> 스트리밍 업체 -> 콘텐츠 제작사)을 지난 결과로 판단된다. 넷플릭스가 시의적절하게 소비자의 니즈를 잘 파악하여 충족시킨 면도 분명히 있지만, 중요한 순간에 경쟁자가 치명적 실수를 하는 등 운이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넷플릭스의 역사는 이 글에 너무나도 잘 설명되어 있으니 관심 있으시다면 방문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필자는 넷플릭스가 걸어온 행보, 그 궤적에서 중요한 지점들을 소개한 후, 두 가지 주요 의문점에 대한 답을 제시함으로써 넷플릭스의 방향성을 살피고자 한다. 





세계 최고 미디어 기업의 시작, DVD 대여점


넷플릭스에 대한 수많은 글들이 이런 사진으로 시작해 엄청 진부해보이지만, 초기 넷플릭스를 소개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묘사도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넷플릭스는 오프라인 점포에 기반


    넷플릭스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영상 콘텐츠 스트리밍 업체가 아니었음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넷플릭스의 기원은 DVD 대여점이다. 다만 오프라인에 기반한 DVD 대여점은 아니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 대기업과의 경쟁은 당연하게도 쉽지 않다. 대기업이 대기업인 이유는 많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있기 때문이고, 대기업은 다수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많은 자산을 축적한 상태이다. 자산이라 함은 물리적인 인프라일 수도 있지만, 공급자와의 관계도 포함할 것이고 소비자로부터 얻은 인지도와 신뢰도 역시 스타트업에 있어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DVD 대여업 후발주자로서 넷플릭스가 오프라인 대여점에 대항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온라인 기반 배송이다. 왜 다른 많고 많은 방법 중 배송이냐 라고 물었을 때 마땅히 할만한 대답은 없다. 오히려 ‘왜 DVD 대여업인가?’라고 질문함이 적절하다. 넷플릭스의 창업자인 리드 헤이스팅스(여전히 넷플릭스의 CEO이다)와 마크 랜돌프(이 사람은 넷플릭스의 첫 CEO를 하다가 기업 규모가 커지자 큰 규모의 기업을 운영하는 일보다 스타트업을 성장시키는 일을 선호한다며 넷플릭스를 떠났다)는 연쇄창업가들이었으며, ‘인터넷’으로써 비효율을 혁신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찾다가 DVD를 선택했다. 


    넷플릭스의 창업자들은 왜 DVD를 선택했는가, 그리고 왜 미디어 산업을 선택했는가. 오늘날의 아마존은 전자상거래 업체이고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자이지만, 그 시작점에는 서점이 있다. 제프 베조스는 부패하지 않아 재고 비축과 배송에 용이하고, 어느 판매처에서 구입하든 동질한, 결과적으로 온라인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상품으로써 책을 선택했다. 베조스는 ‘고객과 제조업체 간의 중개역할을 하고 전 세계 모든 유형의 제품을 판매하는 인터넷회사’를 구축하기 위한 시작점으로써 온라인 서점을 택했으며, 이는 리드 헤이스팅스와 마크 랜돌프가 DVD를 선택한 이유와 같다. 넷플릭스의 창업자들에게 있어 DVD는 제프 베조스의 책이었다. 다시 말해 넷플릭스가 DVD 대여업을 선택한 이유는 베조스가 책 그리고 온라인 서점을 택했던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베조스는 단순히 책을 좋아해서 서점을 만든게 아니며, 넷플릭스의 창업자들 역시 유달리 영화를 좋아해 온라인 DVD 대여 서비스를 구상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인터넷이란 신기술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매체를 찾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헤이스팅스가 비디오대여점에서 영화 <아폴로13>을 대여한 후 지불하게 된 연체료 40달러에 불만을 느끼고 창업에 나섰다는 말이 꽤나 널리 알려져있는데, 이는 그저 창업 이후에 만들어진 ‘신화’일 뿐이다.


    처음부터 넷플릭스에 연체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7년 8월 창업 후 1999년 9월 구독 모델을 도입하고 2000년대 개별 대여체계를 없애기 전까지는 넷플릭스에도 연체료가 존재했다. 구독 모델 도입 이전에는 넷플릭스 역시 타 업체와 마찬가지로 개별 DVD 대여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었으며, 다만 기성 업체들과 차별점을 두었던 부분은 온라인을 통해 대여하고 이를 배송해 주는 체계였다. 넷플릭스가 구독 모델을 도입하고도 닷컴버블과 9.11테러 등의 사건들로 인해 사업 환경은 녹록지 않았으나, 2002년 DVD 플레이어 가격이 인하되고 DVD 대여시장이 전반적으로 성장하며 사업이 본 궤도에 올랐다. 그 이후의 얘기는 차후 다뤄보도록 하고, 이 지점에서 중요하게 다뤄야만 하는 사안은 ‘어째서 구독인가’ 혹은 ‘어째서 구독일 수밖에 없었는가'하는 문제이다. 요즘에는 구독 서비스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 어도비의 CC같은 소프트웨어는 물론이고, 꽃과 그림 작품, 햄버거, 심지어 자동차까지도 구독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러한 구독경제 모델의 선구자가 넷플릭스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왜 넷플릭스는 구독 서비스를 개시했는가'의 문제는 유의미하다. 


    영화 대여업 후발주자인 넷플릭스가 압도적인 점유율의 경쟁자, 블록버스터를 상대로 살아남기 위해 택할 수 있었던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오프라인 점포 기반의 대형 프랜차이즈는 잘 팔리는 상위 20% 정도(당연히도 파레토 법칙에 의거한 숫자이다)의 콘텐츠를 다량으로 확보할 수밖에 없다. 블록버스터는 각 점포를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운영했기 때문에 재고 관리 역시 각 점포가 독립적으로 수행했다. 사람들이 주로 관심을 가지는, 그래서 대여하고자 하는 영화의 종류가 박스오피스 상단의 몇몇 영화에 한정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블록버스터의 각 점포는 상위 20%의 영화를 위주로 구비해뒀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블록버스터는 주류 상품을 다량 구비해 고객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고객들의 콘텐츠 니즈를 만족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전제로 가져갈 때, 후발주자인 넷플릭스가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몇 가지가 존재한다. 


대략적인 영화 대여업의 과정


    첫째, 보다 빨리, 사람들이 선호하는 최신 영화를 가져와서 사람들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다. 이런 전략을 취할 경우 블록버스터와의 경쟁은 콘텐츠 확보 속도에 달려있다. 기왕이면 인기 있는  콘텐츠를 자사만 독점 공급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독점하지 못한다면 속도 면에서라도 우위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블록버스터라는 선도업체를 상대로 콘텐츠 제작자들과의 협상에 있어 우위를 점하기란 쉽지 않다. 

    둘째, 고객들이 대여한 영화를 빠르게 반납하도록 하여 인기 있는 영화를 보고 싶으나 점포에 재고가 없어 보지 못하는 고객의 수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회전율을 올리는 전략이다. 소비자들에게 ‘넷플릭스는 항상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라는 인식을 심으면 경쟁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다. 대여 기간을 짧게 하고 그 대신 요금을 조금 인하하지만 연체료는 인상하여 이 전략을 취할 수 있겠다. 

    셋째, 사람들이 많이 찾을만한 위치마다 점포를 설치하여 고객을 확충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아무래도 자신의 집에서 보다 가까운 장소에 영화 대여점이 있기를 바랄 것이며, 블록버스터가 아무리 많은 점포를 가지고 있었던들 넓은 땅어리를 가진 미국이란 나라의 특성을 고려하면 가장 가까운 블록버스터 점포까지 가는 일은 꽤나 귀찮은 일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다만 이 전략을 취할 경우, 각 점포의 규모는 어떤 수준이어야 하며, 어떠한 영화를 얼마나 구비해야 할지 파악하기가 더욱 까다로워진다는 문제 상황이 발생한다(n이 작아지면 평균의 추정은 더욱 어렵지 않은가). 일부 소비자들이 자주 이용해준다고 하더라도, 매출이 비용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기업 입장에서 점포를 설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넷째, 아예 블록버스터가 취급하지 않는 콘텐츠를 공략하는 것이다. 소위 롱테일이라고 부르는 전략을 취해 고객에게 차별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방법이다.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할만한 주류 콘텐츠가 아니라 각 개개인의 취향에 맞춘 콘텐츠를 구비함으로써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후발주자로서 이 전략을 택했고, 구독은 롱테일 전략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롱테일 전략은 정교한 데이터 활용을 전제로 한다. 블록버스터와 같은 기존의 업체들이 지구 상의 모든 콘텐츠를 구비하기 싫어서 고객들에게 제공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몇 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시청하고자 하는 상위 20% 정도의 콘텐츠는 모든 점포들에 구비시키면 되지만, 그 외 80% 정도의 콘텐츠는 모든 점포들에 구비시키기에 한계가 있다. 당연히 예산 상에서도 한계가 있을 것이며, 더 큰 문제는 점포라는 공간 특성 상 물리적 한계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고객들은 소비하고자 하는 콘텐츠 중 일부만 시청할 수밖에 없었다(각 점포에서 한정된 종류의 콘텐츠만을 제공하니 다양한 스펙트럼의 콘텐츠를 접할 수 없게되고, 결과적으로 본인들이 어떠한 콘텐츠를 원하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인터넷 기업 넷플릭스가 기성 업체로부터 차별화했던 지점이 바로 여기에 위치한다. 기성 점포가 3,000여 종류의 콘텐츠만을 제공하는 것과 달리, 인터넷과 중앙물류시스템, 그리고 배송을 활용해 125,000 종류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1) 온라인 사이트를 활용하여 소비자 성향을 통합적으로 기록 및 파악했고, 2) 중앙집권적인 물류 관리를 통해 재고를 관리했다. 중앙물류관리시스템은 넷플릭스에 있어 지역별로 다른 수요를 보정할 여지를 제공한다. 예컨대 뉴욕에서 특정 영화의 수요가 증가하고 상대적으로 인근의 필라델피아에 해당 영화에 대한 수요가 감소 한다면 필라델피아 물류창고의 DVD를 뉴욕 물류창고로 옮길 수 있다. 소비자의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함으로써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이러한 환경은 넓은 스펙트럼의 콘텐츠를 구비할 수 있는 환경으로 이어진다. 나아가 소비자 성향을 파악한 데이터를 토대로 각 개인의 페르소나를 형성하여 적절한 제품을 추천할 수도 있다. 영화 대여 시장의 후발주자로 시작한 넷플릭스에 있어 롱테일 전략 외에 현실적인 선택지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넓은 스펙트럼의 콘텐츠를 구비했다면 그 다음 단계는 고객들로 하여금 그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구독 서비스가 필요하다. 편 단위로 대여하면 자연스럽게도 ‘어떤 영화를 봐야겠다.’라는 목적을 갖고 대여점에 방문할 수밖에 없고, 사전에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만 콘텐츠를 소비하게 된다. 기존에 알고 있던 영화, 최근에 광고를 많이 하던 대작 영화 정도에만 눈길이 가지, 그 이외의 영화는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재밌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돈 주고 그 영화를 굳이 돈 주고 빌려오기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그래서 넷플릭스는 롱테일 전략의 수행을 위해 영화의 단위를 바꿨다. 넷플릭스는 영화 대여를 ‘편 단위’에서 ‘시간 단위'로 전환시켰다. 편 단위로 대여해주는게 아니라 한 달과 같은 시간 단위로 구독하게 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 달 동안 최대한 많이 보는게 이득이라 판단한다. 환언하면 요금을 지불한 그 한 달 동안 소비자는 구독료를 낸 것에 대해 최대한의 효용을 창출하기 위해 다양한 영화를 시청하기 시작한다. 결과적으로 구독 서비스가 새로운 영화를 발견하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여기에 넷플릭스가 공을 들인 개인별 맞춤 추천 시스템이 더해지면 롱테일 전략과 구독 시스템의 시너지는 완벽할 따름이다.             

      

후발주자
=> 롱테일 전략 수립
=> 온라인과 중앙물류시스템, 배송
=> 소비자 성향 파악과 중앙집권적이며 유연한 물류 관리
=> 넓은 스펙트럼의 콘텐츠 구비, 소비자 개인에게 추천
=> 구독 서비스로써 롱테일 전략 완성


    후발주자라는 상황이 넷플릭스로 하여금 롱테일 전략을 택하게 이끌었고, 롱테일 전략을 성공적으로 실행하는 과정에서 구독 서비스가 등장했다. 그리고 오늘날 ‘구독' 서비스는 넷플릭스의 최대 강점 중 하나로 자리했다. 한편 구독 서비스는 규모의 경제를 수반한다는 점에서(각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고정비이다. 당연히도 고객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평균 고정비는 감소한다. 인터넷 기업 특성 상 변동비는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넷플릭스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지표는 고객의 수이다.), 즉 넷플릭스가 끊임없는 확장을 모색하게 이끌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DVD 대여점에서 스트리밍 업체로


    넷플릭스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 2월 스트리밍 서비스를 개시하면서부터였다. 당시 넷플릭스는 구독자들에게 무료로 스트리밍 서비스도 제공했다. 신규 작품은 DVD 대여 방식으로 제공하고, 상대적으로 오래 된 작품은 온라인에서도 언제든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만 배송받을 수 있는 DVD의 종류가 100,000개였던 것과 달리 초기에 스트리밍 되는 콘텐츠는 1,000개 남짓이었다. 2009년 6월 들어 12,000개가 된 스트리밍 콘텐츠는 이후 점차 증가했다. 배송 기반 오프라인에서 벗어나면 세 가지 장점이 단적으로 존재한다. 


    첫째, 재고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물리적인 DVD를 구비한 다음 이를 대여하는 시스템 하에서는 정해진 수준의 재고 내에서 최대한 많은 고객이 소비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 한정된 재고를 가지고 최대한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각 DVD가 한 명의 소비자에게 머무르는 시간을 줄여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대여해가도록 회전율을 높여야 하는 것이다. 이는 위에서 말한 네가지 전략 중 두번째 전략과도 같은 맥락에 위치한다. 그러나 스트리밍 서비스를 지원한다면 동 문제가 해결된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무형의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하고, 특정 콘텐츠에 대한 라이센스를 받아온 후 고객이 인터넷 환경에 접근만 할 수 있다면 무한대의 고객이 동시에 같은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다. 


    둘째, 배송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DVD 대여를 하는 이상 DVD는 물류센터에서 소비자에게로, 그리고 소비자에게서 물류센터로 다시 배송되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배송에 소요되는 시간은 공급망이 최적화됨에 따라 점차 감소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방 한계선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고객은 본인이 원하는 콘텐츠를 최대한 빨리, 가능하다면 즉시 시청하기를 바란다는, 그 변치 않는 사실을 고려하면 배송은 언젠가 대체되어야 하는 과정임이 분명했다.


    셋째, 지역적 기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인터넷을 바탕으로 스트리밍할 경우 모든 사람들의 컴퓨터 상에 점포를 설치할 수 있으며, 나아가 미국 외에 전 세계를 상대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 이는 위에서 말한 네가지 전략 중 세번째 전략과도 같은 맥락에 위치한다. 오프라인 대여점 혹은 물류센터를 해외 각국에 설치하는 방식도 물론 가능하나, 인터넷 기반 서비스는 훨씬 적은 추가 비용으로 해외 진출이 가능하다. 인터넷을 통해 물류센터나 대여점이 개별 소비자의 컴퓨터 상에 존재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넷째, 텔레비전과 DVD 플레이어라는 재생장치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 해당 플랫폼용 넷플릭스 어플리케이션을 제작하기만 하면 인터넷이 지원되는 모든 기기에서 넷플릭스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현재 폰과 태블릿은 물론, 셋톱박스와 게임기(플레이스테이션 등)에서도 넷플릭스에 접근할 수 있다. 


    결국 네 가지 모두 DVD라는 물리적 매체에서 기인한 한계를 벗어남에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 구독 서비스 특성 상 고객 수의 확대는 언제나, 끊임없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업체 전환은 진작부터 예견된 바였다고도 할 수 있겠다. 후발주자였던 넷플릭스는 롱테일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구독 서비스를 불러일으켰으며, 구독 서비스는 스트리밍 업체로의 전환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넷플릭스는 영화 배급사로부터 DVD를 사는 대신 판권을 구매하기 시작했고, 아마존의 AWS 시스템을 활용, 고객들이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에 연결된 기기만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DVD 대여업체는 반드시 스트리밍 업체가 되어야만 했었는가


    결과적으로 DVD 대여업체에서 시작한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업체로 변모했으며, 경쟁자였던 블록버스터는 DVD 대여업체로서의 정체성을 지킨 끝에 파산했다. 그렇지만 블록버스터가 파산한 이유가 온라인 스트리밍 업체로 변모하지 못했다는 점에 위치하는가? 블록버스터와 츠타야는 같은 비디오테이프 대여점에서 시작했으나 다른 운명을 맞이했다. 그 차이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블록버스터가 한 때 잘나가던, 그러나 시류에 뒤쳐졌으며, 따라서 필연적으로 망할 수밖에 없는 회사였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판단은 성급한 면이 분명히 있다. 외면적으로는 무능해 보였던 블록버스터도 내부적으로는 치열했고, 넷플릭스를 거의 뒤엎을 수 있었던 순간도 있었다. 비디오테이프 대여에 주력하고 있던 블록버스터는 워너브라더스로부터 DVD 독점 공급 계약을 제의받았으나 DVD 시장을 간과한 결과 해당 제의를 거절했으며, 넷플릭스 인수 제의를 수 차례 받기도 했으나 넷플릭스의 잠재력을 평가 절하하며 제의를 거절했다. 그리고 뒤늦게 대응하려 했을 때는 모기업이나 투자자의 입김으로 인해 새로운 사업에 재원을 적극적으로 할당할 수가 없었다. DVD 우편 대여 시장에서 뒤쳐진 후 블록버스터는 존 안티오코 당시 CEO의 주도로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바로 진입할 구상을 했다. 그러나 2001년 당시(넷플릭스의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가 2007년에 출시되었음을 고려하면 상당히 이른 시기이다)에는 인터넷 환경, 특히 속도가 아직 영화 스트리밍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며 저작권 관련 규제도 복잡했다. 그나마 오프라인 매장과 블록버스터 온라인의 가입자를 통합한 통합 회원제(Total Access)로 가입자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며 넷플릭스를 벼랑 끝까지 몰았던 것이 마지막 기회였다.


    블록버스터는 파산 직전 쯤, 세븐일레븐 출신 제임스 키스를 CEO로 앉혀놓고 오프라인 회생 전략을 추진한 바 있다. 편의점 CEO 출신인 키스는 과연 매장중심적 사고의 인물이었다. 그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피자와 탄산음료를 팔고 아이팟과 DVD 플레이어 같은 전자제품도 체험 및 판매하는 전략을 계획했다. 이 지점에서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오프라인에 집중하고자 한 블록버스터의 선택이 반드시 잘못되지는 않았을 것이란 점이다. 영화 저장매체 유통업이라는 넓은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물론 블록버스터가 선발주자였지만, 온라인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오히려 넷플릭스가 선도 업체였다. 후발주자가 반드시 선도 업체와 동일한 전략을 취해야만 한다는 법은 없다. 따라서 블록버스터가 온라인 기반 영화 유통업체로의 전환을 했어야만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란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블록버스터가 기존의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기술과 문화를 수용하여 변모한다면 넷플릭스를 벤치마킹하지 않았더라도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츠타야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렇다. 


    블록버스터가 오프라인에서의 경험을 판매하는 전략을 일관성있게 추진했다면 오히려 잘됐을 수 있다(물론 경험이란 맥락 속에 소비자들의 니즈가 충분히 반영되어 있어야겠다). 아마존의 시대에도 코스트코와 월마트는 순항 중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본의 츠타야서점(이전 글을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혹은 한국의 스틸북스는 서적과 음반 위주의 상점이나 그와 더불어 가전제품, 식음료, 주방용품, 여행 상품 등 다양한 제품을 함께 진열함으로써 ‘경험'을 매개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블록버스터의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길 수 있다. 블록버스터는 비디오를 보며 피자를 먹을 수 있는 공간, 좋아하는 영화를 찾으러 갔다가 그 영화를 재생시킬 수 있는 최신 전자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공간, 영화광과 전자제품 덕후를 위한 공간이 될 수도 있었다. 공간, 그리고 그 공간에서의 경험을 매개로 제품을 홍보 및 판매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츠타야서점은 시류의 선도주자가 되었고, 블록버스터는 파산에 이르렀다. 두 업체의 운명을 가른 핵심 요소는 무엇일까. 


    그 요소는 비즈니스 모델일 것이다. 과거의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도매가로 물건을 구매해 마진을 얹어 소매가로 물건을 파는 수수료 비즈니스 모델을 영위했다. 이들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거의 유일한 중개상이었다. 지금도 많은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그러한 방식으로 사업을 하나, 과거에는 수수료 비즈니스 모델이 아닌 방식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업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 오늘날의 오프라인 업체들은 브랜드에 대한 관심을 끌고 그런 관심을 판다는 측면에서 중개상보다는 미디어 회사에 가깝다. 소비자들은 여전히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상품을 구매하지만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으며, 그러한 상황에서 오프라인 매장들은 ‘경험'이란 단어로 대표되는 공감각적 미디어 컨텐츠를 제작하고 PPL로 돈을 번다. 스타벅스가 판매하는 것은 공간이며, 츠타야가 판매하는 것은 경험이다. 커피나 책은 그 공간과 경험을 즐기기 위한 입장료인 동시에, 즐거운 기억을 간직하기 위한 굿즈이다. 


    블록버스터는 오프라인 상점만이 제공할 수 있는 경험을 판매하고자 시도했으며, 온라인 사업과 오프라인 사업을 하나의 멤버십으로 묶은 시도 역시 효과적이었다. 블록버스터가 장기간 살아남았다면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소비자 구매 데이터를 확보해, 이를 바탕으로 오프라인에서 공감각적인 경험을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상품을 홍보, 중개, 판매하는 업체로 발돋움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오늘날의 츠타야가 그러하듯 말이다. 그러나 오프라인 업체의 강점을 살리고자 하면서도 온라인 사업을 성장시키려고 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우선순위 설정,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 시도 역시 지속적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한 때의 골리앗, 블록버스터는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시키지 못했고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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