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선고
본 글은 "벗어날 수 없는 임대업의 굴레, PC방(상)"에서 이어집니다.
<오늘의 글 미리보기>
1. PC방계의 스타벅스는 등장할 수 있는가
2. PC방은 존속 가능한가
PC방 계의 스타벅스는 나올 수 있는가. 이 질문은 PC방 프랜차이즈 혹은 점포가 서비스 품질에서 대단한 차별성을 지니지는 못하더라도 충성도 있는 고객을 가질 수 있는가 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음료나 식품의 차원에서 스타벅스가 특별함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비슷한 가치를 제공하는 카페들이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 이디야는 갈 곳 없으면 가는 카페이고 스타벅스는 조금 더 걷더라도 지도에서 검색해 찾아갈만한 카페가 된 이유가 뭘까?
많은 사람들이 스타벅스의 브랜딩을 그 이유로 꼽을 것이다. 직영점 시스템에서 기인한 어딜가나 동일한, 그러나 고급스러운 경험. 이와 더불어 스타벅스의 한정판 굿즈, 콜라보레이션 등 이벤트는 고급스러움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스타벅스의 고급스러움이 스며들 수 있었던 것은 1997년 당시 이화여대 앞에 스타벅스 1호점이 생기던 시점의 한국이 바리스타 커피 문화보다 인스턴트 커피 문화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다니면 된장남/된장녀라 불리던, 스타벅스가 과소비의 상징 그 자체이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허영심이라는 동전의 뒷편엔 동경심이 적혀 있었고, 스타벅스는 일상의 고급스러움+편안함으로 자리잡았다. 스타벅스가 특정 대상을 타겟해 출시하고 선도했던 문화는 사실, 시대를 관통하는 문화였다. PC방에 대해 다루고 있는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 브랜드만이 갖고 있는, 그래서 전달할 수 있는 독특한 감성과 경험이 있어야만 충성도 있는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PC방은 독특한 감성과 경험을 제공하기에 이미 너무 익숙하고 보편적인 문화이다. 브랜드 로열티를 만들기엔 지나치게 포화된 시장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조금이라도 앞서나가는 브랜드가 있더라도 그것을 벤치마킹하기에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한 브랜드가 PC토랑을 표방하며 각종 음식을 판매하자 그 전략이 전국의 PC방으로 확산되었다. 지금 시점에서는 다양한 메뉴를 제공하지 않는 PC방을 찾는게 더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식사 메뉴를 즐기기 위해 특정한 PC방을 굳이 찾아간다는 것 역시 상상할 수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서비스의 상향평준화이나, PC방 입장에서는 무한경쟁이다. 뭐 하나 바뀌면 지체 없이 그에 맞춰 변화하고 적응해야 한다. 과거의 영광에 젖어 변화하지 못하면 도태될 뿐이다.
PC방이 소비자를 상대로 로열티를 가질 수 있는 부분은 x만원어치 정기권을 끊어 놓았기 때문에 다른 PC방에 가는 것보다 특정 PC방에 가는 것이 조금 더 저렴한 이용료로 즐길 수 있는 정도이다. 결국은 다시 가격 경쟁이고, 정기권 제도 역시 전국 어느 PC방이나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경쟁 우위로서 작용하기 어렵다. 감히 단언하건대, PC방이 PC게임으로 사람들을 모객하는한 브랜드 로열티를 가지기는 어렵다.
앞서 말했듯 가장 큰 위기는 PC게임이 더 이상 매력적인 유희거리가 아니라는 데 위치하며, PC게임의 흥망에 의존적인 PC방이기 때문에 PC방의 전망 역시 부정적이다. 지금까지는 무한 경쟁일지 언정 PC방 업계 전체가 소비자를 모객하기에는 어느 정도의 매력도를 유지하는 사업 모델이었다. 그러나 이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 전망한다. PC게임은 어디까지나 유희 행위이고, 다른 부분을 통해 유희가 충족되면 PC게임을 통한 유희는 매력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가 경쟁자로 꼽는 상대는 디즈니가 아니라 게임이나 웹서핑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만하다. 넷플릭스 같은 OTT도 상당한 경쟁자이나, PC게임의 직접적인 경쟁자 두 가지가 있다. 모바일 게임과 클라우드 게이밍이다.
모바일 게임은 보다 즉각적인 경쟁 상대이다. 최근 히트한 PC 게임이 뭐가 있는지 떠올려 보자. 필자의 머릿속에서는 롤이 마지막이다. 오버워치나 배틀그라운드가 있기는 하나, 스타크래프트 1과 리니지, 롤에 비견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모바일 게임을 떠올려보면 롤토체스(전략적 팀 전투), 모바일 배틀그라운드, 리니지 모바일, 카트라이더 러시 등이 있을 것이다. 대형화되고 있는 모바일 화면을 고려하면 PC게임의 경쟁력은 더욱 낮아진다. 친구들과 함께 생생한 그래픽으로 유희 활동을 하고 싶다는 니즈가 모바일 게임으로도 충족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모바일 게임은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게임은 유희 활동이기 때문에 장소의 제약, 귀찮음이 보다 중요하게 작용한다. PC게임과는 다르게 임의의 한 공간에 같이 모여 있어도, 굳이 모여 있지 않아도,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이 모바일 게임이다. 이제는 넥슨도, NC도, 넷마블도, 심지어 라이엇게임즈도 다 모바일 게임을 중점적으로 개발한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동일한 자원을 투입하더라도 더 큰 시장에서 놀수 있고 더 많은 매출을 창출할 수 있는 모바일 게임의 개발은 지극히 이성적인 선택이다. 하단의 그래프를 보면 모바일 게임 시장의 성장성을 보다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모바일 게임과 다르게 클라우드 게이밍은 보다 장기적 관점의 경쟁 상대이기는 하다. 아직 인프라 구축이 완료된 시점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보다 직접적인 PC게임의 경쟁 상대이다. 클라우드 게이밍은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을 이용한 게임의 스트리밍 원격 플레이를 말하는데, 서버에서 동작하는 게임을 정기적인 요금을 내고, 정해진 타이틀들을 스마트폰, PC, 콘솔 등 다양한 개인 소유의 플랫폼에서 스트리밍을 통해 플레이할 수 있게 된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미 상당수 기업들이 클라우드 컴퓨팅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아마존의 루나, 구글의 스타디아,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패스/엑스클라우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나우, 엔비디아의 지포스 나우 등, 수많은 IT 공룡들이 클라우드 게이밍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있다. 장치가 없어도 게임이 가능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으며, 해당 시점에서는 인터넷과 디스플레이 정도만 있으면 고성능 칩셋이 없어도 얼마든지 게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클라우드와 인터넷 환경 덕분이다. (IaaS나 PaaS, 여기에 SaaS 까지도, 언제가 다룰 일이 있을 것이다.) PC방은 더 이상 ‘장치로 모객'할 수 없고, 이는 PC방에 있어 사망 선고와도 같으며, 기일이 멀지는 않았다.
PC방이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유희를 즐길 공간은 존속할 것이다. 코로나 시기처럼 완전히 오프라인 활동이 차단된 것이 아니라면 집과 학교, 직장 외의 공간에서 유희를 즐기고자 하는 니즈는 상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공간이 지금의 PC방 형태일 것이라고는 결코 장담할 수 없다. 아마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건 그 콘텐츠를 개발하고 유통하는 회사들, 게임 개발사들과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자들에 달려있고, 유희의 공간들은 전적으로 그에 의존적이다. 시류에 편승하면 공간에 사람들을 끌일 수 있겠지만 그 시류를 보지 못하고 뒤쳐지는 순간 도태되는 것이 PC방이다. 이는 대형 PC방이나 개인 PC방이나 똑같이 적용되는 얘기일 것이다.
PC방은 변해야 하고, 변할 수 밖에 없다. 진입장벽이 없으니 지속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신규 Player가 진입할 것이기 때문이며, 정부 규제가 됐든 게임 개발/유통사의 트렌드가 됐든 외부 영향들에 끊임 없이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고, 그런 흐름을 읽고 적절히 변한 Player들만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는 더 이상 그 공간에 PC방이란 이름이 붙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