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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Oct 06. 2024

낯가리는 아내, 남편 직장 회식에 따라가다(1)

남편의 삶 들여다보기

남편은 대학병원 부교수이다. 둘째가라면 서러운 집돌이로 태어났지만 평일 저녁에는 직장 회식으로 바쁘고, 주말에는 학회 참여로 바쁘다.


"오빠는 회식이 좋아?"

"아니. 기 빨려."

"가기 싫으면 안 가면 되잖아."

"음, 그렇다고 모든 회식에 빠질 순 없지."


회식이란 거의 없는, 공무원인 나는 알쏭달쏭하다. 친목 도모는 왜 해야 하는지, 먹기 싫은 술은 왜 먹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혹시 맛난 음식이 먹고 싶어서 그런가?!'

합리적인 의심이다. 남편은 밖에서 산해진미를 잔뜩 먹고 들어온다. 기껏 회식이라고 해봐야 만 오천 원짜리 돌솥비빔밥을 먹고 오는 나에겐 남편이 회식에서 먹고 오는 음식이 고급 요리로 보인다.


그건 그렇고, 남편이 분기별로 주말 학회에 참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호캉스를 누리고 싶은 건가?!'

이것도 합리적인 의심이다. 주말 학회는 주로 1박 2일로 호텔 세미나장을 빌려서 진행한다. 전국의 교수님들이 모이는 자리인 만큼 주최 측은 어디 여관방 같은 호텔을 잡지는 않는다. 최고급은 아니더라도 불만이 나오지 않을 수준의 호텔을 선정한다.

남편이 혼자 호캉스를 즐기는 게 그렇게 배 아프면 부부가 같이 가면 될일 아니냐 싶겠지만  

그동안 남편 혼자서 학회에 간 이유는 오랜 기간 우리가 주말부부이기도 했고, 지역을 옮긴 이후에도 내가 영재원 출강을 나가느라 시간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같이 갈래?"

영재원을 그만둔 이후 남편이 물었다. 나는 옳다 커니 싶어서 대답했다.

"응, 갈래! 어디야?"

"여수."






여수로 떠나는 날, 남편의 짐은 달랑 배낭 하나뿐이었다. 그에 반해 나는 캐리어가 필요했다. 남편의 직장 동료를 만나는 자리이니 화장품과 여벌의 옷을 준비해야 했다.

"오빠는 짐이 그게 다야?"

"왜? 세면도구랑 양복이랑 속옷! 다 챙겼는데?"

"남자들은 짐이 간단해서 좋겠다니까. 난 왜 이렇게 챙길게 많은 거야..."

나는 투덜대며 캐리어를 남편 차에 집어넣었다. 남편은 차에 시동을 걸었다.

"내가 같이 가주니까 안 외롭고 좋지?"

"당연히 좋지!"

 나는 휴대폰 블루투스로 노래를 틀었다. 첫 번째 선곡은 볼 빨간 사춘기의 '여행'이다.


Take me to new world anywhere, 어디든 답답한 이곳을 벗어나기만 하면

Shining light, light, 빛나는 my youth 자유롭게 fly, fly, 나 숨을 쉬어



 




"오빠, 바다야!"

호텔에 도착하니 바다가 보였다. 바람은 선선했고, 햇빛에 반짝이는 윤슬은 눈부시게 빛났다. 하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바다도 체크인 로비에서 나눠주는 식권에 관심을 뺏기고 말았다. 나는 브로셔를 보며 금액과 음식점을 빠르게 스캔했다.

"자자, 어디 보자. 점심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어? 어디 갔지?"

옆에 있던 남편이 사라졌다. 남편은 다른 교수님들과 인사하는 중이었다. 나는 남편 옆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이쪽은 저희 와이프입니다."

"아하,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번엔 같이 오셨네요."

나는 비즈니스적인 웃음을 장착하고 맞인사를 했다. 생글생글 웃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어색해서 염불을 외울 지경이었다.

"그럼, 이따가 뵙겠습니다!"

한차례 인사 세리머니가 끝난 후, 우리는 호텔에 체크인했다.

"오빠, 우리 저녁에 뭐 먹지? 뭐 먹지? 우리 이제 자유지?"

나는 꿀꿀 박사처럼 식권을 흔들었다. 하지만 남편은 시계를 보며 말했다.

"어, 잠깐만. 나 지금 가봐야 해서 그건 학회 끝나고 얘기하자."

남편은 정장으로 갈아입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나는 허탈하게 침대에 드러누웠다.

"하긴, 남편은 여기에 놀러 온 게 아니니까..."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게 아쉽긴 했지만, 혼자만의 시간도 썩 나쁘지 않다. 나는 남편을 대신하여 호캉스를 누리기로 했다.

'음, 근데 호캉스는 뭐 하는 거지?'

집에서만 지내는 시골쥐라서 그런지 호텔에서는 뭘 하고 놀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보이는 대로 리모컨을 잡았다.

"오, 넷플릭스 틀어주시고! 브리저튼 3, 오늘은 이거다!"

티브이 없는 집에 살아서 그런지 드라마 보는 것조차도 재밌었다. 나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드라마를 정주행 했다. 그러던 중 남편에게 메시지가 왔다.


"퇴임을 앞두신 교수님이 오셨어. 알지? 우리 주례봐주셨던 교수님. 아무래도 저녁 회식에 가야 할 것 같은데 혹시... 같이 갈래?


청천벽력같은 메세지에 나는 신나게 보던 드라마를 꺼버렸다.

'의사들이 드글드글한 회식에 따라 간다라... '

너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문득 의사들은 회식자리에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어떤 분위기인지 궁금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렇게 답장했다.


"그래, 가보지 뭐!"  




다음 화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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