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참 많은 직업이 있지만 '교사'만큼이나 공개된 직업은 없을 것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법원, 경찰서에 가보지 않을 수 있어도, 단 한 번도 학교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심지어 6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교사와 한 공간에 있으니 사람들은 교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다 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 역시 교대에 입학할 때 교사의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했었다. 학교에 출근해서 수업을 하는 직업. 그게 내가 생각하는 교사였다. 덧붙여 말하자면 어린 학생들의 꿈을 키워주는 직업, 학부모에게 존경받는 직업,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안정적인 직업, 시간 여유가 많은 직업, 방학 때 장기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직업, 연금이 나오는 직업으로 여겼다.
우리 부모님은 친척들에게 자랑삼아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교사는 초등학생들이랑 놀아주면 되는 좋은 직업이야.'
아마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교사의 아침은 이런 모습일 것이다.
우아하게 커피 한 잔을 들고 교실로 들어간다. 아이들이 '선생님, 안녕하세요?'하고 고개 숙여 인사하면 방긋 웃으며 '응~ 00이 왔니?'라고 친절하게 답한다. 아이들은 조용히 자습을 하고 선생님은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 서서 흐뭇한 얼굴로 아이들을 바라본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어떨까? 여느 교사의 아침 시간으로 들어가 보자.
띠리리링. 아침 알람이 울린다. 아직 꿈나라에 가있는 남편을 뒤로하고 그녀는 총알같이 일어나 샤워를 한다. 남들보다 30분 빠른, 아침 8시 반까지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준비해야 한다. 새로 발령 난 학교가 멀리 있기 때문에 교통체증을 피하려면 새벽같이 움직여야 한다. 챙겨야 할 아이가 있는 경우 더 바빠진다. 그녀는 속으로 유연근무제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그래도 전국 순환근무가 아닌 게 어디야."
그녀는 시계 앞에서 멍하니 서있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자동차 키를 챙겨 집 밖을 나선다.
띵동.
문자가 왔다. 학부모의 문자다. 운전 중인 그녀는 문자를 확인하려다 휴대폰에서 손을 떼고 핸들을 꽉 잡는다. 괜히 스쿨존에서 한 눈 팔다가 사고라도 나면 직업이 날아가는 것 당연하거니와 철컹철컹 수갑을 차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 그녀는 강을 헤엄치는 인어처럼 부드럽게 학교 안으로 들어가 주차할 자리를 탐색한다.
엇!
마침 빈자리가 보인다. 교문과도 가깝다. 하지만 그 자리는 교장선생님의 자리이다. 괜히 자리를 꿰차고 들어갔다가 무슨 미움을 받게 될지 모른다. 그녀는 입맛을 쩝 다시며 교문과 멀디 먼 자리에 차를 댄다.
우타타타타탕!
코끼리가 뛰는 듯한 쿵쿵대는 소리가 들른다. 복도는 이미 포클레인 같은 아이들의 고함소리로 점령당했다. 그녀는 착착 계단을 올라 자신의 교실로 쏙 들어간다. 시계는 8시 29분. 나이스 타이밍이다. 그녀는 컴퓨터를 켜고 메시지를 확인한다. 쪽지함에 메시지가 스무 개나 차있다.
- 국악강사의 요청으로 수업 시간표 조정합니다. 1반은 2교시에 하고, 2반은 4교시에......
- 검은색 아이폰을 분실하였다고 합니다. 분실물을 습득한 경우 1학년 3반으로...
- 체육전담입니다. 오늘 수업은 강당에서 실시합니다. 학생들에게 안내를 부탁...
- 체험학습 건으로 점심시간에 잠깐 연구실에서 모일까요?
- 보건실입니다. 아침에 00 이가 다녀갔는데 아무래도 학부모님께 연락해야....
- 급식실입니다. 오늘 식사 후 남은 뼈는 따로 분리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세요.
쪽지를 확인하는 사이 어느새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온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응, 그래. 얼른 자리에 앉아라."
아이들의 인사에 대답은 하지만 눈은 여전히 컴퓨터를 보고 있다. 아침 시간 안에 끝내야 할 미션들이 있기 때문에 정신이 없다. 특히 아이들과 관련된 일은 즉시 답장을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학교가 돌아간다. 퇴근 후로 미룰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아이들이 있을 때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태반이다.
타다다닥. 타다다닥.
한창 키보드를 두드리다 시끌시끌 떠드는 소리에 그녀는 인상을 찌푸린다.
"누구야, 누가 떠드는 거야?"
그녀는 다시 일에 집중하다 시계를 보고 화들짝 놀란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다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들의 상태를 스캔한다. 지각한 아이들이 있는지, 아픈 아이는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한다.
"선생님, 00이 아직도 안 왔어요!"
"뭐? 또 지각이야?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그녀는 급히 전화를 돌린다. 사정을 들어보니 늦잠을 잤단다.
"네, 어머님. 얼른 챙겨서 보내주세요."
전화를 끊으니 수업 시작종이 울린다. 그녀는 하던 일을 대충 마무리하고 교과서와 지도서를 펼친다.
"자, 얘들아. 주목! 1교시는 수학 45페이지..."
그러다 문득 아침에 답장하지 못한 문자가 갑자기 생각난다.
'아차!'
그녀는 결국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학부모의 문자에 답장하지 못했다. 학부모는 교사가 자신의 문자에 늦게 답장했다고 속상해하겠지만, 대부분의 교사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바쁜 아침 시간을 보낸다. 교사의 아침은 정말 정말 바쁘다.
그녀는, 아니 나는 아침 내내 종종거리느라 물 한 잔 채우지 못해 텅 빈 텀블러를 보며 생각한다.
'하아, 나도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있는 아침 시간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