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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문덕 Mar 18. 2023

싸이코에게 연민을 느껴야 하는 이유

그 인간과 전쟁 중입니다


누가 말했을까



인생은 전쟁이라고



누가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동안의 나는 이 은유에 동의하는 삶을 살아왔다.


내 인생터를 전쟁터로 묘사하고 서사하며 다양한 사건들을 창조하며 살았다. 학교, 군대, 사회는 전쟁터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승리하기 위해 강한 군인이 되어야 했다. 내가 군인이 되니, 자연스럽게 상대 적군이 나타났고 이기기 위해, 아니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매일 아침 격전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독기 있는 군인처럼 마인드셋을 해야 했고, 전투력 상승을 위해 갖은 노력을 했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전쟁터에서.. 끈질기고 강력한 적군을 만났다.

그 인간은 다양한 전술과 전략으로 1년 넘게 나를 괴롭혔다.

미치 않고서야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그 인간을 '싸이코' 로 정의했다.



슈퍼 긍정맨을 자부하는 나이기에 쉽게 견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 인간 때문에 수시로 편두통과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그 인간의 말, 행동, 모습 다 싫다. 토할 것 같다. 꼴 보기 싫다. 정말이지, 그 인간만 없으면 나는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천 번은 한 것 같다. 나아가 이런 혼잣말도 수백 번 되뇌었다. '아, 저 인간 너무 싫다. 왜 이런 걸로 분노를 하지?',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진짜 치졸하다. 이해할 수가 없네', '그래, 벌 받을 줄 알았어, 꼴좋다'


미워하는 것을 넘어서, 증오하고 혐오하고 비난하는 수준까지 갔다. 그 인간이 잘 안 되는 것이 나의 행복이고, 그 인간이 고통받는 것이 나의 행복이 되었다. 24시간 편의점처럼 나의 내면에서는 24시간 내내 그 인간과 전쟁이었다. 반대로, 나의 이너피스(Inner-Peace)는 24시간 내내 영업종료였다.


왜 이렇게 전쟁을 했냐고?



이렇게라도 감정을 배설하며 싸우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 같아서



그렇게 피폐하게 살아가다 우연히 거울 속에 비친 나의 얼굴을 보았다. 깜짝 놀랐다. 'OMG, 웃음 많고 밝게 빛나던 사랑스러운 얼굴 어디 간 거지?' 나의 리즈시절 시그니처였던 웃음과 미소는 온 데 간데없고 해 질 녘 땅거미처럼 어두운 그림자가 눈밑으로 길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배설스러운 부정적 감정들은 남을 향하는 듯 하지만 반대급부로 나 역시 부정적인 사람으로 변해간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뉴턴의 제3법칙인 작용 반작용 법칙과 일맥상통한다고 할까.


그렇지. 전쟁터의 군인 표정이 밝을 수는 없지. 매일 옆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며 살고 있는데 마음이 긍정적일 수가 없지. 그렇지. 마음속에서 전쟁 중인 사람의 표정이 밝을 수 없지. 매일 누군가를 마음으로 죽이고. 타인을 향해 부정적인 감정을 쏘고 있는 동안에는 마음이 평화로울 수가 없지.


생각할수록 이것은 진리다.


주먹으로 벽을 때리면 내 손도 아프다. 벽이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세게 때릴수록 벽도 나를 세게 때린다. 마찬가지로 타인에게 부정적인 감정과 유감을 세게 쏘아델수록 반작용으로 나도 맞게 되어 있다. 총알이 타인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에 있는 화약이 폭발해야 한다. 시꺼멓게 그을려진 몸은 탄피가 되어 바닥으로 내버려져 진다. 외부로 공격을 가하는 사물은 자신의 몸도 상하게 되는 원리다. 같은 맥락으로 타인에게 부정적인 감정의 총알을 쏘는 사람의 몸과 마음도 까맣게 타버린다는 것.


'행복하게 살려고 태어난 내가 왜 이렇게 된 거지?'

'계속 이런 마음으로 살다가는 불행해지겠는데?'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는데, 뭔가 해야겠어.'

'부정적인 감정도 습관이야. 더 이상 이런 감정에 매몰되지 말아야겠어'라는 생각이 커져 갔다.


왜? 계속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내 손으로 부정적인 감정의 힘을 키워서 내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꼴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깨달음을 얻는 나는 부정늪에서 벗어나는 첫 번째 스텝으로 내 생각과 감정의 주인이 되어야 했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이 타깃이다. 마음의 그릇에 부정적인 감정 대신 긍정적인 감정으로 채워나가야 했다. 방법을 물색했다. 내 상황에 최적화된 감정 스위치 전략은 이거다.



연민의 감정 끼워넣기



그래. 잘 생각해 보면 나를 괴롭히는 슈퍼 울트라 싸이코도 불쌍한 사람이다. 가장 괴로운 사람은 그 사람일 수도 있어.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있을 거야. 보나 마나 나를 괴롭히는 것처럼 자신도 똑같이 괴롭히고 있을 것이니까. 사람은 남을 대하듯 자신을 대하는 법인데, 저렇게 남에게 인색하고 엄격하고 비난하고 괴롭히고 공격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자신에게도 똑같이 하고 있을 것이 아닌가. 저렇게 매사에 분노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감정으로 스스로를 옥죄고 있을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했더니 두 가지 현상을 체험했다.

1) 부정적 감정 약화
2) 건설적 피드백 가능



부정적 감정 약화

나도 인간이기에 싫어하고, 미워하고, 증오하는 사람을 갑자기 좋아할 수 없었다. 칭찬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불쌍이 여길 수는 있었다. 그리고 이 연민의 감정은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상당히 누그러뜨리는 것을 경험했다. 평생 저렇게 살면 본인만 힘들 텐데. 정말 안타깝다. '얼마나 힘들까 저 사람', '얼마나 괴롭겠어' 이런 생각들을 하기 시작하면 미움, 증오, 혐오 등 내 안에 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점점 수그러든다.



건설적 피드백 가능

멘탈이 긍정으로 전환되고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면서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부정적일 때 감정이 앞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도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그래도 이 사람이 잘하는 건 있어. 이런 거는 솔직히 나보다 잘해'

'그래, 이 부분이 장점이긴 해. 이 부분만큼은 좀 배워둬도 좋을 것 같아'

'이 문제를 통해서 내가 배울 수 있는 게 뭐지, 솔직히 나고 고칠 점이 있긴 하지'

'이 사람을 통해 내 삶의 교훈으로 삼을 게 뭐지, 앞으로 더 잘되기 위한 경험으로 만들게 있나'

'그래, 지금 문제와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해 가다 보면 분명 이득이 있을 거야.'

'음, 이런 면은 나에게 좋을 수도 있겠네.'



분명 효과가 있었다. 싸이코에게도 연민을 느꼈더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아, 싸이코에게 연민을 느끼면 행복해질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겼다. 주변에 싸이코가 많아질수록 '연민'의 도구를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싸이코를 위한 게 아닌, 나를 위해서.


어쩌면 미운 놈에게 연민의 감정을 보내는 것은,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행동일 수도 있다. 미운 놈에게 꽃을 선물하는 행동일 수도 있다. 하지만 꽃을 선물한 사람의 손에는 꽃 향기가 남는 법.


그래서 내 남은 삶에서 만날 예정인 슈퍼 울트라 싸이코들에게도 같이 흥분할게 아니라

연민의 꽃을 주련다.


온 힘을 다해 타인에게 분노와 비난을 쏘아대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증오하고 혐오할게 아니라

또 한 번 연민의 꽃을 주련다.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 인간에서 그 사람으로 치환시키는데 100% 성공하게 되면

내 마음속에 '애증'의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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