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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변화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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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문덕 Aug 02. 2021

간절히 변화하고 싶은 사람 보세요

진짜 의지를 가질 때 변화가 시작된다

1시간을 위로하고 2시간을 공감해도 변화하지 않더라



   지점장을 하면 다양한 사람들을 상담할 기회가 있다. 남편 사업이 어려워져 갑자기 경제적 가장이 된 아내,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엄마, 친한 친구에게 돈을 떼여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암 판정까지 받은 사람 등 저마다 슬프고 어려운 사연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이야기를 들어주면 들어줄수록 가슴이 아프고 함께 고통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한결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삶아가기 위해 '지금부터 변화해보자'는 것.


   상담에 임할 때는 이런 생각이었다. 진심으로 공감하고 위로하면 상대가 치유가 될 것이다. 스스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격려를 해주면 극복할 힘을 얻어 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 생각과 다르게 반응하였다. "지점장님은 그런 입장이 아니어서 몰라요. 어떤 말씀 인지는 알겠지만 제 남편은 그런 것을 도와줄 사람이 절대 아니에요", "그러기에는 가진 것도 없고 저희 가정은 그런 환경이 아니에요. 저는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그렇게 교육받아서 어쩔 수 없어요" 등등 무언가를 '탓' 하거나 자신의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합리화 또는 옹호하는데 집중하는 것이었다. 변화를 위한 '의지'가 없어 보였다. 마치 지금의 '상황'을 기꺼이 참고 견뎌 보겠다는 사람처럼.



간절히 변화하고 싶은 사람 들어 보세요



   상담에 임하는 생각을 바꿨다. 나의 공감 위로 격려는 변화의 관점에서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을 수차례 경험했다. 오히려 자신의 상황을 옹호하게 만드는 촉매제가 될 뿐이다. 새롭게 고쳐먹은 상담 목표는 상대방이 '의지'가 생길 수 있도록 '트리거'가 되는 것. 스스로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믿고 변화를 위한 행동을 당장 시작하도록 하는 것. 이어서 질문도 바꿨다. 의도적으로 두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진지하게 물었다. "진실로 변화할 의지가 있으세요?" 그리고 진중하게 답변을 요구하였다.


   "저에게 지금 고통스럽다고 말씀은 하시지만, 그럭저럭 참을 만하신 것 같아 보여요. 어떻게든 바꾸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거든요. 저에게 외부의 것을 탓하시는 목적이 무엇인가요? 공감을 바라시는 건가요? 위로를 원하시나요? 기분 나쁘게 해 드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의지'처럼' 보이는 허약한 의지 말고! 어떤 장애물도 헤쳐나갈 준비가 된 그런 의지! 변화를 위해서라면 포기할 건 포기하고 내려놓을 의지! 두려워도 어려워도 힘들어도 하기 싫어도 해내겠다는 의지! 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쓰라린 따귀 같은 말을 하는 이유



   버럭 하며 역으로 화내는 사람, 갑자기 눈물을 터뜨리는 사람, 얼굴이 빨개지면서 고개만 숙이고 있는 사람 등 반응은 다양하였다. 이렇게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드는 상담을 한 이유는 하나다. 변화가 필요한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 공감 격려는 피상적 해결책이고 임시방편뿐이라는 것을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반창고 같은 응급처치는 문제의 근본은 해결되지 않은 채 상황이 더욱 악화될 뿐이었다. 변화에 있어서 근본적인 처방전은 기본적인 동기인 '의지'와 '태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상대방이 아플 것을 알면서도 쓰라린 따귀 같은 말들이  한 이유이다. 내 마음이 전달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놀랍게도 '변화'에 성공한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 편지, 선물을 받는 경우도 많았다. 상담의 순간은 아팠지만 변화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피드백이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따귀 같은 상담을 하지는 않는다. 간절히 변화를 원하는 사람에게만 그렇게 한다.


   상담할 때마다 제안한 내용이 있다. 지금 당장 변화 '의지'를 만드는 2가지 방법. 첫째는 탓하기 대신 단언하는 습관이다. 이것에 큰 힘이 있다. 탓하기는 내 핏속에 있는 의지를 빨아먹는 흡혈귀다. '의지는 있지만 ~ 때문에....'라는 탓하기 놀이는 스스로를 외부 환경의 희생양으로 코스프레하는 꼴이 된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고, 어렸을 때부터 큰 질병을 앓는 등 누가 봐도 어려운 상황에서도 '탓하기' 대신 '의지'를 발휘할 수 있다. 혈관 속에 의지가 흐르고 있다고 상상해야 한다. 의지로 환경을 바꾸든지 환경에 끌려다니든지  둘 중 하나다. "운명은 의지를 가진 자는 앞에서 인도하고, 주저하는 자는 질질 끌고 간다"라는 철학자 세네카의 말처럼


   둘째는 의지가 없는 것 찾기. 지금의 지긋지긋한 상황으로 계속 살아갈 의지가 있나? '없다!' 좋아지지 않을 관계를 계속 이어갈 의지가 있는가? '없다!' 이런 것들이 나에게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더 이상 이대로 살 수는 없다. 다시는 이 일을 하지 않겠다. 구역질이 나고 머리카락이 바짝 서는 느낌이 날 정도로 하기 싫은 것. 나는 의지가 '없다'라고 선언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 그러면 강력한 동기를 얻고 변화를 위한 행동이 마법처럼 일어나 춤을 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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