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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GARDEN Dec 28. 2023

패왕별희(1993)

씨앗 모으기 (Collecting)










Short Review

2023. 12. 25


INFO.

TITLE 패왕별희

DIRECTOR 천카이거

RELEASE 1993




과잉으로 흘러넘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 우희가 아니고서는 살 수 없었던 두지의 삶 앞에서 나의 마음은 지치지도 않고 수백 번을 스러진다.




희미한 자아일랑 겨워 겨워 지우고, 예술과 사랑에 얕은 숨을 기대어 사는 이들에게서 나의 모습을 분리해 생각하기란 이번 생에는 불가능하다. 만약 다음 생이라는 게 있다면 그때도 예술과 사랑에 나를 건네주고 살리라, 고백할 만큼 어떤 결속들은 지독하다.


그러니까 두지의 생은 우희와 결탁하지 않고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청데이의 삶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러니 청데이가 사라진 후에야 시투가 두지의 이름을 부른 건 당연한 일이다.



짐작할 수조차 없을 만큼 가혹한 시대였다지만, 마음의 가난함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인간 군상이란 역사의 반복과 궤를 같이하는 모양이다. 두지의 모습을 내게서 찾듯 패왕의 모습도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우희에게는 패왕이 있었고, 두지에게는 시투가 있었는데, 패왕에게는 누가 있었는가. 왜 패왕의 곁에는 하나의 사랑조차 남지 않았는가? 사랑은 받는 사람의 소유가 아니라 하는 사람의 소유라는 것을 시투는 몰랐다.




주샨에게도 시투가 있었다. 그러나 시투에게는 도대체 누가 있었나. 주샨이 두지의 아픔을 존중하고 그러안을 때 시투는 어디를 보며 살고 있었나. 그는 왜 더 빨리 두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나. 




살아남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생존을 목적하여 누구 하나 무엇 하나 마음에 두지 못하는 삶은 그 존재 자체로 견딜 수 없이 비참하지 않은가.





내가 시투를 측은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사랑을 저버렸으므로 그의 생은 비천에 처했다. 사랑을 포기한 사람은 제아무리 육신이 살아있더라도 영혼이 죽었으므로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이 영화는 꼭 사랑하는 사람과 보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뼈까지 스미는 찬바람을 견디기 어렵다. 형체 없는 사랑이 나의 몸을 빌려 두지와 장국영의 생에 입 맞추는 꿈을 꾸는 밤이다.










Fin.


* 인스타(@12_8ummer)에서는 자질구레한 일상과 인용구, 그리고 주접을 볼 수 있습니다.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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