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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GARDEN Jan 31. 2024

[전시 후기] 폼페이 유물전

씨앗 모으기 (Collecting)





관람일: 2024. 01.22(월)

전시: 폼페이 유물전

장소: 더 현대 서울



네이버 예약 :: 폼페이유물전-그대, 그곳에 있었다 (naver.com)



인스타에 얼리버드 광고 뜬 걸 보자마자 낚아챘다.

폼페이라니, 못 참지 못 참아.


그리고 더 현대 서울에서 하는 전시는 아무래도 규모가 작고, 관람객 매너가 형편없을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얼리버드가 아니면 티켓값을 다 못하는 느낌이다.

특히 주말 관람은... 추천할 수 없음... :(


발견, 결정, 구매, 전달까지 5분도 안 걸렸다 :)







좁은 공간에 대규모 도슨트 인원을 만나서

관람 초반부 사진은 전멸...




2m가 넘는 아프로디테 조각상.

반짝거리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인간을 닮았지만,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로 여겼다는 게 미학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여신들도 남성의 골격을 닮았다는 점에서 당시 여성의 지위가 어떠했는지 추측해 볼 만하다.


당대 사회에 대한 이야기는 쏙 빼놓고, 완전한 미美를 향한 당시 폼페이 사람들의 열정과 사랑, 이런 식으로만 스토리텔링을 해서 상당히 아쉬웠다. 하기야, 전 연령 관람 전시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의 가부장적 특성이나 동성애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는 않겠다만.








가니메데와 독수리.

가니메데는 트로이의 왕자로 인간이지만, 그 미모에 반한 제우스에 의해 납치되었다. 가니메데 옆에 있는 독수리가 제우스를 상징한다. 호메로스는 가니메데를 모든 인간들 중 가장 아름다운 미인으로 묘사했다고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아름다운 인간이 신에게 간택당하거나 시기 받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가니메데는 올림포스에서 술 따르는 일을 했는데,

불로불사의 몸을 얻어 신에 가까운 자가 된 경우다. 

그가 미소년이었던 게 이런 엔딩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고대 그리스 사회는 동성애가 일반적이었다. 

여성은 이성이 발달하지 못한 하등한 존재로 취급되었기 때문에(당시 여성은 자유인이었지만 그 지위는 노예와 엇비슷했다) 남성이 여성을 사랑하는 건 권장할 일은 못되었다. 

아름답고 어린 남성, 다시 말해 미소년의 가치가 매우 높았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글에서도 그들을 향한 찬미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때는 사랑도 참 종류가 많았다. 

에로스, 필리아, 스토르게, 아가페, 플라토닉 등등








프레스코화 한가득.

봐도 봐도 신기하다.

모래를 섞은 석회가 마르기 전에 채색해서 굳히는 방식이라니...

한 번 손 대면 수정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대신 보존은 무척 잘 된다고.

그 당시 작업한 색은 지금 우리가 보는 것보다 훨씬 선명했다고 한다.

프레스코화에서 보이는 회색빛은 세월의 흔적이다.








신화에서 빠질 수 없는 반신반수 이야기.

그러고 보니 도입부터 디오니소스와 사티로스가 정말 많았는데, 어째서인지 사진은 하나도 없네...?

마이나데스라고 하는 여신들도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도취 상태로 산과 들판을 헤매고 다니면서 춤추고 노래하며 디오니소스를 찬양했다고 한다.

신이든 반신이든 괴물이든, 모두가 욕망에 충실하다.










정말 옷 주름 하나하나가 말도 안 되는 디테일로 만들어졌다.


전시 초중반에 물에서 막 올라온 아프로디테 조각상도 있는데, 옷이 물에 젖은 채 몸에 들러붙어 미묘하게 드러나는 실루엣과 손으로 중요 부위는 가렸으나 장골은 선명하게 드러나는 디테일 등을 보다 보면 이 사람들 정말 집요하구나 싶다. 물론 그걸 보고 있는 나 역시 매한가지다만(❁´◡`❁)


그러니까 나체 조각상을 볼 땐 전면은 물론 후면까지 꼼꼼하게 봐야 한다. 등,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에서 보이는 근육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 정말 정성 들여 조각해뒀다... 경이로워...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에 위치한 캐스트일 텐데,

나는 별로였다.

한 사람이 생生과 강제적으로 이별하는 순간을 굳이 재현한 걸 와글와글 모여서 구경하고 싶진 않았다.

최근에 박제한 사슴을 화려한 장식으로 뒤덮은 작품을 봤는데, 그때와 유사한 구토감이 일었다. 보기 어려웠음.



암튼.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본 영화 ⟨볼케이노⟩를 굉장히 좋아하기도 했고, 화산이 폭발한 후 폼페이가 얼마나 빠르게 그 영향권에 들어왔는지 재현한 다큐를 봤던 기억도 있다.

그때의 압도당하던 감각을 잊지 못한다.

화산이 폭발하는 순간을 직접 보기 위해 허덕이는 사람들, 평생 번개를 쫓아다니는 사람들에게 나는 묘한 공감대를 가진다.


그리고 신화 이야기를 무척 좋아하기도 하고,

최근에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이라는 책으로 음독 모임을 하고 있어서 이 전시를 가면 책 과몰입에 더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ㅋㅋㅋㅋㅋ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을 다 읽고 나면

⟪우리 속에 있는 남신들⟫도 읽을 예정이라고 한다.

그때 이 전시에서 봤던 조각상들이 떠오르겠지 :)






덧. 전시를 보다가

1년 전쯤 슬쩍 읽었던 책 내용이 생각나서 오늘 찾아봤다.


하지만 그리스 문학의 태동기, 즉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시대에 '신화'는 허구적이거나 초자연적인 사건들로 가득한 '담론' 혹은 '이야기'가 아니라 '의심할 여지 없이 권위 있는' 이야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예를 들어 사냥꾼 독수리가 먹잇감으로 붙잡힌 참새에게 '강압적으로' 하는 말이 바로 신화였다(헤시오도스, 『일과 날』, 206). 동일한 차원에서 호메로스의 전사들이 전쟁터에서 울부짖으며 외치는 이야기가 신화였고 싸움을 포기하라는 제우스의 명령을 당당하게 거부하는 포세이돈의 강렬하고 단호한 답변이 곧 신화였다(호메로스, 『일리아스』, XV, 202).  똑같은 차원에서 민회에 참석한 시민들을 향해 호소하는 권위 있는 영웅의 일장 연설이 신화였고 (중략) 신화의 이러한 강렬한 측면은 '신화'적 담론을 입에 올리는 여자들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로도 충분히 부각된다. 말에 권위가 있을 수 없는 여자들, 심지어는 젊은 남자들이 이야기하는 '신화'적 담론도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신화란 결국 권위 있는 인물들의 발언으로 전달되는 권위 있는 담론이었다고 볼 수 있다.

플라톤이 등장하고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가 나타난 후에야 신화라는 용어는 비로소 환상적인 이야기를 가리키는 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_ 출처: ⟪경이로운 철학 1⟫, 움베르토 에코


한때 신화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정치와 권력을 위한 수단이었다. 물론 폼페이에서 다루던 신화는 이야기로서 역할을 더 많이 하던 시기였겠지만.


지금 읽고 있는 책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가부장적 세계관에서 여신들이 어떻게 적응했고, 자신들의 특성을 발현해 나갔는지를 융 심리학과 결부해서 살피는 책이다. 그리고 오늘날 가부장 사회에 있는 여성들이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여신들을 통해 자신을 재발견하고, 더 나아가 해방, 변화, 발전하기를 촉구하는 책이다. 신화 속 여신들과 달리 오늘날 여성들은 주어진 역할을 벗어날 수 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신화는 중요한 담론의 지위를 오늘날 다시 한번 되찾은 셈이다. 다름 아닌 여성을 통해서 말이다. 흥미롭고 재밌는 일이다.


음독 모임의 좋은 점은 내가 문장 수집을 못해도, 내용 정리를 못해도, 독서 노트를 못 써도, 매주 2시간씩 그 책에 시간을 들여서 결국 읽어나간다는 점이다. 나 같은 게으른 완벽주의자에게 꼭 필요한 장치다.

지금까지 아르테미스와 아테나, 헤스티아를 읽었다.

다음 주에는 헤라를 읽는다.

얼른 아프로디테까지 읽어내고 싶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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