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exander Calder. 19년 12월.
K현대미술관. 칼더 온 페이퍼 Calder on Paper. 알렉산더 칼더 Alexander Calder. 19년 12월.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bincent_kim/ 2020. 1. 4. 19:23 작성.
오랜만이다.
핑계라고 하기엔 정말 회사생활이 바빴다.
19년 하반기부터 연말연시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보고와 새로운 업무까지 쉴 틈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보니 전시를 다녀와서 글을 쓰는 것은 차치하고 전시를 가는 것 조차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간 8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아시아프,
9월 국제갤러리에서 양혜규 작가의 『서기 2000년이 오면』,
10월 파리 마레 지구의 크고 작은 갤러리들,
한국에도 지점이 있는 갤러리 페로탕과 까레다티스,
타셴 서점,
이번에도 전시 기간을 놓친 팔레 드 도쿄,
재작년에 이어 다시 방문하게 되어 감회가 더 새로웠던 오르세, 피카소 미술관과 퐁피두, 거기서의 프랜시스 베이컨,
유명세에 비해 볼 게 많이 없었던 아뜰리에 뤼미에르,
깐느의 마티스와 샤갈 박물관,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와서 11월 롯데뮤지엄의 스누피展까지...
늘어놓으면 좀 간 것 같지만 한 달에 한 군데를 갔을까 말까 할만큼 정말 간간히 그림을 접했다.
이대로 2019년을 마무리할 수 없다는 대화와 생각 끝에 한 해의 막바지에 찾은 K현대미술관.
몇 년 전 담당 브랜드의 행사로, 초청으로 두 번 찾은 적이 있는데 전시로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관도 자주 하는 곳이라 층고가 시원시원해서 좋지만 오롯이 작품을 위해 꾸며진 공간이 아니라 그런지 의도적인 것인지 잘 짜여진 느낌이 조금 덜하기도 하다.
전시장 초입의 기획 의도를 보면 크게 어렵지 않은 말로 체험형 예술 트렌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조금 두서가 없는 듯 했다. 어쨌든 요약하면 전 세계를 순회 중인 전시로 유명한 모빌 작품들 보다는 그 작품들의 뿌리가 되는 회화 작품이 많고 저작권 문제로 촬영은 제한되지만 관객친화적으로 구성했다는 것이다.
여러 미술 장르 중 회화를 제일 좋아하는 나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메인으로 들어서는 입구의 4개 벽면은 아주 실망스러웠다. 칼더 작품 어디서도 찾기 힘든 촌스러운 분홍색으로 도배를 한 벽면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볼드체 그라이데이션에 미술관 이름은 왜 저렇게 많이 써놓았는지, 거기다 더 촌스러운 해괴한 초록색, 진한 분홍색, 보라색, 희미한 노란색까지... 벽면 가운데 대문짝만하게 써놓은 '칼더'라는 글씨는 아름다운 한글과 Calder 본인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보는 사람이 부끄러워진다.
형형색색 띠지에 쓰인 글씨는 각각 BBC ARTS, 테이트,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평한 칼더에 대한 내용인데 많은 문단이 쓰여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세 문단이 전부이고 나머지는 반복이다. 그마저 구겐하임은 기겐하임으로 되어 있고 간간히 오타도 보이는 것이 디테일에서 많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하얀 벽면과 멋진 글씨체, 공간을 활용하여 깊이가 느껴지는 노란 벽면 가운데에 걸린 칼더의 작품까지 이렇게 아름다운 조화로 입체적인 구성을 한 훌륭한 입구도 있는데 저렇게 충격적인 곳이 전시의 시작이라는 점이 안타까웠다. 그래도 바로 뒤에 이어지는 칼더의 연대기와 까만 벽면에 걸린 스케치들, 그리고 익살스러운 서커스 테마의 공간 등 전반적인 전시 구성은 괜찮았다.
칼더는 1926년 파리에 이주하여 작업하는 동안 미니어쳐 서커스 공연을 했는데 철사나 천 등의 재료를 이용하여 그네나 구조물을 만들어 후에는 여러 나라를 돌며 공연하게 되었다고 한다.
좀 신기했던 것은 지금 보면 참 유치하고 조악한데 그 시대에 그만큼 놀거리나 즐길거리가 없어서인지 일반인들도 아니고 장 콕토, 르 코르뷔지에, 피에트 몬드리안, 후안 미로, 페르낭 레제 등 지금도 각 장르의 대가나 아버지라 불리는 훌륭한 예술가들도 재미있게 즐겼다는 것이다.
단순한 유희 이상으로 정적이던 미술을 동적으로 승화한 것에 대한 가치를 부여해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칼더의 서커스 작업이 그 당시 그만큼 유머러스하고 신선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던 것 같다.
다음으로 가면 서커스에 빠져있었던 만큼 역동성과 익살스러움이 느껴지는 그림들이 있다. 오디오가이드가 있긴 하지만 각각의 공간마다 어떤 컨셉으로 구성된 작품들이 있는 것인지 설명이 좀 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Untitled (Costume Design for Metaboles Ballet VII / II), Gouache and Ink on Paper, 30.2 x 38.7xm, 1969
아, 그리고 유리에 자꾸 비치는 모습들도 감상을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뒤에 나오는 큰 작품들은 그런 현상이 거의 없어 유리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는데 대부분의 그림들은 심하게 빛이 반사되었다.
중간에 '피에트 몬드리안과의 조우'라는 공간이 있는데 칼더가 몬드리안의 작품에 영감을 받았고 그것이 모빌 작품을 시작하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내용의 설명이 있다. 칼더의 작품은 아니지만 방을 몬드리안의 그림과 비슷한 느낌으로 꾸민 것 좋았다. 체험형 공간의 느낌이 들었는데 의자같이 생긴 직육면체에는 죽어라 앉지 말라고 써져있었다. 작품이면 이해를 하겠는데 굳이 색 조합만 베껴서 칠해놓은 건데 좀 깐깐한게 아닌가 싶었다.
칼더는 몬드리안의 원색 사각형과 굵은 직선들을 보고 저것들이 움직인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 제안을 몬드리안에게 했을 때 몬드리안은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내 그림들은 이미 아주 빠르거든."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미 수직선과 수평선, 각각의 색들의 조화로 완벽한 균형을 이루어 놓은 작품이라 생각해서인지 자기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의 변화가 시도되는 걸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칼더는 결국 모빌을 만들기 시작하지만...
몇 점의 원색적이고 강렬한 회화 작품들은 거치면 '유기성에 대한 관심 : 초현실주의와 호안 미로'라는 곳이 나오는데 이번 전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다. 마치 전시 공간 자체가 백남준의 미디어 아트를 연상시키는 하나의 작품이 된 것 같았다. 거기다 마치 지금 건물 밖에서 줏어온 듯한 나뭇가지와 나무들은 조악한 느낌 보다는 몽환적이고 신비하게 TV와 잘 녹아들어 오히려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 주황색 배경도 그런 분위기를 더하며 이번 전시에서 유일하게 벽지가 그 역할을 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 클립 또한 초현실주의의 대가들이라고 할 수 있는 루이스 부뉴엘,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만 레이 등의 유명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어 칼더가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다만, 각각의 TV에 영상 제목이 써있었다면 좀 더 관심을 갖고 재미있게 볼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든다.
그 뒤로도 흥미롭고 눈에 띄는 그림들이 많이 이어진다. 칼더는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데 상상을 해야 현실적이 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매력이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현실을 더욱 풍요롭게 살아가기 위해 꿈을 가져야하는 것과 뜻을 같이 하는 것 같다.
이전 '유기성의 대한 관심' 섹션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면 전시 막바지에 있는 체험형 공간은 가장 재미있는 곳이었다. 여러가지 모빌이 달려있고 책상에는 이런 저런 물건들이 흩어져 있는데 자유롭게 만져보고 붙여볼 수 있었다. 이번 전시가 조각보다는 회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만큼 요즘 여러 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것처럼 직접 칼터의 느낌으로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도구들이 있고 그린 것을 붙여 놓을 수 있도록 해도 더 좋을 것 같다.
글에서도 느껴지겠지만 이번 전시에 만족도가 아주 높지는 않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접하는 미술관, 오랜만의 그림, 그리고 그렇게 난해하지 않고 순수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뿌듯하다.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좀 간결하고 부담없이 쓰려고 했는데 그래도 만만하진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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