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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cent Dec 15. 2020

한가람 미술관. 유에민쥔. 20년 12월.

한 시대를 웃다. 유에민쥔(岳敏君).

예술의 전당 - 한가람 미술관. 한 시대를 웃다! 유에민쥔(岳敏君) : A-Maze-Ing Laughter of Our Times!. 유에민쥔(岳敏君). 20년 12월.



네이버 블로그에서 브런치로 옮기고 난 후 첫 리뷰.



한가람 미술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처음 보이는 위에민준의 환한 웃음


바스키아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한가람 미술관을 찾았다. 


위에민준(1962~)의 작품을 언제 처음 보았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현대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부터 팡리쥔(1963~), 쩡판쯔(1964~), 장샤오강(1958~)과 함께 중국 사대 현대미술가라는 이야기를 익히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 글에서는 '유에민쥔'보다는 나에게 익숙한 '위에민준'으로 적기로 한다.




(좌상) Yue Minjun, Era of Hero No. 1, Oil on Canvas, 170.2 x 139.7 cm, 2005, © CHRISTIE'S 2020

(우상) Zeng Fanzhi, Fly, Oil on Canvas, 200 x 179.4 cm, 2000, © CHRISTIE'S 2020

(좌하) Fang Lijun, Series 2-Number 2, Oil on Canvas, 200x200 cm. 1992. Image courtesy of Springs Center of Art. 

(우하) Zhang Xiaogang, BIG FAMILY NO. 16 (FROM THE BLOODLINE SERIES), Oil on Canvas, 200 x 250 cm, 1998, © 2020 Sotheby's



네 작가 모두 비슷한 소재와 맥락 속에 표현 방식만 조금씩 다른 느낌이다. 모두 1960, 70년대 문화대혁명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했으며 중국이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을 겪었다. 때문에 작가들의 작품 모두 어딘가 어색하거나 기괴하거나 불편한 느낌이 든다. 이런 느낌은 당시 중국인들이 겪은 상실감, 허탈함, 무기력함 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팡리쥔의 경우, 멍청해 보이는 대머리 캐릭터를, 쩡판쯔는 무섭고 섬뜩한 느낌의 가면을, 장샤오강은 무채색의 배경에 무표정한 얼굴을 활용해 이를 표현한다. 이번에 국내에서 처음 대규모 개인전을 갖는 위에민준은 실없이 웃고 있는, 이가 너무 많아 징그러워 보이는 캐릭터를 사용한다. 징그러워 보이긴 하지만 딱히 무섭지는 않은, 한편으로는 정감이 가기까지 하는 그런 느낌이다.


말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꼭 중국 현대미술 사대천왕 같은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내 생각엔 사대라고 규정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고 아이 웨이웨이, 왕광이, 루오 브라더스, 펑정지에, 쉬빙 등 특색 있고 매력적인 작가들이 훨씬 더 있다. 전시 설명에서도 쩡판쯔 대신 왕광이로 그 넷을 소개한다.



(좌상) Ai Weiwei, Sunflower Seeds (Kui Hua Zi), Porcelain, Overall display dimensions variable, 2010. © Ai Weiwei

(우상) Wang Guangyi, Great Criticism Series – Pepsi, Acrylic on Canvas, 150 x 120 cm, 2005. © CHRISTIE'S 2020

(좌하) Luo Brothers, Welcome to the world's most famous brands lacquer, Enamel and Printed Paper on Panel, 64.7 x 55.3 cm, 1997.  © CHRISTIE'S 2020

(우하) Feng Zhengjie, Kitsch Mao in Red, Oil on Canvas, 149.4 x 149.5 cm, 2001. © CHRISTIE'S 2020



어쨌든 오늘은 한가람 미술관의 위에민준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곳의 전시에 실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우리나라에서 작품에 대한 전문적 시각과 대중성, 두 가지 사이의 적절한 조화를 가장 잘 이루는 미술관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도 약 100여 점으로 이루어진만큼 규모가 꽤 있는 데다가 '웃는 얼굴'이라는 일관된 주제의 그림이기 때문에 다소 루즈해질 수 있음에도 다섯 개의 섹션으로 분류가 잘 되어 있고 간결한 템포로 구성을 끊어 가며 작품이 시원시원하게 배치되어 있어 약 2시간을 보는 동안 지겨운 줄 몰랐다. 덕분에 오랜만에 같이 나오신 어머니 또한 위에민준을 처음 접하셨음에도 큰 어려움 없이 함께 감동을 느끼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1. 세상에서 가장 슬픈 웃음

     - The Saddest Laugh in the World



전시장을 처음 들어서면 위에민준의 사진과 함께 일대기가 펼쳐져있다. 어린 시절부터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작업하고 있는 모습과 함께 어떤 일생을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그 뒤로 넘어가면 '사막'이라는 작품과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처형'이라는 작품이 우리를 맞는데 두 그림 모두 '냉소적 사실주의'로 정의되며 정치 이념의 희생양으로 전락한 사람들의 무기력함을 나타내는 위에민준의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다.


Desert, 150 x 130 cm / The Execution, Oil on Canvas, 150 x 300 cm, 1995


처형은 실제 회화가 아닌 화면으로 전시된 점이 조금 아쉽다. 그렇지만 이 그림의 모티브가 된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을 그에 대한 설명과 같이 배치해놓은 것은 아주 적절하다고 느꼈다. 보통 공간의 부족함때문인지 이렇게 패러디 작품의 원작을 일부러 찾아보거나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방식은 그림을 의도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 있어 굉장히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2. 한 시대를 웃다

     - A-Maze-ing Laughter of Our Times



이 섹션에서는 특히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이동하는 과도기적 상황, 그에 따른 마찰과 불안함, 마냥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으로만은 볼 수는 없는 인간의 이기적 본성에 대한 고찰을 중심으로 한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영어로 된 섹션 제목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데 단순히 '놀라운' 웃음이 아니라 '미로'라는 단어를 발라내어 표기한 것이다. 이런 표현 자체가 그 웃음의 복잡하고 미묘한 의미를 잘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런 수수께끼 같은 상황들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Memory 2, 140 x 108 cm, 2000 / Bystander, Oil on Canvas, 230 x 200 cm, 2011


왼쪽의 그림 같은 경우, "머리가 잘린 웃는 얼굴은 ...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해하는 현시대의 우리 모습을," "날아가는 빨간 풍선은 ... 이상과 꿈을 꾸던 어린 시절 우리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꿈 많던 어린 시절의 우리처럼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다"고 작가는 전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나에게는 결국, 이상과 꿈은 하늘로 올라가 터져서 사라져버리는 풍선처럼 허황된 것이라는 메시지가 더 강하게 다가온다. 어린 시절 꿈꾸던 인생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만족하는 이상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아름다운 공산주의는 왜 붕괴했을까.


꿈과 이상은 삶의 원동력이 되고 그것을 이루지 못한 차선의 인생이라도 그 안에서 얼마든지 다른 행복들을 찾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는 그런 희망을 찾아볼 수가 없다. 게다가 풍선이 날아간 자리에는 텅빈 공간만이 있을 뿐이다.


I am Dragon 3, 220 x 300 cm / AD 3009, Oil on Canvas, 220 x 300 cm, 2008



3. 死의 찬미 - 죽음을 기억하고, 삶을 사랑하라!

    - The Praise of Death - Memento Mori, Carpe Diem!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여기서는 작가가 웃음과 함께 자주 사용하는 해골을 차용한 작품들이 모여있다. 이 섹션은 전시 설명 자체의 글귀 하나하나가 참 마음에 와 닿는 표현이 많아 내가 어설프게 생각을 섞어 요약을 하는 것보다 전문을 써넣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사진을 못 찍은 것이 아쉽지만 오디오 가이드 내의 설명을 참고하였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이 양자는 모든 존재와 늘 함께합니다. 죽음을 의미하는 ‘사(死)’는 부서진 뼈를 사람이 받치고 있는 형상입니다. 인간은 머리에 죽음을 이고 사는 존재이며, 삶은 죽음을 전제로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덧없으니 삶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태어난 순간부터 보면 지금이 가장 늙었지만, 죽음으로부터 역산하면 오히려 이 순간이 가장 청춘입니다. 그러니 죽음을 기억하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금 이 순간’을 사세요!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저당 잡히지 마세요.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이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답고 소중합니다. 시대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세요. 사회의 규칙이나 도덕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주인 주체로서, 온갖 어려움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사세요. 억압하는 전통과 규율에 도전하는 자유의지로 현재의 삶을 후회 없이 살아나가세요. 남들에게 비치는 사회적 자아는 내려놓고 상처 받은 내면의 자아를 보듬으세요. 일 중독, 고민 중독에서 빠져나와 매 순간을 즐기고 완전하게 만드세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를 때, 죽음 같은 고통이 엄습해 올 때마다 호라티우스의 <송가>를 기억하고 유에민쥔의 해골을 들여다보세요. 당신의 열반의 순간을 온전히 즐기세요."


작품의 분류도 그렇고 이러한 설명도 그렇고 관객이 그림을 온전히 즐기고 그에 따라 감동을 받고 깨닫는 것이 있도록 신경을 참 많이 쓴 전시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Gaze, 200 x 240 cm, 2012 / Expression in Eyes, Oil on Canvas, 240 x 200 cm, 2013
Expression in Eyes, 2013 / Back From the Dead, Oil on Canvas, 240 x 200 cm, 2014


왼쪽의 경우 위에민준의 작품 중 유일하게 눈을 뜨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두 눈 모두 죽음을 암시하는 해골로 차 있어 눈동자를 볼 수는 없다. 미간을 볼 때 이 사람이 웃고 있는지 울고있는지 알 수 없다. 공막은 흰색이 아닌 뒤의 배경과 같은  하늘색이라 마치 인물의 머리 자체가 텅 비어있는 느낌을 준다.


Overlapping Series 7, 2, Oil on Canvas, 60 x 80 cm, 4 pcs, 2012


섹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중첩 시리즈'는 기존 작품들과 너무나도 달라 기억에 강하게 남는다. 그림 자체는 마지막 섹션에 배치되어있다.


기법을 연구하면서 작업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스타일은 다를 수밖에 없는데 기본 작업을 한 후에 캔버스를 겹쳐 비비는 방식으로 작업했다고 한다. "작가는 그림을 '피해자'로, 그림을 그리는 자신을 '가해자'로 생각"했으며 겹치는 작업이 일어나는 동안 그 그림들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된다."라고 한다. 이러한 기법은 앞서 언급했던 이념의 희생양이었던 대중이 또 다른 가해자가 되고 있는 현실을 어느 정도 마음에 두며 작업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또한 기괴한 모습이 보는 순간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들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 내면의 폭력성과 정서적 불안감을 표현한 베이컨의 작품들과 연관이 없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갖고 검색을 해본 순간, 위에민준이 프랜시스 베이컨의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의 연구>를 패러디한 작품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프란시스코 고야가 프랜시스 베이컨에게 영향을 준 화가들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은 위에민준의 <처형>이라는 작품이 나오게 된 것과도 연관이 없진 않을 것이다.


(좌) Yue Minjun, The Pope, Oil on Canvas, 198 x 186 cm, 1997. © 2020 Sotheby's

(우) Francis Bacon, Study after Velázquez's Portrait of Pope Innocent X, Oil on Canvas, 153 x 118 cm, 1953.




4. 조각 광대

     - Slapstick Comedy


다음으로 조각 작품이 나오는데 갑자기..? 라는 생각이 좀 들기도 했다. 야외에 배치되어 있거나 마지막이라면 좀 더 자연스러웠을 것 같긴 한데 아마 공간 상의 제약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계속 회화 작품만 보다가 리프레시도 되는 것 같고 평면 위주의 이미지를 보다가 입체적으로 접하니 더 흥미롭기도 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채플린의 말을 차용하여 영어 제목도 slapstick comedy로 지었다. 이는 위에민준의 조각 작품에도 적용된다는 이야기이다.


Human Beast, Bronze, 71 x 70 x 201 cm, 155kg, 12 pcs, 2016.


<Human Beast>라는 작품은 앞면은 사람의 얼굴, 뒷면은 짐승의 얼굴을 한 형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리 내면의 이중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사실 너무나 명백하고 오히려 진부한 소재라 설명이 더 필요 없을 수 있지만 그런 소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잘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5. 일소개춘(一笑皆春) - 한 번 크게 웃으니 온 세상이 봄이다!

     - One Burst of Laughter Blooms the World


위에민준은 평소에 자신의 작품이 노장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만물이 하나가 되고 삶과 죽음, 죽음과 삶이 이어지고 나와 세상이 일치하게 되는 그런 세상을 그렸다.


Mysterious Sky / It Exists from the Birth, Oil on Canvas, 250 x 200 cm, 2016


전시 설명에는 "영원 불사하며 구천을 떠도는 플라스틱 폐기물로 땅과 바다가 모두 오염되었고, 숨 쉴 때마다 공기 속에 전염병이 퍼지고 있다. '인류세'와 '자본세'가 초래한 이 시대의 위기는 바로 인간의 욕망이 자연의 순환을 막아서 발생한 것이다."라고 하는데 나는 이러한 설명과는 조금 다른 의견이다.


더 편하게 살고 싶고 더 좋은 것을 갖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그러한 습성 또한 자연의 일부이다. 조금 진지하게 말하자면 플라스틱이 분해되는 기간은 100년이며 영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무엇 때문에 발생했는지는 모르지만 사람과 사람의 접촉으로 퍼지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사람을 만나서 소통하고 일을 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라면 그 욕망이 죄가 될 수는 없다.


물론 우리들의 방만한 태도와 편리 위주의 생활 태도가 자연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위기는 인간의 욕망이 자연의 순환을 막아서 발생한 것이기보다는 인간 자체의 근원적 기질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위기는 생겼다 없어지고 번성 또한 생겼다 없어지는 역사 속의 일부일 뿐이다. 또한 인간의 기나긴 역사 또한 만물의 이치에서 볼 때 찰나의 순간일 뿐이다.


허무주의에 빠져 대충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너무 자조적인 태도로 '반성'하며 '뉘우치고' 바뀌기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인간 자체가 그렇게 생겨먹은 존재일 뿐이니까.



다시 전시로 돌아오면 중국의 미술 평론가 리시엔팅은 천안문 사태 이후 절망에 빠진 이러한 시기의 미술을 '냉소적 사실주의'와 '정치적 팝'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냉소적 사실주의'는 앞서 여러 작품들이 잘 이야기해주고 있고 '정치적 팝'은 왕광이의 작품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좌) Wang Guangyi, Great Criticism Series – Rolex, Oil on Canvas, 120 x 150 cm, 2005. © CHRISTIE'S 2020

(우) Wang Guangyi, Great Criticism Series – Chanel, Oil on Canvas, 200 x 200 cm, 2005. © CHRISTIE'S 2020



왕광이는 중앙선데이 2011년 10월 9일 자 인터뷰 중에서 "중국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볼 뿐, 나는 중국의 워홀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는데 그의 그림 속에서 유명 브랜드 로고, 평면화된 구조, 원색, 대중적 이미지 등 팝아트의 여러 가지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이 섹션에서는 노장사상을 근원으로 한 자연, 특히 하늘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과 '정치적 팝'으로 설명될 수 있는 여러 그림들이 있다. 작품 수가 조금 더 있었다면 두 개의 섹션으로 나눠서 전시를 해도 좋았을 것 같다.


The Three Mucketeers, 80 x 100 cm, 2019 / The Blue Ocean, Oil on Canvas, 250 x 200 cm, 2018


(좌) Yue Minjun, Collage 1, Oil on Canvas, 170 c 140 cm, 2019.

(우) Vincenzo Catena, Portrait of humanist Gian Giorgio Trissino, Oil on Canvas, 72.5 x 63.5 cm, 1525 - 1527.



(좌) Yue Minjun, Hibiscus, Oil on Canvas, 150 x 120 cm, 2020.

(중) Leonardo Da Vinci, Lady with an Ermine, Oil on Walnut Panel, 54 x 39 cm, 1489 - 1491.

(우) Mari Kim, The Lady with an Ermine, Oil Paint used on Ultra Chrome Ink printed Canvas, 130 x 99.5 cm, 2019.


가운데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이라는 작품이다. '순수'와 '온건'의 뜻을 갖고 있는 담비는 미술사학자들이 판단하기를 실제 크기보다 훨씬 크게 그려졌으며 이는 현실적인 의미보다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한다. 모델은 다빈치를 고용했던 밀라노의 공작 루드비코 스포르차의 정부()였던 세실리아 갈레라니인데 음악가이자 시인이었다. 비교적 수수한 의상에서 그가 그렇게 높은 지위의 사람은 아니었음을 알 수있다.


오른쪽은 같은 제목으로 원작을 오마주한 마리킴의 작품이다. 20년 5월, 가나아트센터에서 있었던 'MASTERPIECE - IMMORTAL BELOVED'라는 마리킴의 개인전에 걸렸던 그림이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 방식을 '훔친다'라고 표현했는데 특히 하이데거에 의한 예술 작품의 근원이 되는 예술, 예술가, 예술 작품 중 '예술'을 훔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훔친 것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예술 행위를 창조한 것이며 오히려 점점 사라져가는 회화를 되살렸다고 볼 수도 있겠다고 한다. 내 생각도 후자에 가깝다. 같은 그림이며 소재를 차용했지만 작가 본인만의 스타일로 재창조한 것이며 그를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여러 생각을 갖게 하며 미학적인 즐거움도 제공하므로 충분히 새로운 장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위에민준의 작품 역시 이 그림을 패러디한 것이다. 마리킴이 시그니쳐 캐릭터의 얼굴을 대입했다면 위에민준은 작가 특유의 얼굴 대신 '남모르게 간직해 온 사랑'이라는 꽃말을 갖고 있는 부상화를 그려넣었다. 이것이 주인공 세실리아의 심정을 대변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새빨간 꽃잎들 속에 수십 개의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고 있는 입을 굳이 표현한 것은 '사랑' 앞에 '무서운'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가야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섹션을 끝으로 Special Zone이라고 해서 도예가 최지만, 판화공방 P.K 스튜디오와 협업한 작업물들이 소개되는데 사실 자기(瓷器)류에 관심이 없어서인지 디자인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아서인지 큰 관심이 생기진 않았다.




2020년 현재에도 정치적 이념, 성별과 세대 간 갈등, 빈부격차 등 우리를 갈라놓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위에민준은 자신의 작품 안에는 "국경도, 피부색의 차이도, 문화 차별도 없"으며 "작품을 통해서 표현하는 최종적인 목표는 인간의 사랑"이라고 한다. 나는 사실 무조건 평화주의자나 아가페적인 사랑을 꿈꾸는 사람은 아니다. 많은 일에 옳고 그름이 있고 더 가치 있는 일과 덜 중요한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살아온 인생보다 더 길고 내가 생각해온 것들보다 더 깊게 인간의 고통과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한 위에민준의 작품 앞에서 숙연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번외1. 예전 아트바젤 관람으로 홍콩에 갔을 때 우리 돈 15,000원짜리 위에민준 그림이 생각 나 원작과 비교해본다. 원작 이미지를 찾을 수 없어 판화로 대신한다. 재미로 샀었는데 둘둘 말린 캔버스가 심심해서 집에와서 틀을 사서 일일이 짜는 작업을 했던 기억이 난다. 확실히 모든 디테일은 사라지고 조악한 면과 색만 남아있을 뿐이지만 이런 그림을 하루 100장씩 그려낸다는 얘기를 듣고 재밌기도 하고 그런 것 치고는 의외로 그 특유의 자조적 웃음이 보이는 듯하기도 해 신기하기도 하다.


Silly Bird, Lithograph, 74 x 57 cm, 2004. © CHRISTIE'S 2020 / Fake Silly Bird


번외2. 왜 이렇게 이를 많이 그려넣었을까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는데 결국 알 수 없었다. 수많은 중국 인민의 숫자를 표현한건가 싶기도 하고 그래야 더 기괴해보이고 어떻게 보면 볼품없어 보이나 싶기도 하고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서 그랬나 싶은 여러 가지 생각이 들다가 문득, 이가 정상이면 어떤 그림이 나올지 궁금해졌다. 해보니 그렇게 이상한 것 같지만은 않다. 조금 이상하게 그려서 그런지 오히려 정상적인 이가 더 멍청(?)해 보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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