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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cent Jan 05. 2021

MMCA. 시대를 보는 눈: 한국근현대미술. 2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소장품 상설전. 20년 12월.

MMCA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시대를 보는 눈: 한국근현대미술 - 소장품 상설전. 20년 12월.


섹션 7. 새로운 형상 회화의 등장, 한국 극사실회화 (1970년대 후반–1980년대)


단색화가 그만의 매력과 가치가 있지만 저게 무슨 그림이냐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현재뿐 아니라 단색화가 부흥하던 그 시기에도 부정적인 의견이 있었다. 앵포르멜 작품들과 더불어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대중들과 다른 작가들의 의견과 군부 세력 아래 비정상적인 정치 상황에 대한 당대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서 유행했던 사조로 단색화를 제외하면 크게 섹션 7, 8, 9, 10 순서로 극사실주의 회화(7), 수묵화(8), 민중미술(9), 소그룹 활동(10),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극사실주의 회화의 경우, 바로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회가 어지럽다 보니 좋게 말하면 철학적 사유를 반추하게 하는, 나쁘게 말하면 뜬구름을 잡는 것 같은 그러한 작품들보다 좀 더 현실적인, 손에 잡히는 대상을 화면에 표현하고 싶었던 욕구가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다.

김강용, 현실 + 장 79, 캔버스에 유채, 모래, 1979 / 작품 상세


고영훈, 돌, 종이에 유채, 책, 1985 / 작품 상세

(좌) 한만영, 시간의 복제 85-3, 캔버스에 유채, 오브제(시계부속), 채색된 각목, 1985 / 작품 상세

(우) 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The Valpinçon Bather, Oil on Canvas, 1808


한만영, 시간의 복제 87-7, 혼합재료, 1987 / 김시필, 동자견려도, 수묵담채, 111 cx 46 cm, 16세기 후반 추정


하지만 이러한 작품들이 단순히 '진짜처럼' 그리는 데에만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작가들은 '현실'만을 화폭에 담으려 했던 것이 아니라 현실과 비현실, 자연과 문명, 현재와 과거 등 부조화한 주제를 병치시킴으로써 낯선 경험을 제공했다.


극사실주의는 현대미술에 회의적인 사람들이 찬양하는 장르인 것 같기도 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종종 올라오기도 하고 갤러리에서도 가끔 볼 수 있는 이런 작품들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게 미술이지, ' '점 하나 찍은 게 무슨 예술이냐, '라고 평하기도 한다. 반대로 핸드폰 터치 한 번에 프린팅 작업이면 뽑아낼 수 있는 결과물이 무슨 가치가 있냐는 사람도 있다.


Darian Rodriguez Mederos, Follow The Wait, Oil on Canvas, 162.6 × 116.8 cm, 2019 © 2021 Artsy
Johannes Wessmark, Beauty in blue, Acrylic and Oil on Canvas, 100x150cm, 2019 © Johannes Wessmark
이정웅, BRUSH, Oil on Korean Paper, 167 x 100 cm, 2012 © 2016 REFLEXION CORP.
윤병락, 가을향기, 한지에 유채, 84 x 81 cm, 2017 © Gallery Ilho


하지만 이런 작품의 경우 기교에 중점을 둘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똑같이 그리는 것은 예술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뿐만 아니라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이미지를 통해 당대의 사회 문제를 고발하기도 한다. 기법적인 측면에서는 사진이나 극사실주의의 근간으로 불리기도 하는 포토리얼리즘과는 달리 대상을 실제보다 더욱 선명하고 매력 있게 표현한다. 그렇기 때문에 '와, 진짜 잘 그렸다' 이상의 무언가를 주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좌) Chuck Close, Mark, Acrylic on Gessoed canvas, 274.3 x 213.4 cm, 1978-1979 © Chuck Close

(우) Ron Mueck, Spooning Couple, Mixed Media, 117 x 104 x 79 cm, 2005 ⓒ Ron Mueck


빠른 템포라는 말이 무색하게 또 늘어져버린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 쓰다 보면 아무리 간결하게 쓰려고 해도 쉽지가 않다. 고영훈, 한만영 작가의 작품을 더 세세하게 뜯어보고 싶고, 극사실주의의 배경이 포토리얼리즘과 신사실주의라는 것과 그와 관련된 작품들을 소개하고 싶고 나아가 1850년대의 사실주의와는 어떻게 다른 지도 더 알아보고 쓰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고 적당한 선에서 끊어내는 것이 참 어렵다. 나머지는 조금 더 깔끔하게 넘어가 보자.


섹션 8. 1980년대 이후 한국화 (1980년대 이후)


여덟 번째 섹션은 수묵화이다. 1960년대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수묵화에 추상성을 도입한다던가 색채를 넣는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현대미술로 인정받고자 하는 시도가 있어왔다고 한다. 조금 안타까운 얘기지만 이상하게 수묵화는 어떤 변조를 하든 나에게는 끌리지 않는 것 같다. 일부러 찾아다니진 않아도 가끔 마주치는 동양화들이 재미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어딘지 모르게 따분해 보이고 마치 시골집의 낡은 액자에 걸려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 한복이나 처마, 기와 등 동양적인 아름다움도 충분히 좋아하는데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언젠가는 수묵화에 매료될 날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섹션 9. 민중미술 (1980년대)


민중미술도 그다지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다. 왜냐하면 좋지 않은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서 악에 받친 듯한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그림에 한(恨)이 서려있고 이는 감상에 있어서 왠지 모를 불편함을 준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고 미술사적으로 볼 때 민중미술은 그 시대에 있어 예술의 역할을 충분히 했던 장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당시의 상황이 재미있진 않았지만) 방법으로 표현한 그림들도 많다.


신학철, 한국 근대사-금강, 캔버스에 유채, 1996
김인순, 현모양처, 캔버스에 아크릴릭, 1986
황재형, 심 1 (Men with Sinews(힘줄) 1), 천에 아크릴릭, 미상
김정헌, 핑크색은 식욕을 돋군다, 캔버스에 아크릴릭, 1984


1980년대의 어지러운 시기에 단색화와 민중미술이라는 굵직한 흐름에 편입되길 원하지 않았던 젊은 작가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다양한 소그룹 활동으로 여러 가지 소재와 재료를 통해 자유롭게 예술을 탐구했다. 그래서 우리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난해함이 계속된다.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이 제일 많은 섹션도 이곳인 것 같다.


섹션 10. 1980년대 다양한 소그룹 활동 (1980년대)
오상길 (메타복스), 무제 89-2, 나무뿌리, 나뭇가지, 북어머리, 새의 뼈 등, 1989/2020
신영성 (난지도), 코리안 드림, 벽걸이 선풍기 65개, 1986-2002
고낙범 (뮤지엄), 마네킹-옐로우 오커, 캔버스에 유채, 1993 / 토르소, 플라스틱에 아크릴릭, 1988 / 마네킹-그린, 캔버스에 유채, 1993


열한 번째부터 마지막 열다섯 번째 섹션은 1990년대 이후의 한국미술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이번 전시에 가장 짧은 시기에 가장 많은 섹션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만큼 활발하고 다양하게 우리나라의 미술이 요동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의 여러 미술들의 공통점은 독일 통일과 소련 해체로 인해 이념적인 이슈가 비교적 가라앉고 인터넷의 발달로 세계가 서로 더 가까워지면서 1. 국제화가 가속화되고 2. 개인의 삶, 일상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3. 환경, 젠더 등의 좀 더 다양한 방식의 주제 등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섹션 11. 세계화의 시작 (1990년대 이후)


강익중, 삼라만상, 패널에 혼합재료, 동에 크롬도금, 1984-2014
백남준, 색동 II, 패널에 아크릴릭, TV모니터, VCR, VHS비디오 테잎, 1996


냉전시대 종결 후 88 올림픽, 대전엑스포(1993), 광주비엔날레(1995) 등의 국제행사와 함께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는 '세계화'를 국정과제로 내세운다. 이에 따라 백남준, 강익중, 박이소 작가들처럼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주목받게 된다. '비디오 아트'라는 장르를 창시한 백남준 작가와 3인치 캔버스 작품으로 잘 알려진 강익중 작가의 작품들이 반가웠다.



섹션 12. 개념적 태도 (1990년대 이후)


양혜규, 여성형원주민-1.구변(口辯), 2.시골신기(神氣), 3. 철지난 포화(飽和), 4.음력, 5.숙성, 상기된 결실, 조화로 만든 6개의 및 조각, 2010


여기서 다루고 있는 개념 미술은 집단주의보다는 개인의 일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배경에서 탄생했는데 결과물로써의 작품보다는 그 과정이나 작품이 놓여있는 상황, 은유적인 표현 등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는 마치 뒤샹의 변기를 본 사람처럼 당황스럽고 의아할 수밖에 없다.


보통은 작품의 배경을 알고 작가에 대해 알게 되면 또 하나의 세계를 알게 된 듯한 반가움과 즐거움이 생기는데 개념 미술에 대해서는 그런 감이 쉽게 오지 않는 것 같다. 리움, 국제갤러리, 국립현대미술관 등 여러 곳에서 접했던 양혜규 작가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음에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 또한 비슷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정서영, 자전거의 빛, 자전거, 전등, 2007 / 홍승혜, 파편, 알루미늄 각 파이프에 폴리우레탄, 2008
김홍석, 사람 객관적-나쁜 해석 (6개 오브제 中 일부), 5. 곰같은 형태, 레진 / 7. 미스터 킴, 레진, 바지, 스니커즈, 2012


열세 번째와 열다섯 번째 섹션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데, 1990년대 말에는 앞서 언급했듯이 '정치적인 이슈들보다는 개인의 욕망과 정체성에 보다 집중하게' 되며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미술, 무용, 연극, 음악, 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들이 등장하게 된다. 


섹션 13. 비판적 현실인식 (1990년대 말)
섹션 15. 다원예술과 표현의 확장 (2000년대 중반 이후)


전시 공간을 나와 마지막으로 회랑에서 열네 번째 섹션을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나를 포함하여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에게도 굉장히 익숙한 시대일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한일 월드컵 개최, G20 정상회의 개최,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등 우리가 직접 겪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이다. 조심스럽게 현대미술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은 이러한 시기의 작업들은 정치 이념이나 피상적인 주제보다는 좀 더 우리 생활에 맞닿아 있는 경우가 많다. 대중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되면서 다양한 매체의 이미지가 주제로 쓰이는 팝아트가 한국에서도 유행하게 되었다.

섹션 14. 일상과 대중문화 (2000년대 이후)


이번 전시는 관람도 리뷰도 힘들었다. 개인전도 아니었고 주제가 하나인 전시도 아니었으며 우리나라의 미술을 총망라한 대규모 전시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을 작품으로 대하기보다는 마치 한국 미술사를 공부하는 듯한 느낌이었고 누구나 그렇듯 공부는 재미가 없다. 또한 복잡한 정치, 사회, 역사적 배경에서 탄생한 각 시대별 미술에 대해 리뷰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감상평'이 배제되고 전시 책자를 베껴서 옮기는 정도의 수준에 불과한 섹션도 있는 점이 조금 부끄럽다. 


그림을 보면서 감상을 하고 나만의 해석을 하고 그림에 빠져들기보다는 '이런 것들이 있었구나'라고 지나갔던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 내가 좋아하는 이마동, 유영국, 박서보, 김종학, 이우환, 홍경택 등 작가들의 그림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꼈고 새롭게 알게 된 이종우, 이인성, 고영훈, 한만영, 고낙범, 김홍석 등 작가들의 작품도 새로운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한국미술에 대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전시를 보고 전반적으로 훑어보았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술을 좋아하는 한국인이라면 꼭 추천해주고 싶은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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