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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연 Mar 11. 2022

1화. 처음 만난 그 여자

시초를 알기 힘든 비극의 출발선




처음 만난 그 여자는 내게 분명히 어색한 느낌을 풍기곤 했지만  할머니 밑에서 자라고 있던 내가 젊은 여자를 만나는 것은 하나의 이상과도 가까웠다.  내가 아는 어른들 가운데서도 어린 축에 속했고 막상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여자를 언니라고 불렀다.


그 언니를 처음 본 순간은 그해 단 한 번뿐인 내 생일날이었으며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다소 쌀쌀한 날씨였고, 공기마저 차가웠던 날이었다. 띵동 소리가 들리며 할머니께서는 문을 열어 주셨는데 할머니는 이미 모두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양손에는 두 손 가득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던 그 여자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집에 젊은 여자가 찾아온 적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긴 머리에 젊지만 늙지도 않은 여자는 나의 로망이었기 때문이었다. 


삼촌은 곧 여자 친구들을 데리고 집에 오곤 했었는데, 모두 언니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호칭에 어린 여자들뿐이었다. 그래서 삼촌의 여자 친구가 아님을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삼촌 여자 친구는 옷차림도 날라리 같은 패션이 많은데 분명히 여자는 정장은 아니었지만 굉장히 단정한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누구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지만 나한테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그 여자의 표정을 보고 알아챌 수 있었다. 그렇게 젊은 여자는 어색한 듯한 미소를 띠고 나에게 인사를 했고 나 또한 그분에게 해맑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누구세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는 그 여자의 머뭇한 모습에 내가 마치 실수라도 했듯 다급히 상황을 마무리하며 할머니는 약간의 한숨을 쉬었고 아무 영문도 모르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할머니와 그 여자는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순간 내 방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책상과 옷들이 덩그러니 있는 중간 방으로 들어갔고 그 여자는 자신을 아빠의 여자 친구라고 소개했다. 


"우리 아빠랑 결혼할거에요?"


아빠에게 이런 여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지만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우리 아빠는 분명 10살의 나 같은 딸이 있는데 젊은 여자를 만난다고 하니 아빠마저 젊어진 기분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나이 든 아빠를 가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왠지 젊은 이 여자 옆에 있으면 우리 아빠도 젊은것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열 살 꼬마만이 할 수 있는 순진하고 단순한 이유로 나는 이 여자를 격렬하게 환영했고 가져온 선물에 기분이 좋아서 펄쩍펄쩍 뛰고 난리를 부렸다.


그 여자가 가져온 선물은 굉장히 많았는데 어떤 아이들이라도 결코 마다하지 않은 선물들 뿐이었다. 예쁜 머리 방울과 머리핀은 내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고 이미 나는 마음속으로는 이 여자를 지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꼭 아빠와 결혼했으면 했다.





눈치상으로 할머니는 이 궁합을 지지하지 않았고 어린 나 또한 스쳐 지나가는 기운만으로도 이를 감지할 수 있었다. 슬프게도 눈치가 빠른 나는 이 결혼 찬성이라고 할머니에게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 그 어떤 예상도 못한 채 지지하고 좋다고 응원할 뿐이었다.


이 결혼 내가 반대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 한번 생각해본다.

젊은 여자의 출연은 내 인생에 지금은 시초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비극으로 너무 깊게 개입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답을 하고 싶다.


나는 반대할 수 있었고 소리를 낼 자격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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