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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연 Mar 15. 2022

2화. 그 여자 이름은 '새엄마'

갑자기 새 가족에 합류되었다.





격렬하게 환영했었던 아빠와 그 여자의 결혼이었다. 11월 7일 처음 만나 1월 결혼을 한다 하니 학교 친구들에게 철도 없이 청첩장을 만들어 돌렸다. 정식 청첩장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고 계셨고, 그 모습을 본 따 비슷한 청첩장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더니 아이들도 몹시 신기해하였다.


"우리 아빠 이번에 결혼한대. 언니 진짜 이쁘다."


재혼의 의미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학교 친구들에게 아빠가 결혼한다는 청첩장을 돌렸고, 소문을 퍼트리고 다녔다.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축하한다는 말보다는 언니 외모에 대해 더욱 관심이 많은 한창 어린 나이였다.


그러나 처음 만난 지 2개월 만에 갑자기 호칭마저 바뀌어야 하는 상황에 할머니는 그저 고민이었다. 가면 잘 살 수 있겠냐는 할머니의 질문에 잘 있을 수 있다고 얼마나 기뻐 날뛰었는지 모른다. 가면 혼자 자야 하는데 혼자 잘 수 있겠냐는 물음에도 그저 좋다고 할 뿐이었다.


방학 때마다 가던 사촌 집을 가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쉬움도 있었지만,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잃어야 한다는 법칙을 그때도 알고 있었다. 하루에 한 번씩은 나에 대한 걱정에 질문을 하는 할머니에게 잘할 수 있다고 못을 박았지만, 여전히 할머니의 한숨은 가시지 않았다.


또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안방에서 셋이서 잠을 자곤 했는데, 새엄마와 아빠가 계시는 곳으로 가게 되면 따로 방을 써야 한다고 하니, 내심 무섭기도 했지만 설레기도 했다. 내 방이라는 것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침대가 있다는 말에도 설레었고 tv에서만 마주하던 자신만의 옷장이 있다는 사실도 몹시 흥분되었다. 물론 할머니와 헤어져 아빠를 따라가야 한다는 사실은 슬펐지만 자주 할머니 댁을 방문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을 할 수 있었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은 더욱 무궁무진하고,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일들과 고난들이 10대의 나에게 닥칠 것이란 예상을 전혀 하지 못한 채 그저 새엄마의 미소 한 번에 모든 것을 합격시켜버렸다. 아빠를 따라 할머니를 떠나기로 한 것은 어린날의 순수한 선택이었고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기 때문에 어른들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은 변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변한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언제나 한결같은 사랑을 보내주셨고, 내가 지닌 모난 부분조차 포용해주시던 분들이셨다. 아빠는 비록 한 달에 두 번 혹은 세 번 정도 집에 오시곤 하셨지만 먹고 싶다는 것이 있으면 오는 길에 항상 사주시던 아빠였다.






가족은 변하지 않지만 새 가족이 될 사람이 변한다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알 수 없었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큰 상처가 되리란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의 트라우마와 고통들이 당시 새엄마의 나이와 지금의 내 나이의 거리가 가까워지며 더 깊은 상처로 파고드는 것을 지금 몹시 체감하고 있는 중이다.


결국 새엄마는 1월 결혼을 하였고 5월에는 아이를 출산했다. 이미 나를 만나던 전 해의 11월,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만났기 때문에 할머니도 결혼을 허락하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아 나는 낙동강 오리 알보다 못한 처지가 되었다. 소풍 때 도시락마저 싸가지 못했으니 말이다. 할머니가 싸주신 찰진 밥의 옆구리 터진 김밥이 몹시 그리웠던 때였다. 


'차라리 할머니 옆에 있을 걸 그랬다. 열 살의 내가 할머니에게 매달리고 또 매달렸으면 어땠을까?'

'집에 들어가기 무섭다..'

'아프다..'

'무섭다..'

'제발 살려주세요..'


너무 아프고 또 아팠다. 2002년 월드컵이 열리던 그 해, 나는 무척 아프고 또 아팠다.


마음도 아팠지만 몸도 아팠고 모든 것이 얼룩져 버린 한 해가 되어버렸다. 나는 들어주는 이 한 명 없는 어둠 속에서 그저 살려달라고 말없이 소리를 외칠뿐이었다.


나는 어렸고, 버티는 것 외에 할 줄 아는 것이 없었으므로 버티고 또 버텨야 했다. 버티면 이기는 것이다. 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고 싶었고, 삶은 살아남는 자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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