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용맹한 생명의 수호자(3)

[#3. 평생을 함께 한 인간의 수호자]

by 도슨트 춘쌤

▶누군가를 지킨다는 것은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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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여성 화가 콜비치는 전쟁의 참혹성을 고발했던 화가입니다. 그중 하나가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에요. 씨앗은 아이들을 의미하죠. 전쟁은 인간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재앙이었습니다. 그 재앙 속에 있었던 사람이 콜비츠 자신이기도 했고요. 세계 1, 2차 대전에서 그는 둘째 아들 페터 콜비츠와 손자 페터가 각각 전쟁에 참여했다가 전사합니다. 그 고통 속에서 저 그림이 나온 거예요.


냥:인간들은 참 미련해요. 왜 서로 죽이며 살아가려 하는 걸까요? 서로 죽이지 말고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눠 주면 좋을 텐데….


자신이 경험하기 전까지 전쟁의 무서움을 진정으로 아는 인간들이 몇이나 될까요. 실제로 세계 1차 대전이 발생할 때, 많은 사람은 희망에 들떠 전쟁에 참여했어요. 많은 부와 명예를 쌓아 올릴 기회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전쟁은 길어졌고, 수천만의 사람들이 죽어갔고,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렸죠.


개: 인간들에게 주목할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봐온 인간들은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는 습성이 있어요. 저 콜비츠라는 화가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다시는 전쟁이라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판화와 그림을 그린 것이죠.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 전쟁을 막기 위해 헌신하는 인간이 공존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콜비치는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림과 판화를 제작했어요. 그녀는 자신이 그린 그림과 판화가 세상을 전쟁으로부터 막는 수호 그림이 되길 원했을 거예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행동이라고 할 수 있죠. 그녀의 그림을 보세요. 아이들이 다시는 희생되지 않도록 자신의 몸으로 감싸는 수호자의 모습. 진정한 어른들이 갖춰야 할 자세입니다.


냥: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평화를 가져오는 것도 인간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해요. 우리 고양이 세계도 잠깐의 다툼이 있지만, 인간처럼 같은 종을 대량 학살하지는 않거든요. 인간 스스로가 고민을 많이 해야겠어요. 자신들에 의해 언제 다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깐요.


인간들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들에 대해 항상 걱정합니다. 그리고 그 위협이 자신에게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간절한 바람이 반영된 것이 그림이기도 하고요. 그림을 보면 인간들은 전쟁뿐 아니라 질병, 자연재해가 자신의 삶을 망치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어요. 그러한 열망이 개와 만나면서 여러 가지 그림들이 그려집니다.


개:이번에는 수호자로서 개의 역할이 돋보이겠군요. 우리 개들은 신뢰하는 인간들을 지켜주죠. 이런 면이 인간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을 거예요.


맞습니다. 개가 인간의 생명을 지킨 사례는 동서고금을 망라하죠. 청나라의 건국 시조 누르하치도 마찬가지였어요. 1583년 자객이 누르하치를 습격합니다. 이때 ‘탕워하’의 이름을 가진 개가 누르하치의 목숨을 구하죠. 서양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위기의 순간까지 개는 함께 했어요. 그림 하나를 보겠습니다. 폴 들라로슈의 「에드워드 4세의 아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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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순간, 인간의 수호자는 개였다.


개:두려움을 느낀 두 명의 아이들이 보이네요. 그리고 그 앞에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나서는 개가 보여요. 하지만 그 개는 아이들을 지킬 만큼 큰 개도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문 앞으로 다가서고 있어요. 아이들의 얼굴에 공포감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좋지 않은 일이 곧 발생할 것 같아요.


그림 속 주인공은 영국 왕 에드워드 4세의 아들이었던 에드워드 5세와 동생입니다. 그들은 숙부 리처드 3세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런던탑에 갇히게 되죠. 이 그림은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기 직전의 불안감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어요.


냥:에드워드 5세와 동생이 최후의 순간을 맞을 때 개가 아이들을 지키고 있는 장면이군요. 최후의 순간, 개가 그려져 있다는 것은 이 아이들을 지키는 마지막 수호자로서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네요.


개는 인간의 생명을 지키는 수호자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그림입니다. 이러한 수호자로서 이미지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 그림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김두량(1696~1763)의 「긁는 개」입니다. 개의 탐스러운 꼬리와 섬세한 털 묘사, 몸을 긁는 개의 해학적인 모습이 일품인 그림이죠. 특히나 서양 기법을 접목하여 그려서 더 생동감이 넘쳐요. 앞서 본 이암의 「모견도」와 공통점이 있어요. 배경을 중심으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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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몸을 긁는 개의 모습에서 우리 선조는 무엇을 봤을까?


개:두 그림 모두 배경에 나무가 있어요. 그렇다면 나무가 개의 수호자로서의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다는 건가요?


이암과 김두량의 그림에는 모두 나무가 배경입니다. 나무는 한자로 수(樹)입니다. 개는 견(犬),구(狗),술(戌)의 다양한 한자로 표기되었습니다. 나무 ‘수’는 개 ‘술’과 발음이 유사해요. 거기다 개는 생명을 지키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지킬 수(守)와 의미가 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개 ‘술’의 한자는 지킬 무(戍 )와 비슷하게 생겼어요. 즉 그림 속에 나무가 그려진 것은 수호자로서 개의 이미지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어요.


냥: 우리나라 그림은 배경까지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네요. 앞으로는 우리의 옛 그림을 깊게 봐야 할 것 같아요. 궁금한 게 있어요. 김두량의 개는 몸을 긁고 있어요. 이것도 어떤 의미가 있나요?


긁는 개는 복을 가져온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요. 복을 긁어모은다는 것이죠.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서양과 다르게 우리나라는 개에게 ‘행운’의 요소를 추가했다는 거예요. 행운이 왔다는 것은 재앙이 없어야 가능하겠죠. 자연스럽게 개는 ‘재앙’에서 우리 인간을 지키는 존재로 인식되게 됩니다. 조선 시대 문 앞에는 재앙을 막기 위해 그림을 거는데요. 그것을 문배도(門排圖)라고 해요. 대부분 민간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작자 미상인 작품들이 대부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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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문배도 속 개의 모습


개: 문배도를 보면 검은색 개 뒤에도 나무가 있네요. 저 나무도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지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겠군요.


문배도 속 나무는 오동나무에요. 오동나무는 예전부터 신령한 나무로 인식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재앙을 물리치는 존재로 개와 함께 그려진 것이죠. 그림 속 개는 검은 개에요. 검은 개는 귀신을 몰아내는 개로 인식되었어요. 개 목걸이에 있는 방울과 붉은색 술 모두 재앙을 몰아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


개: 삽살개는 재앙을 몰아낸다는 의미가 있는 개였던 걸로 기억해요. 혹시 삽살개는 어떻게 그려졌나요?


김두량은 「삽살개」도 그렸습니다. 김두량의 그림을 보고 영조는 감탄하며 ‘사립문을 지키는 것이 네 임무거늘, 어찌하여 낮에 또한 여기에 있느냐?’라는 화제를 남기기도 했죠. 그런데 우리가 아는 삽살개의 모습이 ‘재앙’을 막는 개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다양한 형태로 그려지기 시작합니다. 다음 그림은 18세기에 그려진 어우봉의「삽살개」입니다. 어유봉은 영조 때의 학자입니다. 그의 그림을 보면 삽살개의 모습이 상당히 신령한 형태로 묘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이 그림들은 문이나 방에 붙어져 있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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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을 막기 위해 삽살개는 더 무서워졌다.


냥: 삽살개의 모양이 더 무섭게 바뀌었어요. 얼굴 생김새도 그렇고, 삽살개 뒤에 보이는 신령한 기운도 그렇고요. 이러한 그림들이 문 앞에 붙여져 있다면 귀신들이 들어오지 못할 그것으로 생각할 만 하네요.


개: 그런데 많은 개 중에서 삽살개가 재앙을 쫓는 개의 대표가 된 것이 궁금해요.


삽살개의 외형은 사자와 닮았어요. 털이 수북하고, 용맹하죠. 그래서 사자견의 일종으로 보기도 해요. 사실, 사자는 불교에서 매우 중요한 동물로 인식하고 있어요. 그래서 석가모니를 사람 중에서 사자 같은 존재란 의미의 인중사자(人中師子)라 불렀고, 설법을 사자 후(師子吼)라고 했어요. 사자는 불교에 있어 불법을 수호하며 악귀를 물리치는 신성한 동물로 여겼죠. 그런데 불교가 동아시아에 유입되면서 이 사자의 역할이 사자개에게 전해진 거예요. 왜냐하면, 동아시아에는 사자가 없었거든요. 대신 사자처럼 털이 많고, 큰 개들을 가리켜 사자개로 불렸던 것이죠. 우리나라에는 삽살개가 그런 사자개에 외형적으로 적합해 보였던 것이고요.


냥: 사자는 사실 우리 고양잇과에 속한 동물인데, 동아시아에서는 개로 받아들여졌다니 재미있네요. 아무래도 사자가 가진 용맹함 때문일 거라는 생각도 드네요.


개: 인간에게 있어 개는 현실적으로는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수호자였어요. 그리고 행운을 가져다주고, 재앙을 몰아내는 존재로 인식되었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인간과 함께한 시절 속에서 개가 얼마나 인간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였는지 새삼 깨닫게 되네요.


인간에게 있어 개는 매우 중요한 동료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인데요. 개와 인간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그림이라 생각합니다. ‘동물화가’로 불렸던 데드윈 랜시어의 「늙은 양치기의 상주」입니다. 살아서는 양치기 옆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 했던 동료, 사나운 맹수가 오면 양과 양치기를 지켜주었던 용맹한 수호자, 양치기가 죽어서는 상주로서 자신의 모든 삶을 함께 한 개의 모습은 인간들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하지만 그 감동 뒤에는 또 다른 슬픔도 내재하고 있습니다. 빛이 강하면 그만큼 어둠도 강렬한 법이죠. 이제, 그 어둠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슬픔의 전시실로 이동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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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까지도 함께 하고 싶은 영혼의 동반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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