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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물결 Jun 03. 2020

필름카메라와 함께한 무계획 제주 당일치기 02

더 까먹기 전에 써보는 지난 9월 무계획 제주 여행


Camera : Rollei prego90

Film : Kodak colorplus200


오전 시간을 우도에서 보낸 뒤 성산항으로 다시 나왔다. 생선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성산항 수산물 판매장에서 고등어를 택배로 보내고 버스를 타기 위해 걸었다. 위로 올라갈 것인지 아래로 내려갈 것인지의 선택의 기로에 섰다. 버스 시간을 보고 결정을 내렸다. 위쪽으로 올라가기로.



#버스타러

분명 검색을 열심히 했고 지도를 잘 봤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에 버스 정류장이 몇 개 있어서 헷갈렸다. 그래서 버스를 한대 놓쳐버렸다. 인생이 내 맘대로 쉽게 되지 않으니까 뭐. 


제주는 버스 배차 간격이 길어서 사람들이 버스 여행을 하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근데 내가 태어나고 자란 시골 동네도 제주 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배차 간격이 크기 때문에 (보통 30분에 1대 있다) 익숙한 편이다. 그래서 홀로 버스 정류장에서 노래 들으면서 시간을 잘 때웠다. 당일치기 여행이라 1분 1초가 아깝다는 사람도 있지만 이렇게 허투루 보내는 시간 마저도 여행이라 괜찮다.



#종달리에_왔다

버스를 타고 이제 어디에서 내려야할지 결정을 할 차례다.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네인 종달리에 가기로 했다. 종달초등학교에서 소심한 책방까지 걷는 그 길이 참 좋기 때문에. 종달초 옆 길을 걷다보면 어릴 때 살던 시골 동네가 생각이 난다. 참 정감가는 동네다. 나중에 나이 먹고 일을 그만두게 되면 이 동네에서 살고싶다.



#책방

곳곳에 작은 책방같은 곳이 생겼다. 독서 인구가 준다고 하더니 제주에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의 독서인구 인가보다. 사람 없는 한적한 동네를 걸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본다. 이런 곳에서 장사가 될까, 취미로 하는 걸까, 인건비는 나오는 걸까 등등. 참 쓰잘데기 없는 생각들로 채워본다.



#제일_마음에_드는_사진

길을 걷다보면 다양한 밭을 볼 수 있다. 바다가 좋아서 제주에 오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는 이런 밭이 참 좋더라. 무슨 작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상하고 나서 이 사진을 보고 감탄을 토했다. '오 나 사진 좀 잘 찍는 것 같은데-'라는 자화자찬과 함께. 하늘과 풀과 돌과 오토바이까지 마음에 안드는게 하나도 없다.



#바다는_안보여요

바다는 안보여요 카페를 지나다 햇살이 너무 좋아 찍었다. (근데 저 오토바이 번호판 가려줘야하는 걸까 모르겠네.) 언젠가 종달리에 처음 왔을 때 이 카페를 간 적이 있었는데 이름이 너무 신기해서 찾아봤었다. 제주에서 카페를 한다니까 사람들이 하도 바다가 보이냐고 물어봐서 이름을 아예 바다는 안보여요 라고 정했다고 했다. 예쁜 고양이도 있었던 것 같은데 들어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오늘은 일단 책방이 우선이기 때문에 책방을 향해 가본다.



#마음이_따뜻해지는_곳

햇살이 참 좋았다. 그래서 가을이 좋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러한 햇살 때문인지 제주는 봄 보다 가을에 가는 것이 더 좋다. 아니 사실 어느 계절 하나 안 좋을 때가 없다. 봄은 꽃이 피어서 좋고 여름은 비가 내려서 좋고 가을은 햇살이 따뜻해서 좋고 겨울은 눈이 내려서 좋으니까. 물론 살아보면 느낌이 다를 것이다. 언젠가 제주에서 4계절을 다 살아보고 글을 쓸 수 있었으면 한다.



#제일_좋아하는_공간

종달리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이 어니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 이 곳을 꼽을 것이다. 동영상을 찾기 귀찮아서 첨부는 안하지만 여기 이 갈대밭 앞에 가만히 서서 바람 소리와 갈대가 흩날리는 소리, 그리고 새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다 시원해진다.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기분이다. 가끔은 길바닥에 앉아 울고싶어지기도 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쳤던 그 대나무숲이 나에게는 이 곳이다. 가만히 서서 바람을 맞으며 기쁨, 슬픔, 분노 등을 다 여기에 놓고 간다. 



#수상한_책방_앞

제주에 오면 들리는 서점이 몇 곳이 있다. 미래책방, 소심한 책방, 만춘서점. 그래서인지 사진을 찍은 게 없네 하핫. 대신 소심한 책방 앞 창고를 찍었다. 흰 담벼락과 파란 철문이 조화로운 공간. 포카리스웨터가 생각이 나기도 한다. 창고를 배경삼아 셀카도 몇 장 찍고 책방에 가서 오늘 여행을 위한 책을 신중하게 고민해서 구입한다.


짧은 여행 때마다 책을 한 권씩 갖고 다니는데(길게 가면 웬만하면 이북리더기 들고 간다) 읽고 싶었던 책이 없으면 독립서점에서 구입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늘 여행에서 서점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여행 때 읽은 책을 다시 서울에 돌아와서 읽으면 그 여행 때 가졌던 감정들이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책이 주는 힘이란 이런게 아닐까 싶다. 



#카페에서_책_읽기

소심한 책방에서 책을 샀다. 안리타 님의 <사라지는, 살아지는>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네, 살고 싶지 않아도 살아지고 살고 싶은 날에도 살고 있는, 이런 알 수 없는 생의 한가운데를 오래 서성입니다. 단지 우리 잘 사라지기로 해요. 그리고 우리 잘 살아지기로 해요.

위로를 받았다.



#동네_산책

문득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오랜만에 세화에 가서 바다를 보고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비행 시간까지 6시간이 넘게 남았기에 가방을 정리하고 다시 마을 산책을 하기로 한다. 골목골목 길이 나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걸어본다. 눈으로도 담고 카메라로도 담아본다. 가끔 만나는 어린 아이들이 와서 인사를 한다. 너무 귀여워서 한참을 바라보다 버스를 타러 다시 가본다.



#버스를_기다리며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언제나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주는 곳

내가 좋아하는 동네 종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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