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향에 대한 고찰
방송국 노비로 살아온 지 어느덧 10년, 내 인생 가장 큰 만족감을 줬지만 반면 나를 한계까지 밀어 넣었던 모 프로그램을 끝내고 잃어버렸던 ‘나’를 다시 되찾으려 내 인생 가장 긴 휴식기에 돌입했다. 퇴사를 하고 부산까지 내려가 미뤄뒀던 뮤지컬을 보고 오기도 했고 코로나 시국 이후 처음으로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그리고 이 삭막하기만 한 서울을 떠나 본가에 내려가서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지내고 있다.
8시쯤 일어나 아침을 먹고 그동안 못 봤던 넷플릭스 영화를 보고 점심을 먹고 보고 싶었던 드라마를 보고 저녁을 먹고 오래전 봤던 영화를 다시 보는 이러한 내가 아빠의 눈에는 한심하게만 보였는지 어느 날 갑자기 그런 말을 했다. ‘네가 얼마나 더 피디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이를 더 먹고도 밤새워 일하는 거 할 수 있겠어? 쉬면서 네가 좋아하는 게 뭔지 찾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계획을 하는 건 어때?‘ 무계획으로 사는 P에게 J의 조언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는데...
그래서 고민을 하게 됐다.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일까, 무엇을 할 때 나는 가장 행복한가, 무슨 일을 해야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인간으로 남고 싶은가.
몇 주 째 생각을 하고 있지만 결론은 나지 않는다. 나는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 모르겠다. 내 어릴 적 꿈은 그저 PD가 되어서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방송을 하고 싶었고 내가 메인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는 그 목적을 이뤘다. 성인이 되어서는 친구들에게 농담 삼아 하던 말이지만 나는 그저 ‘졸부의 딸’이 되어 놀고먹고 싶다. 아빠 아직 늦지 않았어 파이팅! 나는 나의 재능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오늘 오랜 기간 함께 합을 맞췄던 친구 PD와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눴다. 그 친구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래도 우리가 영상을 만드는 일을 했으니까 유튜브라도 할까,라는 것까지는 갔지만 무엇을, 어떻게, 무슨 목적으로 다룰 것인지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좀 더 고민해 보고 만나자-라고 했지만, 다음번에 만날 때에 우리는 또 똑같을 것이라는 걸 안다. 왜냐면 우리는 늘 똑같았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사람이 부럽다. 아니 그보다 자신이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에게 질투가 난다. 본인의 취향이 명확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내 취향이 뭔지 알게 될 때까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게 될 때까지 글로 남겨보려고 한다. 이것도 얼마나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시작을 했다는 거에 의의를 둔다. 언젠가 내가 이 글을 다시 읽을 때 지금의 내 생각이 그때의 나를 만들었다고 느끼길 바라며.
일단 오늘은 잠이나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