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맘에 안 들어. 서울에서 잤던 오피스텔이나 목포 호텔 같은 데로 가자. 이렇게 낡아빠진데 싫어."
황리단길 한 구탱이, 숙소로 들어가는 골목어귀에서 예민녀 쑴과의 실랑이가 시작됐다. 요즘은 레트로가 인기다. 인싸들이 가는 곳이다. 별별 말로 꼬셔봐도 통 먹히질 안는다. 똑같은 브랜드 옷이라도 서울에서 산 것을 더 위로 쳐주는 10살 아이에겐, 그저 오래되고 불편한 집일 뿐. 복고 감성 따위를 이해시키는 것이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샐리와 샘은 주차안내를 위해 버선발로 나와 인자하게 웃고 있었다.
'어서 빨리 사태를 마무리 지어야 해.' 마음이 급해진 니콜은 초 강수를 두었다.
"여기 아니면 잘 곳도 없어. 지금 와서 다른 곳 예약할 수도 없고, 여기도 간신히 구한 거야."
물러섬 없는 엄마의 태도에 상황파악이 된 건지, 오만상을 쓰며 졸래 졸래 엄마뒤를 따른다.
시간을 거슬러가는 중입니다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나서야 골목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낡은 보도블록을 따라 길가에 자리한 철제 대문, 시대를 가늠할 수 없는 나무 전봇대, 길 양쪽에 심어진 예쁜 화초들, 한 발 한 발 디딜 때마다 시간을 거슬러 어린 시절로 향하는 듯했다. 샐리의 집은 핫플레이스인 황리단길을 살짝 피한 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덕에, 옛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마당 한 구석에는 우물이 있었다. 정수기가 얼음까지 만들어주는 세상에 우물이라니,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경주에서도 우물이 남아있는 집은 많지 않아요. 보세요, 지금도 저렇게 물이 고여 있어요. 언론사에서 취재를 올 정도로 귀한 것이랍니다."
나무 덮개를 열어 보여주는 샘의 말투에 자부심이 느껴졌다. 우물은 집의 사회적 위치를 상징하기도 한다. 지금이야 수도꼭지만 틀면 콸콸 쏟아지는 물이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마을 공용우물에서 물을 길어 썼다. 소위 좀 사는 집이나 되어야 마당에서 물을 긷는 워터리 라이프를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닥에는 보도블록 대신 모양도 색도 제 각각인 넓적 돌이 모자이크처럼 깔려 있다. 공장에서 생산된 자재가 아닌 자연 그대로의 돌. 한 장 한 장 보물을 옮기듯 마당에 들여 땅을 파내고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돌 중에는 오래된 집을 허문 자리에서 주워온 것도 있고, 깃대를 꽂는 용도로 쓰던 돌도 있다. 돌 하나하나에 사연이 있고 역사가 있는, 이것이 경주의 가정집 클래스인가.
"정말 대단하세요! 이 많은 돌을 하나하나 옮기느라 얼마나 힘드셨어요. 젊은 사람들도 하기 힘든 일인데."
"허허~ 이거 제가 한 거 아니에요."
"네? 그럼 이걸 누가? 업자를 쓰신 건가요?"
"샐리가 했어요. 좋은 돌을 찾아서, 시간 날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듣고도 믿을 수 없었다. 이 많은 돌을 갸녀린 부인이 주워 날랐다고? 얼핏 예순 가까이 되어 보이시는데...
샐리가 직접 주워 나른 마당의 돌들
지금도 찰랑거리는 저 물 좀 보세요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지만 장시간 운전한 탓에 일단 짐을 풀고 눕고 싶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방에서는 시골집에서 날 것 같은 쌉싸한 향이 났다. 문틀에 발라진 창호지와 나무 마루, 가구들이 어우러져 만든 향이다. 깔끔한 방 내부는 아무것도 없다고 할 만큼 미니멀했다. 여행 후 수민이와 경주 이야기를 할 때면 '아, 그 아무것도 없는 집'으로 기억할 정도다. 우습게도 그렇게 가기 싫다고 징징거리던 곳을 지금은 다시 가고 싶어 한다. 아무것도 없던 방이 특히 맘에 든다나 뭐라나(나를 닮아 간사한 인간이다).
미니멀한 방 안에서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물건이 있다. 심플한 방이 주는 공간감 때문에 더 도드라진다. 앤틱 한 식기와 커틀러리, 등나무 거울과 의자, 작은 원목 가구들.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그 아이들은 이마트나 모던하우스 같은 곳에선 절대 구할 수 없는 물건이다. 대체 이 분들은 뭐 하는 사람들일까? 마당에서 생성된 궁금증이 방 안에서 부피를 키워 머릿속을 꽉 채워 버렸다.
우리가 머문 방 입구 모습
마담 샐리의 취미생활
다음날 아침 기다리고 기다리던 조식시간. 주방의 고재 식탁에는 으깬 감자와 계란으로 만든 샌드위치, 청량한 색감의 과일이 함께 차려져 있었다. 간단한 조식이지만 고급스런 접시에 담겨 있으니 프랑스의 어느 가정집에 앉아 있는 듯했다. 오래된 나무 기둥을 그대로 살려 리모델링한 주방은 한국과 유럽, 일본의 빈티지 제품들이 뒤섞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제주의 힙한 레스토랑 같기도 하고, 인사동의 전통 찻집 같기도 하며, 가장 경주다운 모습이기도 했다.
정신 나간 먹보 커플이 두리번거리며 접시를 비우는 사이 호스트 샐리는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작고 두툼한 에스프레소 잔에 담겨 나온 커피는 지방질과 단맛이 어우러져 밸런스가 좋았다. 원두가 좋은 건지, 동주전자로 내려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 모금 한 모금 아껴마시게 만드는 커피였다.
"샐리님 커피가 너무 맛있어요. 잔도 접시도 너무 예뻐요. 집안 가득한 이 보물들은 도대체 언제부터 수집하신 거예요? 근처에서 빈티지샵 같은 걸 하시나요?"
니콜이 살짝 눈치를 줬지만 흥분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쏟아내 버렸다.
눈도 혀도 즐거웠던 샐리의 조식
어디서도 볼수없는 이국적인 분위기의 주방
"이십 대 때부터 관심은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수집한 건 결혼하고 나서였던 거 같아요. 여행을 좋아해서 외국에 많이 나갔는데 그때마다 한아름 사 오곤 했지요. 덕분에 남편이 고생 좀 했어요. 지금은 따로 거래처도 생겨서 조만간 샵을 열어 볼까 해요. 이 집 옆에 건물에 세 사는 분이 나가면 그 자리를 가게로 운영해 보려고요. 지금은 옆에 창고에 진열해 놓고 당근마켓 통해서 팔고 있는데 관심 있으시면 가서 구경해보세요."
"네? 여기 말고 더 있다고요?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고요? 당연히 가보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
우리가 운영하는 제주의 '북스테이 수민문화' 역시 오래된 물건이 한가득이다. 여기서 '앤틱' '빈티지' 같은 있어 보이는 단어 대신 '오래된'이란 표현을 쓴 이유는 대부분이 주워오거나 드림받은 물건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레트로가 대세야, 이런 게 힙한 거!‘라고 했지만 사실 돈이 궁해서 선택한 인테리어였다.
궁색하게 시작한 수집활동은 묘한 쾌감이 있었고 급기야 클린하우스(재활용 쓰레기 수집장)를 뒤지고 다니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래된 선풍기, 페달이 달린 미싱다리, 고방유리 장식장, 이런 물건들을 만날 때마다 헤어진 님이라도 만난 양 가슴이 콩닥거린다.
오래된 물건들로 꾸민 우리의 공간
경주에서 만난 우리 할머니
내가 좋아하는 옛 물건들은 대부분 돌아가신 할머니의 기억과 맞닿아 있다.어린 시절 궁핍한 살림살이로 독립해서 살 형편이 안되었던 부모님은 할머니 집에 얹혀살았다. 네 다섯 평 남짓한 작은 곁방에 동생까지 네 식구가 모여 살았는데, 좁은 골목 양쪽으로 또래 친구들이 살아서 심심할 날이 없었다. 여름이면 하루종일 개천에서 멱을 감고 새까맣게 탄 채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비빔국수를 말아놓고는 선풍기를 틀어 더운 김을 식혀 주셨다. 햇볕에 벌겋게 그을린 등짝이 쓰라려 괴로워하면, 시원한 물에 짜낸 수건을 덮어 주고, 커다란 부채를 부쳐주셨다. 누가 뭐래도, 누구보다도 우리 손주가 최고. 국민학교에 입학할 즈음 집에서 나오기까지, 무조건 적인 사랑으로 내 정서의 빈 틈을 메워 주셨다.
먹고사는 문제로 허덕이던 부모님은 늘 바빴다. 두 살 아래 남동생이 있긴 했지만 너무 어린 탓에 짐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집안일이 안 풀릴 때면 이사를 다녔다. 국민학교 6년 동안 5번의 전학을 다닌 떠돌이 인생. 3학년 때였나? 홀로 버스를 타고 30분 거리를 오가던 때도 있었다. 이런 하소연 같은 말이 누군가에게는 ‘라떼는 말야’ 정도로 들릴 수 있겠지만, 그 시절의 내겐 어둠의 터널을 오가는 시간이었다.
부모님은 자주 다퉜다. 말다툼을 넘어 육탄전이 벌어진 날은 아버지가 술을 드셨거나 어머니가 가게일로 힘든 날이었다. 그럴 때면 할머니를 찾았다. 차로 20분이 걸리는 거리를 동생을 데리고 걸어갔던 적도 있다. 서럽게 우는 등을 쓰다듬어 주고는 뜨끈한 어묵탕을 끓여 내오는 할머니. 할머니가 없었다면 난 어떤 아이가 되었을까.
가끔씩 꿈에서 할머니를 만난다. 나른한 여름 무릎을 베고 누워 창밖으로 흔들리는 감나무 가지를 바라보는 나, 땀을 뻘뻘 흘리며 용암처럼 빨간 어묵탕을 먹는 나, 채한 등을 문지르는 할머니의 따신 손.
주로 힘든 일이 있거나 몸이 아플 때, 혹은 아무 이유 없이 사무치게 보고 싶을 때이다. 그 따듯한 공간을 채우던 물건들도 생각난다. 검은색 다이얼 전화기, 회전할 때마다 툭 툭 거리던 금성 선풍기, 옆면을 툭툭 쳐야 잘 나오던 텔레비전, 살구꽃 무늬가 가득했던 행남 도자기, 드르르륵 구름무늬 유리가 달린 문을 열고 나올 것만 같은 우리 할머니.
숙소에 누워 바라본 미닫이 문의 유리는 할머니 집의 것과 꼭 같았다. 지대가 낮아서 부엌에 갈 때마다 머리를 숙여야 했던 것도 닮았다. 과거를 간직한 경주, 과거를 떠올리는 민박집, 그곳에서 만난 우리 할머니. 빙그레 미소짓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다음 대전 가는 길에는 가족들과 함께 할머니 산소에 가봐야겠다.
"할머니 저 왔어요. 할머니가 가장 아끼는 큰 손주요. 멀다는 핑계로 자주 못 와봐서 죄송해요. 이번엔 할머니 증손녀도 함께 왔으니 절 받으세요."
돌아가시기 전 아내와 함께 인사드렸을 때 식도 안 올린 처녀한테 다짜고짜 애부터 낳으라고 하셨는데, 사랑스러운 증손녀 절을 받으면 또 얼마나 좋아하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