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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쩨이 Jan 18. 2021

미혼, 무직의 30대 : 나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누군가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 보면

누군가를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있다와 없다는 공생 한다.

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

황경신 - 생각이 나서



언젠가 황경신 작가의 글을 인용하면 꼭 짝사랑 같은 달콤한 이야기를 적어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30대가 되기 전에 내가 생각했던 30대는 사회적으로 소위 커리어 우먼으로 불리는 포지션이었다.

관리된 피부와 머리카락 같은 외적인 요소부터 성인으로서의 통찰력과 타인에 관한 이해력이 있는 내적인 요소가 디폴트처럼 나이와 함께 오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미용실에 가는 건 연중행사 같은, 어제와 오늘에 큰 차이가 없는 일상과 한 줄 한 줄 모국어를 적어나가면서도 어학사전을 찾아봐야 하는 언어 능력을 가진 채, 사소한 일에도 감정을 컨트롤할 수 없을 만큼 졸업 스트레스를 담뿍 담고 있는, 30대의 나는 이상적인 나의 부재로 지금의 나를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처럼 이 나이의 나를 향해 주변인들은 연애와 결혼, 출산이라는 단골 소재를 꽤나 편한 태도로 언급하곤 한다.


결론적으로 어떤 화자 든 간에 내 연애와 결혼, 출산에 관한 발언에 대한 무게나 내포된 의미를 아무리 무겁게 생각하고 또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내가 나를 생각하는 것에 비하자면 마치 개미와 강아지만큼의 질량과 온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학습해나가고 있다.


몇 번의 연애로 호되게 앓았다고 연애를 하기 싫은 건 아니었다. 겨울밤 퇴근길에 찬 바람이 불어와 옷깃을 여미는 순간이라거나 집에 도착해 컴컴한 방에 달칵 불을 밝히는 순간처럼 마치 장면 어딘가에 혼자라는 글귀가 써져있는 거 같은 사소한 순간부터 맛있는 음식이나 예쁜 풍경을 앞에 두고 있으면 여전히 누군가와 함께이길 바라는 증상과 함께였다. 그리고 짝사랑에 빠지고 나서는 모든 순간에 그 모든 장면에 그 사람과 함께이길 꿈꾸던 순간도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제일 많이 배운 것은 애석하게도 무언가를 그럴듯하게 하는 법이 아닌 무엇이든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법이었다. 실험 결과를 논문의 이야기에 맞춰서 포장하는 것처럼 남에게 보이고 싶은 부분을 그럴듯하게 강조하고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은 잘라내거나 의문이 생기지 않게 잘 숨기는 것에 점차 특화되며 익숙해지는 것, 그게 이상적이지 않은 어른이 된 나였다.


나는 내가 꿈꾸던 내가 아닌 지금의 나를 몇 퍼센트 좋아하고 있는 걸까.

스스로가 이런 의문을 품고 있는데 타인과의 관계를 제대로 풀어나갈 수 있을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차오르는 달처럼 속절없이 커져가기만 하는 것이다.


'이런 나라도 나는 내가 제일 좋아!'

같은 말을 할 수 있으면 그게 이 상황에서 가장 이상적인 대사겠지만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나를 고를지 스스로도 애매하단 생각을 한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나에게 연애편지를 쓰듯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 대한 짝사랑이 더 나은 관계로까지 이어져 이 글을 보고 가볍게 미소 지을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 짝사랑에게 위안과 평화가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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