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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mf Mar 12. 2022

승강기 게임

내가 사는 곳은 승강기 4대가 동시에 움직인다. 만약 내가 1층에서 상승 혹은 하강 버튼을 누른다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승강기가 움직인다.


한 번은 승강기를 타는 상황 자체가 게임처럼 느껴진 적이 있다.


우리 아파트는 분리수거하는 곳이 지하 1층에 있다. 나를 포함한 네명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아이들을 지하에 내던지듯 쏟아냈고, 찝찝해하는 손을 어쩔 줄 몰라하며 승강기 버튼을 눌렀다.


여덟개의 눈알은 네 대의 빨간 숫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하나는 막 올라갔고, 나머지 세대가 마치 경쟁을 하듯 고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하나는 17층, 하나는 5층,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3층에서 내려왔다.


우리 네명은  3층에서 내려오는 승강기를 향해 발끝을 두고 있었는데, 그가 갑자기 2층에서 멈춰버렸다. 때문에 우리의 발끝은 다시 5층에서 내려오는 승강기 쪽으로 향했다. (이때부터 나는 그곳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과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 이유로 '우리'를 쓴다.)


하지만 그런 마흔개의 발가락 끝이 애석하지도 않았나 보다. 그는 야속하게도 부지런히 지하 1층을 지나 지하 3층을 향해 가버렸다. 결국 우리는 더 이상 발끝을 움직이지 않은 채  17층에서 쭉 내려오는 승강기 쪽으로 눈길만 돌렸다. 이제 마흔개의 발끝들은 중립이다.


결국 우리가 탄 승강기는 5층에서 지하 3층으로 갔다가 다시 올라온 승강기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났던 마흔의 발끝과 여덟의 눈길은 마치 게임 속 연두색 혹은 붉은 광선이 되어 무수히 교차했다. 그렇게 실타래처럼 엉켜버린 광선들은 내 상상 속에서 알 수 없는 기계음을 발생시켰고, 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한판의 짧은 게임을 한 것 같았다.


참여자는 기계, 사람, 운명, 장난, 광선, 교차,  혼란스러운 여덟개의 눈알, 애석한 마흔개의 발끝과 찝찝함을 가득 안은 마흔개의 손가락 등등.


그래서 오늘 나는 어떤 승강기를 탈까?




생각해봤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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