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초반부터 나의 마음을 졸이게 만들었던 아이는 출산까지 힘들었다. 진통 중 아이의 심박수가 너무 떨어져서 응급 수술을 하게 되었다. 남편에게 전화 걸어서 응급 수술을 들어가게 되었다고 알려주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은 죽어 나올 수도 있으니 남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라는 말처럼 들렸다. 날 흔들어 깨우며 아이를 보여주는 간호사를 보고, 살아 나왔구나 안심했다.
밤낮없이 수유를 하는 것, 기저귀를 가는 것, 모든 것이 어려웠다. 훗배앓이는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팠다. 날뛰는 호르몬으로 미역국을 먹다 가도 눈물이 났다.
시작부터 서툰 나의 엄마 여정기는 싱가포르에 도착해서 더 삐걱대기 시작했다.
남편이 일하러 가 있는 동안 혼자 고군분투하며 아이를 돌보았다. 예민한 아이와 서투른 엄마가 만나 잠재우는 것 하나도 너무 힘들었다. 40분 고생해서 겨우 재우면 30분도 채 자지 않고 울어 대는 바람에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나중에는 아이 낮잠 재우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아이를 데리고 콘도 밖으로 나가는데도 한 달은 걸렸다. 초보 엄마에겐 아이를 데리고 버스 3 정거장 남짓한 거리를 가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나가서 아이가 울진 않을까, 배가 고프면 어쩌나 등 지금 생각하면 웃음 나는 고민들을 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면서 훨씬 여유로워졌지만, 그때는 왕초보 엄마였다. 선배 엄마도 없어서 물어볼 곳도 없었다.
육아 서적에 적힌 대로 육아가 되면 너무 좋겠지만 해도 잘되지 않으니 엄마로서 나의 자질이 문제인가 싶었다. 남편이 퇴근해서 오면 하루 종일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다. 친구도 없었던 시절, 싱가포르에서 유일하게 아는 사람은 남편뿐이었다. 남편은 투정 부리는 나를 안아주고 다독여 줬다. 하지만 짜증의 빈도수가 늘어나자 남편도 지쳐갔다. 하루는 자신이 뭘 어떻게 해야 하냐며 나에게 되물어 왔다.
한국보다 일 강도가 훨씬 높은 싱가포르 회사 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남편에게도 내가 짐스럽게 느껴졌다. 남편과의 관계도 갈수록 엉망이 되어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행복하지 않았다. 아이를 창밖으로 던져 버리고 싶었다. 산후 우울증이었다.
24시간 아이와 함께 붙어 있으니 자신감 있었던 나는 사라지고 없었다. 흐리멍덩한 눈으로 늘어진 옷을 입고 애를 보는 사람만 남아 있었다. 해가 쨍쨍한 싱가포르의 파란 하늘, 건강한 초록 야자나무는 그저 그림 같았다. 푸르른 풍경 뒤로 영혼이 점점 말라비틀어져가는 내 모습이 보였다. 더 이상 이렇게 둔다면 아내, 엄마 역할을 모두 실패할 것 같았다. 내 아이를 더 이상 이렇게 키울 순 없었다. 노력도 안 해보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남편과 상의를 통해 입주 도우미인 헬퍼를 구해서 도움을 받자는 결론을 내렸다. 신도 나를 가엾게 여기고 도와주시려 했던 것 같다. 나와 놀이터에서 만나 종종 대화를 나누곤 했던 헬퍼의 보스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나와 같이 일하자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우연히 아이를 굉장히 잘 케어하는 좋은 헬퍼를 구할 수 있었다. 헬퍼를 구하기 전부터 남편의 동료들이 헬퍼를 구하면 왜 하루빨리 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거라 했는데 그 말이 진짜였다.
아침에 헬퍼 언니가 일하기 시작하면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돌봐줬고, 그 덕분에 난 낮잠을 잘 수도 있었다. 밀린 잠도 자고,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생겼다. 여유롭게 장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것은 남편과 데이트를 다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남편과의 관계가 좋아지면서 사랑이 충만해졌고, 그 충만한 사랑은 다시 아이에게 돌아갔다.
선순환의 반복이었다.
아기를 키우는데 도움의 손 하나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다. 운동과 데이트를 통해서 더욱 활력을 찾고, 자연스럽게 다시 행복이라는 감정도 느끼게 되었다.
지금 그 첫째 아이는 6살이 되었고, 둘째는 4살이 되었다.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나의 엄마 레벨도 많이 성장했다. 때로는 아이들에게 소리도 치지만, 평소에 아이들에게 사랑 가득한 엄마가 되기 위해 애쓴다. 지금도 종종 남편과의 데이트에서 헬퍼 언니가 우리 가족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곳, 낯선 땅에서 엄마가 되어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두 아이들에게는 내가 그들의 우주이며 내 아이를 행복하게 키워야 하는 엄마이기 때문에 오늘도 힘차게 나아간다. 누군가에게 내가 우주가 되는 경험, 벅차기도 하지만 때로는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두 아이를 통해서 내가 받는 어마어마한 사랑은 어떻게 계산할 수 있을까.
엄마가 되어간다는 것...
부모가 되어가는 삶은 축복이기도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 과정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는 양육자들을 응원한다.
세상 모든 양육자들을 위해 기도한다. 지금 이 순간 모든 양육자들의 마음에 평안과 사랑이 앉아 내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