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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디 Aug 24. 2020

쪄죽따 - 얼죽아의 반댓말

고지식의 끝판왕

"쪄죽따" 라는 신조어를 들어보셨는지? 쪄죽따는 "쪄죽어도 따뜻한 거"의 준말이다. 다시말해 "얼죽아, 얼어죽어도 아이스"의 반댓말


아마 이런말 쓰는 사람은 한번도 못봤을거다.

이 말을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는 이유는 내가 나름대로 얼죽아의 반댓말을 만들어봤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은 신기하게 더워도 아이스, 추워도 아이스 무조건 아이스를 외치며 "얼죽아"라는 단어까지 만들어 냈더라. (물론 어르신중에도 얼죽아가 계시긴 하다 ㅎㅎ)


그런데 나는 얼죽아에 0.00001%로 낄 수 없는 더워죽어도 무조건 따뜻한 라떼만 먹는 사람이다. 그것도 꼭 라떼인 이유가 아메리카노를 먹으면 두번중에 한번은 배앓이가 와서, 항상 부드러운 라떼를 마셔야 한다.


추울땐 당연히 따뜻한걸로, 더워도 나는 따뜻한걸로.


원래 나도 더울땐 아이스, 추울땐 따뜻한거 이렇게 계절 따져가며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팀장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 사람이 차가운 음식을 먹으면 몸을 따뜻하게 다시 유지하려고 에너지를 내는데 그게 몸에는 스트레스 요인이 되어서 좋지 않다고. 차라리 좀 더워도 따뜻한 음료를 마시는 게 몸에 훨씬 이득이라고.


그때부터 나는 아묻따 따뜻한 라떼를 마셨다. 누군가 내 음료 취향을 미리 알지 못하고 아메리카노를 사오면 굉장히 실망한 표정을 지을정도로 따뜻한 라떼를 마셨다.




그러고 있는데 라떼라는 말이 갑자기 유행을 하더라. 좋은 뜻이 아니라 나쁜 뜻으로 말이다. "나때는 말이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꼰대를 지칭하는 말 "라떼"


내가 후배들에게 "나때는 말이야~"라는 말을 많이 했는지 안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걸지도) 어떤 날은 라떼를 먹는 내가 그것도 따뜻한 라떼만 먹는 내가 굉장히 꼰대스럽다는 생각이 들고 어떤날은 자괴감까지도(?)들었다.


나에겐 다섯살 어린 남동생이 있는데, 맨날 나에게 "누나는 너무 고지식해.. 정말 그래서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는거야"라면서 조언아닌 조언을 해주는 캐릭터이다. 그런 이눔 자식이 내가 따뜻한 라떼를 먹는걸 보고 " 아.. 역시 누나는 고지식해.. 요즘에 누가 따뜻한 라떼를 여름에도 먹냐.." 라고 하는거다


뭐 내가 세상에 둘도 없이 예뻐하는 친동생이기도 하고 뭔 말을 해도 어화 둥둥 이쁜 동생이라 나에게 별 데미지는 없지만, 한번은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 따뜻한 라떼 먹는거. 이상한 사람인건가?


난 그저, 이 스트레스 가득한 세상에서 비록 몸에 좋지 않은 커피를 마시는 거지만 조금이나마 내 건강을 지키려고 내 기분을 지키려고 먹는건데..


그러고보면 얼죽아들도 나랑 같지 않나? 추운데도, 주변에서 왜 추운데 아이스를 먹냐는 핀잔에도 "저는 아이스를 먹어야 기분이 조크든요!!"를 외치며 고집을 피우는 건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동생에게 이런말을 해보진 않았지만. 만약 동생이 이 글을 본다면 이렇게 말할거 같다.

"으이그.. 그러니까 누나가 고지식 하다고 하는거야.. "


고지식해도 좋다. 그래도 내 성향을. 내 진심을 알아주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가 내 동생이다. 주변인들이 모두 내 동생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나에게 깨달음을 주려는 듯 내가 요즘 애정하는 인친님의 피드를 우연히 보는데 이런글이 써있는 거다.


세상사 어찌 내 마음대로 되리오. 그저 주어진 곳에서 최선을 다할뿐.


그래. 어떻게 세상에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만 주변에 있겠어.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한명도 없어도 나는 그저 주어진 곳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거야. 그리고 쪄죽다는 내 시그니처 같은거고. 다른사람 생각이 내맘같지 않으면 어때. 따뜻한 라떼 한잔이면 이미 행복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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