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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행복수집러 Feb 02. 2022

이제 사회인 야구 안 하니?

좋아하는 사회인 야구를 그만두면서

"민수야"

도서관에서 볼일을 보고 집으로 들아가는 지하주차장에서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부른다.

뒤를 돌아보니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는 형님이다.

"어? 낙원이형."


이 형님은 내가 사회인 야구를 할 때 함께 레슨을 받던 형으로 나보다 1살이 많다. 이 형님네 팀에 고등학교 동창이 있어서 더욱 친하게 지냈는데, 레슨 받을 때 함께 캐치볼도 하고 타격에 대한 충고도 해주던 레슨 동기이자 지난 주말에 벌어졌던 서로의 야구 무용담과 실수담을 이야기하던 야구친구다.


"오전부터 어디 다녀와?"

"바람 쐴 일이 좀 있어서요. 어디 좀 갔다 왔어요."

"민수야 지금도 야구하니?"

"아 저 와이프가 캠핑 시작해서 주말마다 거기 따라가요. 그래서 요즘은 야구 안 해요."


"민수야. 우리 팀 들어올래?"

네? 야구 안 한다는데 왠 스카우트 제의?


"3년 정도 안 뛰어서 실력이 못 따라 줄 것 같은데요."

"그럼 우리 팀에 이름이라도 올려놔. 시간 날 때 한 번씩 나오면 되지. 유니폼비 부담되면 내가 준비해 줄게."

"저 진짜 야구 안 해요. 와이프가 주말에 나만 나가는 거 안 좋아해요. 나이 먹어서 그런지 요즘 무릎도 시큰거리고요. 하하"

"와~ 진짜 이제 야구 안 해?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그렇게 됐어요. 형 말씀만이라도 고마워요."

"그래. 알았어. 새해 복 많이 받고. 생각 있으면 연락 줘."

"네 형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회인 야구.

진짜 내가 10년 넘게 몰입해서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쏟아부었던 취미이다.

직장 동료의 추천으로 사회인 야구를 시작했는데 내가 생각해도 정말 열심히 했다. 주말에 시합이 있으면 한 경기도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주말에 시합이 없는 날에는 아무리 추운 겨울날에도 동료들과 함께 아침 훈련까지 했었다. 눈이 와서 운동장에 눈이 쌓여서 도저히 훈련을 할 수 없음에도 눈을 치워가며 훈련하고 시합 했던 기억이 있다. 나도 나지만 진심으로 다들 미쳤다. 해본 사람들은 안다. 사회인 운동선수 중에 미치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을.


그동안 내가 레슨과 회비, 리그비 등에 쏟아부은 돈만 따져도 1000만 원은 우습게 넘는다.

그 정도로 열정적으로 임했던 취미였고, 그 노력의 대가로 도 최우수 선수상, 리그 우수 선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팔꿈치와 무릎 통증도 받았다. 방금 전 사회인 운동선수 중 미치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다고 했는데 사회인 운동선수 중 환자 아닌 사람은 절대 없다!!

병원에 가도 배드민턴, 야구 등 사회인 스포츠를 한다고 하면 절대 막지 않는다. 다만 "이제 나이도 계시니 살살하세요" 한다. 왜냐고?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할 사람들이 아니니까.


15년의 시간과 돈과 노력의 결실. 강원도 최우수 선수상!!


그런 사회인 야구를 이제는 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가족들과 함께 하는 아내의 취미인 캠핑을 가야 하기 때문.

3년 전 와이프가 친구 따라 캠핑을 다녀왔는데, 너무 재미있다며 바로 텐트를 사 왔다. 그 이후 나는 주말마다 야구 배트 대신 텐트 폴대를 잡고 있다. 주말을 이용하여 시합을 하는 사회인 야구 특성상 두 가지를 하려면 텐트를 치고 게임을 갔다 와야 하는데, 둘 다 함께 하기에는 역시 눈치와 무리가 따른다.

아내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취미를 하느냐 나만 좋아하는 취미를 하느냐의 문제다.

"나는 나의 길을 가련다." 주관이 뚜렷한 우리 시대의 용자 아빠가 아니라면 누가 감히 아내 드래곤의 만렙 브레스 파이어를 감당해 낼 수 있을까? 나는 아직 용자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에 코로나19로 인해 모여서 시합을 하기가 힘들고,  이제 40대 중반도 훌쩍 넘어 관절이 콕콕 쑤시고 그렇다는 이유도 있지만, 앞의 이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가족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으니까.

아내 파워에 밀려 캠핑을 시작했지만 캠핑을 다녀보니 나쁘지 않다. 일단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고, 2박 3일 동안 가족과 무조건 붙어 있다 보니 별 보면서 모닥불 쐬면서 평소에 하지 않던 이야기를 하는 잔잔한 재미가 있다.


사회인 야구를 그만둔 요즘은 오히려 맘이 더 편하다.

어차피 코로나로 인해 못하기도 하지만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만큼 가족 간의 이해가 더 깊어졌다.

그리고 시합의 승패와 개인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어졌다. 물론 게임에 이기고 안타를 쳐서 팀의 승리에 공헌을 했다면 그 한 주는 로또를 당첨받은 듯한 기분이 들지만, 게임을 망치거나 나의 실수로 팀이 지거나 한다면 그만큼 우울할 일이 없었고, 이는 집안 분위기에도 우울한 영향을 미쳐서 이런 날에는 아내는 "기분 좋으라고 잘 갔다 와서 왜 그래."라며 위로하곤 했었는데, 승패와 개인 성적이라는 욕심에서 벗아난 지금은 절로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사회인 야구 그만 두니 피스 오브 마인드가 찾아왔다.



오늘 낙원이 형의 이야기를 듣으니, 스위트 스폿에 제대로 공을 맞추었을 때의 손맛과 펜스를 직격 한 끝내기 안타. 팀을 위기에서 구했던 다이빙 캐치와 더블 플레이의 황홀한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오늘 진심으로 열정적으로 임했던 사회인 야구의 감동에 가끔 젖어보았는데 이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하지만 얼마 후 50을 바라보는 내가 다시 사회인 야구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아직 베란다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내 야구배트와 글러브들을 가만히 만져본다.

남이 볼 때는 별것 아닌 것일지 모르지만 이것 역시 내 인생의 트로피이며 내 삶의 증거임이 분명하다. 살아가면서 무엇인가에 빠져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스스로에게 꽤 괜찮은 삶을 살아온 것 같다는 감상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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