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겨우살이 / 권영하

by 권영하


겨우살이 / 권영하


아버지 등골에 뿌리를 박았다

분가했다가, 다시 아버지 집에 슬그머니 뿌리를 내렸다

뜨거운 자양분은 혈액처럼 내 몸속으로 흘러들었고

겨울은 따뜻해졌다


달콤했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를 먹고 파랗게 자랐다

아버지 숨소리는 나무껍질처럼 늙어갔지만

내 삶은 조금씩 통통해졌다

사계절 내내 푸르렀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새 땅에서 뿌리내리고 꽃피고 열매 맺기를 바랐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거름도 없는 땅에 뿌리내리기가, 왜바람이 마구 부는데 지지대도 없이 자라기가


조촐했지만 그래도 스스로 자양분을 만들었다

줄기와 잎에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가을에 큰 콩알만 한 열매를 맺었다

맑은 햇살이 비칠 때 노오란 열매는 영롱한 수정처럼 빛이 났다

나무 위에 작은 나무이지만

나는 버섯이 아니었다


눈치가 좀 보여서지, 아버지는 달콤했다

아버지가 싱싱할수록 뜨거운 자양분은 넉넉히 흘러들어왔다

가는 햇빛만 겨우 들어오는 숲속 바닥보다는

가지 위가 따뜻했다


내 몸속에 또 다른 나를 키우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 시 전문 계간지『사이펀』(2025)

☞ 출처 : https://blog.naver.com/almom7

keyword
작가의 이전글벽에 붙어있는 자전거바퀴 / 권영하 (소년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