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처럼 언젠간 티라노도 친구들과 함께 하는 날이 오겠지..
나의 티라노씨는 어릴 때 많은 남자아이들이 그러하듯 공룡을 참으로 좋아했고, 특히 티라노 사우르스를 가장 좋아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더 이상 공룡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않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티라노씨는 공룡 장난감들을 처분하는 것을 보류했고, 추억이 가득 담긴 공룡 장난감들은 여전히 곧 고등학생이 되는 티라노씨의 방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곧 고등학생인 티라노씨의 공룡 장난감들을 처분하는 것을 망설이는 게 티라노씨의 공룡에 대한 여전한 애정과 추억 때문인지, 아니면 엄마인 내가 티라노씨의 어릴 때의 사랑스럽고 애교 많던 딸 같은 아들로서의 모습에 대한 미련과 추억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티라노의 엄마인 나는 사실 새로운 학교에 진학할 때마다 당한 따돌림이나 따돌림을 당하지 않은 경우엔 친구를 사귀기 어려웠던 문제를 겪었던 내 모습을 떠올리며, 혹여나의 티라노씨도 나의 유전자를 물려받고 이 유전자가 우성인자로 발현되어 나의 사회성 부족을 닮을까 봐 늘 노심초사하며 키웠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벌이를 해야 하는 나에겐 집 근처에 있는 민간어린이집들은 무언가 조건이 맞지 않아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을 보냈었다. 그래서 티라노씨는 국공립 어린이집을 4년간 다니다가 졸업했고, 어린이집과 떨어져 있는 초등학교에 아는 친구 없이 혼자 입학했다.
그러니까 티라노씨는 4살에 어린이집을 처음 가기 시작해서 7살까지 그 어린이집을 다니는 동안에는 어린이집 친구들과 관계가 아주 좋았고, 단짝 친구들도 제법 있어 그 친구들의 엄마들과 나도 친하게 지냈었다.
어린이집이 국공립이라 집과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어 티라노가 입학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어린이집 친구가 한 명도 없어서 걱정을 많이 하며 입학을 했는데, 초등학교에 가서는 학급 내에서 인싸나 학급 내 그룹을 형성한 건 아니었지만 한 해에 한두 명씩은 항상 함께 놀 단짝 친구가 있어서 크게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었다.
그러다 초등 고학년 때 지금의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이사를 온 지 1년 만에 코로나가 터져 원격수업이 2년이나 지속되었다.
다행히 티라노는 이 동네에 이사 온 첫 해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 A와 단짝이 되었고, 긴 코로나 원격수업 기간을 그 친구 A와 함께 집 근처 하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놀거나, 하천가에서 돌멩이들을 가득 주워 물수제비를 누가 더 멀리 던지나 내기를 하며 놀곤 했다.
겨울이면 그 친구 A와 함께 눈오리를 만들어 놀거나 모종삽으로 눈을 퍼 옮기며 놀다가 대형 눈사람을 만들어놓기도 하였고, 우리를 따라 함께 간 캠핑장에서 함께 마시멜로를 구워 먹곤 하였다.
중학교 1학년이 지나 2학년이 되어 우연히도 그 단짝 친구 A, 1학년 때 새로 사귄 친구 B 이렇게 셋이 같은 반에 배정되어 나와 티라노는 기뻐했다. 아니, 지금 돌이켜보건대 엄마인 내가 티라노보다 더 기뻐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 올해는 티라노 교우관계는 걱정 안 해도 되겠다. 그래 그리고 티라노는 내 아들이지 내가 아니잖아. 나와 달리 외롭지 않을 거야.'
그런데 2학년의 어느 날 잠에 들기 직전 티라노가 나지막이 나에게 말한다.
"엄마, 내가 그 둘을 연결시켜 준 셈이 되어 버렸어...
원래는 나랑 A랑 친구고 나랑 B랑 친구여서 A랑 B랑은 전혀 안 친했는데 나 때문에 둘이 친해졌어.."
수학여행 때 같은 방을 쓸 모둠을 짜는데, 티라노의 친한 친구인 A와 B가 인싸인 친구의 그룹에 끼면서 인원수에서 밀려 티라노에게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며 그 그룹에 끼었고, 또래에 비해 다소 눈치가 없고 눈치가 없음에도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성격인 티라노는 뒤늦게 모둠이 다 구성된 후에야 이를 알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티라노는 절친 A와 B를 연결해 준 후 그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아...... 한평생 눈치가 없는 데다가 의도하지 않게 전두엽의 발달이 더뎌서 오는 유아형 자기중심적인 성향으로 인해 한평생 외로웠는데...
나의 외로움을 나의 아이인 티라노가 물려받았구나....'
'나의 사랑하는 티라노만은 나와 달리 외롭게 살지 않기를 바랐는데.....'
가슴이 타들어가다 못해 미어져서 매일 밤 소주를 들이켜도 잠을 이룰 수가 없다.
학교에 출근하니 삼삼오오 그룹을 지어 모여 다니며 행복하하며 완벽한 수업태도를 보여주는 같은 또래 중학생 여학생들을 보니 더욱더 가슴이 미어지다 못해 가슴이 시려온다.
이러다 조회할 때 우리 반 아이들 앞에서 눈물이라도 날 지경이다.
수업시간에 들어가면 30명 모두가 책을 바르게 펴고 바른 자세로 교사인 나만을 바라보고 있다.
학습지 필기 검사를 하면 필기가 안되어 있는 학생은 한 반에 거의 아무도 없다.
수업시간에 혹여 누가 한두 마디 떠들어서 "OO아, 지금 떠드는 거니?"라고 부드럽게 이야기하면
"아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하며 매우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사과하는 사랑스러운 우리 학교 학생들...
어쩜 이렇게 예의 바르고 성실한 아이들이 있지?
정말 가정에서 어떻게들 키우신 걸까?
근데 왜 나의 티라노씨는 이렇지 못한 걸까..
내가 잘못 키운 걸까?
비교하면 안 되는데....ㅜㅜ
티라노는 중학생 남자아이고, 이 아이들은 여학생들이라 아무래도 성실하고 얌전해 보일 뿐 속에서 하는 고민은 같고 미성숙한 어린 중학생들이라 절대 완벽하지 않을 텐데...
나도 머리로는 안 그런 걸 잘 아는데....
하... 자꾸 우리 학교 아이들과 나의 티라노씨를 비교하면 안 되는데....
비교가 되어 미칠 것만 같고, 퇴근 후 티라노를 보면 가슴이 미어지다가 터질 것만 같다.
티라노가 오랜 단짝 친구였던 A, 그리고 티라노가 새로 사귄 친구 C 이렇게 셋이서 집 앞의 하천가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하천가의 반짝이는 물결을 뒤로하고 티라노, 단짝 A, 친구 C가 웃으며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자전거를 타고 있었고, 티라노의 표정이 참 밝고 은은하게 행복해 보였다.
단짝친구 A와 티라노가 다시 친해진 사연은 이러했다.
단짝 A는 작년에 친했던 B와 함께 속한 무리에서 문제가 생겨 그 친구들과 사이가 다 틀어져 다시 우리 티라노와 친하게 되었다는 것.
이 사실을 들으며 무언가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 친구들과 틀어지고 나서야 우리 티라노를 찾았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티라노가 집에서 혼자 게임이나 휴대폰을 하지 않고 밖에서 친구들과 건강하게 놀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기뻤다.
엄마인 나는 어쨌거나 너무 기쁘고 행복하면서도 내심 불안했다.
'또 셋이서 친구가 되었네.. 이러다가 또 A랑 C를 연결해 주고 우리 티라노만 떨어져 나오면 어쩌려고 또 셋이서 놀고 있어....'
걱정이 되었지만 게임이라는 온라인 속에서만 인싸인 티라노가 세상 밖으로 나와 하천가를 따라 친구들과 다시 자전거를 타고 있어서 행복했다.
'그래, 친구 잘 사귀고 학교생활 행복하면 그걸로 된 거지..'
'아 꿈이었구나.....'
티라노도 상처를 받은 걸까?
아니면 티라노가 받은 상처보다 사실은 엄마인 내가 나의 과거의 일로 인한 상처로 인해 상처가 덧나서 내가 받은 상처가 더 큰 건 아닐까?
티라노야....
엄마가 이런 엄마라서 정말 미안해.
엄마가 하필 ADHD여서...
너에게 이런 나쁜 유전자를 주고, 이 유전자가 하필 아빠의 유전자를 이겨 버리는 바람에..
너에게서 이 유전자가 발현되게 되어서 정말 미안해...
늘 외로웠는데...
너까지 외로운 인생을 살게 만든 것 같아서 엄마가 정말 미안해...
그렇지만 넌 나보다 나은 인생을 살 거야.
엄마는 40이 넘어서야 ADHD임을 알았고, 한평생 약의 도움 없이 바둥거리며 악을 쓰며 극복했어야 했지만..
넌 나보다 30년은 더 빨리 너의 성향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야.
티라노야
엄마가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너를 정말 사랑해.
[덧붙이는 말]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여 뒤늦게 ADHD진단을 받게 된 이야기와 그 후 엄마이자 현직 교사인 내가 성인 ADHD 진단을 받게 된 이야기부터 풀어가 볼까 합니다.
그리고 ADHD인 엄마가 ADHD인 사춘기 아들을 키우며 겪는 본인 및 엄마로서의 ADHD문제, 사춘기 아들이 ADHD라서 더욱 어려움을 겪는 문제, ADHD약 없이 한평생 대학입학부터 수십대 1의 임용고시 패스와 중고등학교에 근무하며 겪은 현장경험 노하우, 그리고 자녀와 나의 ADHD 셀프 인지행동 교정을 통해 이 세상에 적응해 나가는 방법까지 차례대로 적어나가 보려고 합니다.
이상으로 저는 사춘기를 겪고 있는 중학생 ADHD 티라노씨를 키우고 있고, 중학교 현직교사인 그림크림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