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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크림쌤 Oct 30. 2024

늘 찜찜함을 안겨주는, 날 따돌림했던 오랜 친구 이야기

첫인상이 나쁜 사람은 조심하는 게 맞았다는 걸 24년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친구였던, 아주 오래된 친구에게 참아왔던 이야기를 장문의 카톡으로 어제 보내버렸다.


이것도 혹시 ADHD다운 충동성 조절 실패의 일종인 건가?

밤이라 감수성이 풍부해져서 나도 모르게 감성에 젖어 그동안 쌓아두었던 감정이 폭발했던 걸까? 내일 아침이 되면 후회가 될까?


아니, 아니다. 

내가 ADHD여서도, 밤이라 감수성이 풍부해져서 그랬던 것도 아니었다.

몇 달 동안 많이 참았다.

아니 어쩌면 몇 년이상 참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그녀와의 유쾌하지 않은, 무언가 모를 찜찜함을 남겨주는 대화를 아주 오랫동안 참아오다가 나의 티라노씨가 ADHD진단을 받고, 이어서 내가 ADHD진단을 받으면서 나의 멘탈이 더 이상 그녀와의 찜찜한 대화를 버텨내기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그녀와의 관계가 힘들다고 느낀 건 2년 정도 되었나 보다.




한두 달에 한 번씩 그녀에게 늘 먼저 전화가 걸려오곤 했다.

'연락 안 하냐?'라던가, '그림크림아 뭐 물어볼 게 있어서..'라던가, '남편이랑 어제 싸웠는데..'라던가...

보통은 전화 통화에는 용건이 있기 마련인데, 그녀는 늘 아무 용건 없이 정말로 안부전화차 전화를 하곤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는 웬만해서는 자기 이야기는 먼저 하지 않고, 물어봐도 늘 둘러대거나 '응 그냥 그렇게 됐어..'와 같이 두리뭉실하게 말하며 자세한 이야기를 더 묻지 말 것을 암묵적으로 내뿜는 문장을 구사하곤 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이 친구는 자기 이야기를 물어보는 것을 싫어하는구나..'라는 느낌을 주곤 했다.




자기 이야기는 잘하지 않으면서 내게 질문만 하는 전화가 한두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걸려왔다.

늘 나에게 이것저것을 염탐하듯 질문을 하곤 했고, 거짓말을 하거나 고급지게 둘러대는 언어기술이 없는, 순수하고 해맑은 전두엽을 가진 나는 이 질문공세에 당하듯 내 정보만을 빼주기 바빴다.

매일 점심은 어떤 식단을 하는지, 휴직 라이프는 어떤 취미 생활을 하며 보내는지, 학군지에 사는 나의 아이는 어떤 학원에 보내고 있는지 따위를 말이다.


어쩌다 그녀가 질문이 없을 때면 전화의 공백을 견디기 힘든 E이면서 동시에, 전전두엽의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의 부족으로 인해 말하고 싶은 언어충동 욕구를 스스로 억제하기가 아주 힘든 ADHD인 나는 이야기로 친구와의 전화통화를 힘들게 힘들게 채워내야만 했다.


더 웃긴 건 이렇게 내 이야기만 늘어놓다 보면 그 친구도 듣기가 힘든지, 항상 "전화가 와서 끊어야겠다"는 일관된 핑계를 대며 후다닥 전화를 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난 그녀와 통화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나 그녀에게 전화가 올 때가 되면 '아... 전화올 때 됐네...'라며 초조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더 이상 참기 힘든, 그녀의 나에 대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작년 초겨울 내가 다니는 화실에서 단체전을 열었고 그 화실에서 가장 오래된 회원이자 가장 오래 그림을 그렸던 나도 당연히 참가를 했으며, 갤러리의 입구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내 작품 3점이 전시가 되었다.

내 작품을 보러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이 많이 와주었고, 그녀도 다른 친구와 함께 와주었다.


작품 기획의도를 섞어 작품 설명을 하고 있는 진지한 순간에 그녀가 소리를 내어 크게 웃기 시작했고, 다소 눈치가 없는 나는 정말로 왜 웃는지가 궁금하여 그녀에게 "왜 웃어???"라고 물어보았더니 그녀는 "아 아니야.."라며 잠시 웃음기를 멈추었다.


두 번째 작품설명을 하고 있는데 다시 시작된 그녀의 소리 내어 크게 웃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지금 웃긴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아까부터 왜 웃는 거야??"라고 다시 한번 물어보니 그제야 웃음을 멈추었다.




내 전시회에 와준 수십 명의 지인들 중 내 그림을 보고 대놓고 소리 내어 크게 웃은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심지어는 모르는 사람에게 내 작품을 사고 싶다는 요청을 받을 정도로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아니, 그림 실력의 문제가 아니다.

내 그림이 1년 차 아마추어가 그린 모작이라고 해도 비웃으면 안 되었다. 소중한 관계가 아니더라도, 모르는 사람의 그림이었다고 할지라도 그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예의였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소중한 사람은커녕,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예의조차도 지킬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한 게 확실했다.


게다가 하필이면 그 작품은 사춘기에 접어든 ADHD인 나의 아들-티라노씨에 관한 다소 진지하고 한이 서린 작품이었고, 사춘기 아들 그것도 ADHD인 사춘기 남자아이를 키워내며 가슴이 시리고 힘들 때마다 인내하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그린 작품임을 설명하고 있었던 터라 내 마음이 차갑게 얼어붙기 시작했다는 거다.




전시회 비웃음 사건 이후 그녀의 속마음을 엿보게 되어 마음이 식어가던 나는 결국 나의 힘든 마음을 이야기해 버렸다.

발가락이 부러졌다는 나의 카톡에 "ㄷㄷㄷ"로 대답하며 "신발(반깁스) 좋아 보인다ㅋㅋ"라고 답장하기

발가락은 좀 어떠냐는 그녀의 질문에 '발가락뼈가 두 달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붙지 않았다'고 답장했고, 이를 읽씹하기 

등을 하는 그녀에게 아래와 같은 카톡을 보내고야 말았다.



친구라면 아무리 바빠도, 답장할 시간이 오래 지났어도, 빈말로라도 걱정하는 척이라도 해주는 게
사회생활을 너보다 훨씬 오래 한 친구로서 감히 한마디 하자면 그게 사회생활인 거야...

단체전 때도 그렇고 나에게 부적절한 질문이나 읽씹 등을 할 때마다 자꾸 대학교 1학년때의 일이 생각나...
그리고 너가 대학교 1학년 때 나를 왕따 시킨 아이들에게 동조한 사실에 대해 20년 이상 지난 지금까지 빈말로라도 사과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어.

라고....


한 시간 이상 시간이 지나 아래와 같은 답장이 왔다.

단체전 때 부적절한 질문이 뭐였는지 모르겠지만 실수한 게 있다면 미안하다고... 
너나 나나 자주 아프고 다치는 게 일상이라 네가 기대하는 만큼 걱정해주지 못했나 보다고...

대학생 때의 일은 미안하게 생각했지만, 사과한 적 없는 줄은 몰랐다고...
그 미안함으로 나에게 더 배려를 하고 살아왔다고...
그리고 그 당시 나보다는 다른 친구들과 더 친해서 그 아이들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어서 그 아이들 편이었어서 그랬던 거라고...
그 이후에 그 일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해 왔지만 나에게 계속 응어리가 남아 있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본인의 어떤 점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는지조차 전혀 모르는...

가해자 다운 핑계와 사과하지 않은 사실조차 잊어버리는 쉬운 망각이 듬뿍 담긴 그런 답장이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따돌림을 당한 이유가 지금의 그녀와 같은 태도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대학교 1학년 당시 내가 같이 다니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한 이유가 '자기 얘기는 안 하면서 상대방에게는 자꾸 질문을 해서 불쾌하다'는 이유였고, 당시 가해자 그룹엔 그녀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라? 지금 내가 그녀가 가장 불편한 이유랑 똑같잖아!'

'그녀도 24년 전엔 자기 얘기는 안 하면서 상대방에게 질문을 하는 내가 불편하고 특이하다고 따돌림을 했으면서, 본인도 그렇게 살고 있잖아'




20여 년 후 따돌렸던 당사자에게 본인이 따돌린 이유와 똑같은 이유로 손절을 당하는 아이러니한 사람의 인생...

본인이 따돌렸던 이유와 똑같이 살고 있는 그녀, 본인을 따돌렸던 친구와 20년 이상 절친으로 지낸 나

누가 더 어리석은 사람일까...

왜 나는 항상 사람을 믿고, 상처받고, 그래놓고 또 믿고 나서 또 상처받고...

이런데도 왜 아직도 사람을 이렇게나 좋아하는 걸까....




더 이상 내 카톡을 읽지 않는 그녀에게 답장을 써본다.


'넌 늘 피해자라고 생각하지만 너도 가해자일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고 그럴 땐 속으로 말고 꼭 직접 사과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렇게 솔직하지 못하면 스스로도 많이 힘들지 않니. 앞으로는 가까운 사람에게는 좀 더 솔직한 사람이 되어보는 건 어때? 행복하기를 바라. 진심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어제의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어이없게도 마치 밀린 숙제를 끝마친 후련함마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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