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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크림쌤 Oct 24. 2024

좁은 고깔모자를 쓴 채 ADHD로 살아오느라 애썼어!

공부 안 하는 외로운 중학생 ADHD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에 대하여

요새 자꾸만 티라노가 꿈에 나온다.


요새 왜 자꾸만 티라노씨에 대한 꿈을 자꾸 꾸는지 모르겠다.

나 분명 거의 다 내려놓았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 영어학원을 그만두고 싶어 하고, 우리 몰래 구글 기프트 카드 10만 원짜리를 사서 게임 현질도 하면서 시작된 티라노의 일명 '사춘기 짓'으로 엄마인 나는 분명 많은 내려놓음의 과정을 이미 다 거쳤다고 생각했는데...


2학기 고사가 분명 일주일도 남지 않았고, 티라노는 시험공부를 전혀 하고 있지 않지만 난 조바심 내지 않고 나의 과잉기대나 과잉통제와 같은 티라노와 맞지 않았던 부모양육태도 따위는 집어치운 채 난 아이의 욕심 없는 느린 속도를 가만히 기다려주고 있는 것일 뿐인데...


나 분명 별로 속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근데 자꾸만 티라노가 꿈에 나온다.





'집에서 숙제조차도 전혀 안 하면 좀 어때, 수학 잘하니까 된 거지.'


학원을 4군데를 다니는데 그중 교과 공부하는 과목은 수학이 유일하고, 나머지 3개는 전부 취미와 관련된 학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수학 학원에서 레벨은 제법 높은 편이고, 학교 시험도 특목고 준비하는 아이들 수준으로 성적이 제법 나온다.

더 웃긴 건 티라노는 공부는커녕 수학학원 숙제를 집에서는 단 1분도 하지 않은지가 오래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래.. 수학이라도 놓지 않고 붙잡고 있어 주어 정말 다행이다.'

'집에서 숙제하는 게 뭐가 중요해... 수학성적 잘 나오니 이걸로 된 거지.'

'다른 과목은 정신만 차리면 다 올릴 수 있는데, 수학은 안 되잖아. 그러니까 우리 티라노는 가능성이 아직 있는 거야.'


라고 생각하며 버텨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내 모든 마음이 산산이 부서져 바람과 함께 여기저기 멀리 날아가 버릴 것아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일종의 자기 합리화인 자기 방어라고나 할까.





'정말로 집에서 숙제조차도 안 하는 게 괜찮은 걸까?'


며칠 전 갑자기 머릿속에 저런 물음표가 떠올라버렸다.

아마 저 생각을 억지로 누르고 있던 무언가가 빠져나갔나 보다.


마치 떠오르지 말아야 할 물건이 너무 가벼워 물에 떠오를까 봐 커다란 바위를 함께 묶어 수면 밑으로 가라앉혔는데, 바위가 끊어지며 억지로 가라앉혔던 물건이 물에 둥둥 떠올라버려 누군가에게 발견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정말로 집에서 시험공부는커녕 그나마 한다는 수학숙제조차도 안 하는 게 정말 괜찮은 걸까?'

'공부는 습관인데.... 그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아는데... 교사인 내가 내 아이의 공부습관조차 잡지를 못했구나...'

'분명 초등학교 6학년때까지는 하루에 3시간씩 매일같이 책상에서 숙제하고 공부하던 아이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뭐가 잘못된 걸까....'


하....

또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하고 자책하고...

이럴걸 저럴걸... 

또 도돌이표 시작이다.

이 도돌이표는 무한반복되어 영원히 안 끝날 것 같다

아니, 티라노가 시험공부를 다시 시작하면 끝나겠지.





꿈속의 티라노는 책상에서 게임이 아닌, 학원 수학숙제를 하고 있었다.


티라노가 하루종일 게임만 하는 건 아니지만, 공부해야 할 시험기간에도 게임을 매일 몇 시간씩 한다는 게 문제다.

그런데 꿈속의 티라노는 책상에서 학원 수학숙제를 하고 있었다.


'어라? 학교 쉬는 시간에 수학숙제를 다 못해서 집에서까지 수학숙제를 하는 건가?'

'학교 쉬는 시간에 수학숙제를 왜 다 못한 거지? 혹시 반 친구들과 수다 떨고 노느라 숙제할 시간이 부족했나?'

'아니면 수학숙제 양이 늘어서 학교에서 미처 다 못한 건가?'


아무렴 어때.

친구들과 노느라 숙제를 다 못했건, 수학숙제 양이 늘어서 다 못했건...

둘 다 참 바라고 좋은 상황인데....


라고 생각하다가 꿈에서 깼다.





수학숙제를 학교에서 다 하고 오는 게 이렇게나 속상한 이유


어쨌거나 티라노는 학원 수학숙제는 밀리지 않고 늘 해가는데, 난 왜 수학숙제를 집에서 하는 모습이 이렇게나 간절히 보고 싶은 걸까?


혹시 학교에서 놀 친구가 없어서, 이야기 나눌 친구가 없어서 쉬는 시간마다 수학숙제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거다.


왜냐하면 그 모습이 마치 나의 중고등학교 쉬는 시간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외로울 때마다 6년간 쉬는 시간에 내 친구가 되어준 건 수학문제였기 때문이다.


쉬는시간에 수학문제만 풀고 있는 그 마음을 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기에...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나의 아이 티라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보면 

나도 모르게 내 가슴이 녹아내려 전부 사라질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난 생각보다 교우관계가 좋았다.


'난 못생겼고, 친구도 없었고 늘 외로웠어.'

'내가 외로울 때마다 친구는 공부뿐이었어. 특히 수학.'


이런 생각을 수십 년을 해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곰곰이 돌이켜보면 사실은 난 중고등학교 6년 중에서 사실 왕따를 당하고 친구를 사귀기 어려웠던 건 중학교 1학년 단 1년뿐이었고, 나머지 5년간은 늘 친구가 한 명 이상은 꼭 있었다.

그런데 그 힘들었던 단 1년의 시간이 평생을 날 지배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이제는 내가 먼저 과거의 나를 용서해 줄 시간이다


조용한 ADHD인 엄마인 내가 과거의 나를 용서해야, 혼합형 ADHD인 나의 티라노도 성장한다.


내가 과거의 나를 먼저 보듬고 고생 많았다고...

니가 좀 엉뚱하고 남의 말을 잘 못 들었던 건 니 잘못이 아니었다고...

너 잘못이 아니니 너도 너를 이제 그만 스스로를 놓아주고 용서를 해주어야 한다고...


니 잘못이 아니야.

단지 넌 눈앞에
좁은 고깔모자를 쓰고 있어
주위가 보이지 않았던 것뿐이야.

시야가 좁은
고깔모자를 쓴 채 살아오느라
참 애썼어.

이제 그만
답답한 고깔모자 좀
벗도록 해보자!
(사진출처 : tvN 신서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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