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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온 May 30. 2022

나의 해방 일지-1

친한 언니가 본다길래 덩달아 보기 시작한 JTBC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 해방? 뭐야.. 21세기에 해방이라니... 90년대 학번인 나에게 이 단어는 고리타분한 사회과학 서적에 등장하는 단어일 뿐.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다른 세상의 단어였다. 그리고 등장한 낯선 단어 추앙.. 이 드라마 뭐야...

그런데 매 회를 볼수록 이건 내 인생 드라마구나 싶다. 


나에게 해방이란?


해방 : (몸과 마음의 속박이나 제한 따위를) 풀어서 자유롭게 함 {출처:동아 새국어사전}


7년 전 어느 날, 내가 내 머리를 잘랐다. 손이 가는 대로 싹둑싹둑... 뒷머리는 앞으로 끌어당겨 싹둑!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잡아당겨 아치 모양으로 조심조심 싹둑... 가슴이 두근거렸다. 예전부터 '중도 자기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는데, 아이들 머리도 아니고 내 머리를 깎다니.. 몰래 나쁜 짓 하는 것 마냥 가슴이 콩닥거렸다. 왼쪽이 짧아지니 오른쪽도 맞춰야지 하며 자르고.. 뒷머리도 자르고 어느새 바닥엔 내 머리카락이 한 보따리가 되었다. 그때 거울로 내 모습을 확인하고는 "아 나는 자유다!! "하고 소리 질렀다.   

해방이다!! 이게 진정한 해방이로구나.  


벨기에 살면서 내가 원하는 미용실을 찾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헤어 스타일은 나의 마지막 자존심인데 하며 여기저기 전전해 보았지만 다 영 아니었다. 그러다가 내가 직접 잘라 본 것이다. 망치는 날도 있다. 그러면 스카프를 목에 칭칭 동여 매고 머리 밑단을 가리고 다닌다. 그리고 다시 다듬어 본다. 우리 집 남자들(남편이랑 아들 둘)은 나에게 전혀 머리를 맡기지 않는다. 그러나 난 지금도 꿋꿋이 내 머리를 손수 자르고 있다.  


 나 보다는 타인에게 주로 비치는 헤어스타일! 헤어 스타일은 나의 자존감을 많이 좌우했다. 머리에 뽕이 살면 자신감이 붐 뿜 올라가고 비라도 오는 날 머리가 축 쳐지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다. 머리 모양마저도 결국 타인의 시선에 갇히게 되는 나. 내 머리를 손수 자르는 것도 해방이지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의미에서 진정 해방감을 느꼈다. 


과거의 나는, 내 소신과 원칙으로 나 자신을 조절한다는 것이 무지 어려웠다. 타인의 말한데에 일희일비하는 나였기 때문이다. 남들로부터 튀지 않는 삶을 살려고 무진장 애쓰고 살지만 마음속에서 나는 언제나 아웃사이더였다. 좀 더 맘 편하게 살고 싶어 선택한 외국행. 그러나 이곳에서 나는 가만히 있어도 외모부터 튀는 까만 머리 외국인이었다. 본의 아니게 더 튀는 삶을 살게 된 나. 엎친데 덮친 격으로 생소한 현지 문화와 언어는 물론 여행이 아닌 살기 위해 왔다는 생각에 하루빨리 적응하고자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주변 시선에 자유롭다 보니 맘 편하게 지내는데, 나 혼자만 좌불안석, 가족들에게 엄한 잔소리만 해댔다. 몇 년을 눈치 보며 살다 보니 한 현지인이 나에게, "너 남편은 벨기에 사람이니? 여기서 오래 산 것 같다 "하더라.. 눈물 나는 상황이다. 눈치 보면서 살아온 삶을 이렇게 인정받는구나 싶어서이다. 처음엔 바보같이 그런 코멘트를 받고 자랑스러워했다. 내가 현지 생활에 잘 적응하는구나 하면서.   

그러나 진짜 나를 버리고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삶은 어리석게도 나를 계속 옥죄었다.  

시간이 갈수록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한국을 떠나온 같은 이유로... 


 그날, 내가 내 머리를 직접 자르고 생활한 그날부터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조금씩 무뎌지게 되었다. 자유로웠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떨 때 즐거운지, 어느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처움엔 하나도 모르겠더라. 40년을 넘게 살아왔는데 정작 나는 나를 모르고 살았다.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늘면서, 나를 더 찾아가고 있다이곳에서의 삶을 받아들이고 있다. "있는 동안 즐기면서 살자. 감사하며 살자" 다짐한다. 이런 생각의 변화가 브런치에 내 이야기를 올릴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 흔한 페이스북 아이디도 없는 내가 이런 인터넷 공간에 내 생각을 올린다니...

그냥 나 답게 살고 싶다. 내 생각을 얘기를 하며 살고 싶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까 봐 나를 감추는 것이 싫다.

해방! 나를 둘러싸고 있는 틀을 좀 더 부숴봐야겠다.   

해방 클럽 회원이 되면 더 좋을 텐데.. 찾는다면 바로 가입하고 싶다. 머리는 내손으로 자르면서 말이다. 


그래도 한국에 가면 꼭! 미용실에 들를 것이다. 그럼 헤어디자이너가 물어보겠지...   

" 머리 어디서 하셨어요? 난감하네요.....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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