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안락사라는 단어에 자꾸 끌리는가?
타인의 삶을 엿보길 좋아하는 취미가 있다 그래서 티브이 프로그램 중에는 <인간극장>을 제일 즐겨본다. 지금은 아쉽게 종영된 <다큐 3일> 또한 애정 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지, 삶의 방점을 어디에 찍어야 하는지 깨닫기도 하고, 저렇게 살 수도 있구나 하며 책과는 다르게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다. 간혹 닮고 싶은 사람들을 찾을 때도 있다. 물론 영화 또한 타인의 삶을 엿보기에 너무나도 좋은 수단이다. 그러다 보니 영화를 고를 때에도 가족 드라마 같은 장르를 즐겨 찾아본다.
최근 <완벽한 가족(Black bird, 2019)>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아.. 안락사를 선택한 어머니를 위한 마지막 파티라고... 이건 무조건 봐야지 하며 시청했다. 수잔 새런든이 엄마로 나오고 케이츠 윈슬렛이 큰딸로, 감독은 노팅힐을 제작한 로저 미첼. 내용은 엄마 릴리가 루게릭 병으로 팔과 다리에 마비를 겪고 있다가 의사인 남편의 도움으로 안락사로 죽음을 택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마지막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오해와 걱정, 불안으로 한바탕 소동도 일어나며 엄마가 선택을 되돌리길 원한다. 하지만 결국 가족들은 엄마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녀는 약물로 생을 마치게 된다. 그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엄마, 무섭지 않으세요?"
"떠나는 날을 정하고 나니 오히려 삶의 열정을 갖게 돼. 누구나 죽기 마련이란다. 애써 그 사실을 잊고 살아갈 뿐이야."
죽어야지 마음을 먹었더니 삶의 열정이 생기더라는 아이러니한 이야기. 어떻게 살 것인가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다 보면 결국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뫼비우스의 띠 같다. 어떻게 죽느냐 의 질문에 대해 어릴 적부터 많이 들어왔던 말이.."자다가 떠나고 싶지"라는 어른들의 말. 나도 동감했다. 죽는 순간의 고통이 얼마나 무서운가. 그것을 애써 피하고 자면서 떠난다는 것은 얼마나 평화롭고 복된 죽음인가. 그러다 보니 죽음은 서로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 그동안 암이나 질병으로 중환자실에서 숨이 끊어져도 인공호흡기에 매달려 버텨야 하는 삶을 가족들이 선택하였다면 이제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인간적이 않다는 명제에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존엄사법(연명의료결정법)도 시행 중이다. 그렇다면 더 나아가 완벽한 가족의 엄마 릴리의 선택은 어떠한가? 그녀와 남편은 안락사라는 불법적인 행위로 죽음을 선택하였다. 루게릭이라는 질병의 처절하고 암담한 죽음의 과정.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결론. 그녀의 선택을 비난할 수 있을까?
안락사.. 함부로 입에 올리며 떠들어 대기엔 여전히 터부시 되는 단어. 나는 이 단어가 자꾸 끌린다. 현재 내가 불치병을 앓고 있거나 가족 중에 그런 환자가 있어서는 아니다. 20여 년 전 나는 대형병원의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간호사로 근무하였다. 전인적인 간호를 하는 멋진 간호사가 되어야지 하며 부푼 꿈을 안고 시작한 병원 생활. 거기에선 활기찬 생명의 소리로 꽉 찬 신생아실과는 달리 삑삑 거리는 기계음에, 너무 가냘파 숨소리마저 삼켜진 아기들을 돌보아야 했고, 하루를 멀다 하고 죽음을 목도해야 했다. 20대의 나로선 대중매체가 아닌 실제 죽음을 접해야 하는 상황이 버거웠다. 그리고 죽어가는 아기들을 돌보아야 하는 간호사. 당연히 끝까지 생명을 수호해야 한다는 것을 선언하고 왔지만 "과연 진정으로 환자를 위한 행위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그곳에서 답을 얻지 못하고 나는 그곳을 떠나고 말았다. 이제는 환자를 위해선 죽음을 택하는 세상이 왔다. 연명치료 중단이 바로 그것이다. 사회는 크게 변해가는 상황에서 조금씩 조금씩, 더 나은 선택을 하고자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다.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2019년 서울 신문에서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81%가 안락사를 찬성한다는 결과와 4명 중 1명은 "시한부 판정 땐 적극적 안락사 신청할 것"이라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참조: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0308001010) 물론 이것은 대국민 여론조사는 아니다. 그러나 예전에 비해 인위적인 생명 연장에 대한 불편함과 죽음을 선택하는 것도 인간의 권리라는 생각이 점차 인정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코로나 시대가 저물며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경제적으로 사회심리적으로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었다. 100세 인생.. 이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 그리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도 함께 고민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
인생은 원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50을 바라보며 뼈저리게 느낀다. "계획대로 되던 걸" 하며 호탕하게 말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분들은 준비를 철저하게 하셨겠지... 난 그런 부류의 인간이 아니라 모르겠다.
그러나 계획대로 살지 못해도 준비를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좋은 방향으로 인생이 흘러가는지는 안다.
죽음 또한 준비를 조금씩 하다 보면 행복한 죽음을 얻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안락사가 합법화되어있는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상황을 소개하고자 한다. 과연 안락사가 합법화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앞으로 이곳이 언론 매체와 관련 서적을 토대로 안락사에 관한 여러 가지 상황들을 소개하며 작은 공론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영화 <완벽한 가족>의 원제는 Black bird이다. 엥? 제목이 와닿지 않는데. 뭔가 의미가 있나 봐 했다. 이 새는 영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우선 검은색은 죽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신비와 마법의 의미도 지닌다. 그러다 보니 검은 새는 우리가 어둠이나 두려움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이는 삶의 환경에 낙담하지 않고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고 한다. (worldbirds.com 참조)
브런치를 통해 안락사에 관한 소식들을 파악하고 공론화하다 보면 Black bird가 지닌 의미처럼 어떻게 죽는 것이 좋은가라는 물음에 우리에게 맞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안내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